조계종은 9월 28일 광화문에서 선명상대회를 개최한다.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 승보공양도 있다. 불교에서 '불보(佛寶)'란 부처님이 세상의 보배라는 의미며, '법보(法報)'란 가르침이 세상의 보배라는 의미이고, '승보(僧寶)'란 '승가'라는 단체가 이 세상에서는 보배라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유독 승보에 대한 이해가 없다. 현 종단이 우리말 삼귀의에서 '승가'에 귀의한다고 가르치지 못 하고 '스님들께' 귀의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날 외국 스님들이 조계종의 행사를 보며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삼귀의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종단" 하며 안타까워 할 것 같다. 조계종이 이러한 수준이기에 이번 승보공양도 승려공양으로 변질될까 염려된다. 행사에 초대받은 몇 승려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은 승가공양이 아니라 승려공양이다.
부처님은 보시의 분석 경(M142)에서 자신의 양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손수 물레질하여 짠 한 벌의 옷을 보시할 때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고따미는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부처님께 옷을 받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부처님은 그때마다 "고따미여, 승가에 보시하십시오"라고 대답하였고 드디어 그 옷은 승가에 보시되었다. 승가에 보시하면 공유물이 되고 개인에게 보시하면 사유물이 되는 것을 아셨기에 승가에게 보시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으로 인도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와 '기원정사'등 모든 사찰은 승가에 보시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명산대찰이 천 년의 세월을 넘어 공유물로 남아있는 것도 사찰이 개인이나 특정 문중에게 보시된 것이 아니라 승가에 보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종단의 법체계 지켜지느냐 하는 분기점
승려가 죽었을 때 그가 남긴 유산이 종단에 환수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종단은 '승려 사유재산의 종단 출연에 관한 령'을 만들어 스님이면 반드시 사후재산을 종단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장을 쓰고 있다. 자승 전 총무원장도 몇 번이나 이 점을 강조했고 스스로 자필 유언장을 썼다. 그런데 현 총무원장은 아직도 자승의 유산을 종단에 환수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2024년 2월 5일 승려대상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97.3%가 자승 전 총무원장 개인 유산은 조계종단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조계종 3998명 스님 대상 설문조사로 397명 응답). 최근 설문조사(2024년 9월 12일)에서도 81.7% 스님들이 자승스님의 유산을 귀속시키지 않은 것은 현 총무원장의 직무유기라고 대답하였다(조계종 3983명 스님 대상 문자로 설문조사 382명 응답). 승려가 출가하여 모은 재산은 개인 재산이 아니라 공유재산이다. 이 재산을 종단에 귀속시키지 못 하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서 공유재산 횡령이라고 볼 수 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이 남긴 유산을 환수하지 못 하면 다음부터 승려가 유언장을 쓰는 일도 무의미해지고, 승려의 사후유산이 종단으로 귀속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자승의 유산환수 결과가 종단의 법체계가 무너지느냐 지켜지느냐 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지금 자승의 유산을 환수하는 것은 진정한 승보공양이 된다. 이처럼 정작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9월 28일 보여주기식 승보공양을 하는 것은 불자와 스님들을 기만하는 짓이다. 두고두고 책임을 물어야 할 죄이다.
상식이 있는 스님이라면 그리고 깨어있는 불자라면 9월 28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승보공양행사에 참석하지 말고 자승의 유산을 환수하라는 1인 시위를 해야 한다. 자승의 유산을 환수하지 못 하면 종단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승보공양이다.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가짜 승보공양을 선전 선동하는 불교계 언론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불자들이 따끔한 경고를 해야 하고 신문구독 중지 운동을 함께 벌여야 한다.
진우 총무원장은 자승의 유산을 환수하지 못한다면 총무원장을 마치더라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이고 법명은 허정(虛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