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결국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권여당은 야당 주도로 통과되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 '해병대 채상병 특검법' '지역화폐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표결에 불참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마저도 포기했다. 명분은 '야당의 입법 폭주'에 들러리 설 수 없다는 것이지만, 대안 입법도,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통한 국민 설득도 등한시한 모양새라 논란이 예상된다.
"본회의, 민주당 의원 총회장으로 전락" "민주당 해산하라"
국민의힘은 19일 오전부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날을 세우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 방탄과 탄핵 빌드업에 몰두하는 민주당의 폭주에는 강하게 맞서 유능하고 강단 있게 대처하라는 말씀도 많이 들었다"라며 "민주당이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특검법과 지역화폐 현금살포법을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한다. 정쟁보다 민생을 위해 일해 달라는 추석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2대 국회 본회의는 민주당 지도부가 원하는 대로 아무 때나 열리는 민주당 의총장으로 전락했다"라며 "오늘 본회의도 여야 간의 전혀 협의도 합의도 되지 않은 민주당의 일방적인 의사 일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늘 처리가 예고된 법안들도 모두 정쟁용의 나쁜 법들"이라고 규정했다.
예컨대 "지역화폐 현금살포법은 전 국민 25만 원 현금 살포법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으니 돌려막기식으로 추진하는 이재명표 포퓰리즘 악법"이고 "4번째 발의되고 5번째 표결을 앞둔 채상병 특검법은 진상규명은 안중에도 없고 정쟁밖에 없다는 민주당의 본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오로지 대통령 부부 망신 주기 목적의 악법이다. 두 특검법 모두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법안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거대 양당의 원내대표를 불러 막판 조율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먼저 자리를 나온 추 원내대표는 "당초 안건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26일, 여야 간에 합의한 일정이 있다"라며 "굳이 일정을 앞당겨 민주당이 원한다고 해서 오늘 갑자기 본회의 안건이랑 의사 일정을 만들어서 강행 처리하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라고 했다. "동의할 수 없다"라며 "더 이상 대화에 진전이 없다"라고도 잘라 말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통해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대신 국회 본회의장에 아예 들어가지 않고 국회의사당 본관 로텐더홀에서 규탄 대회를 진행했다. "헌법무시·입법폭거 중단하라"라고 쓰인 현수막이 펼쳐졌고, 의원들의 손팻말에는 "헌법무시 입법폭주 중단하라" "미래세대 빚 폭탄 포퓰리즘 거부한다"와 같은 문장이 박혀 있었다.
구호에도 날이 서 있었다. "무책임한 정쟁유발, 무책임한 현금 살포, 민주당을 규탄한다" "이성 잃은 특검 중독, 분별 없는 혈세 낭비, 민주당은 중단하라"라며 "틈만 나면 국론분열, 민주당은 해산하라"라는 외침이 로텐더홀을 메웠다.
필리버스터 포기 "충분히 부당함 설명, 같은 것 반복할 필요 있느냐?"
국민의힘이 반대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당 주도로 야권이 법안을 발의하면, 여당은 필리버스터 등을 통해 최대한 시간을 끌며 반대 토론에 나서왔다. 이후 야당들이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필리버스터를 강제 중단한 뒤 법안을 가결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발동해 이를 무력화했다. 결국 법안들은 재표결 후 폐기 수순을 밟으며 여러 차례 빛을 보지 못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애초부터 저희들은 이런 의사 일정에 동의할 수 없다"라며 "그 동의할 수 없음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이 보이콧"이라고 설명했다. "상임위 단계부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강행 처리한 법이고 본회의에 올라오는 의사 일정조차도 민주당이 강하게 요구한다고 해서 국회의장이 일방적으로 수용해서 진행한 일정"이라며 "강력한 항의의 뜻으로 보이콧을 택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반 헌법적인 특검 법안들이 민주당의 일방적인 강행 처리로 무리하게 통과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재의요구권 행사를 해 주실 것을 강력히 건의드린다"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이번에 진행된 법안들의 상당수는 저희들이 충분히 부당함을 설명했기 때문에 또 같은 것을 반복할 필요가 특별히 있겠느냐 하는 판단도 일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야당은 무제한 토론에서 특검법 반대 논리를 펼치는 게 정당성이 부족하고 예민한 문제임을 자인하는 것 아니냐며 여당을 꼬집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그건 민주당 식으로 해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견해일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의사 표시일까, 여러 방법론을 고민한 끝에 제가 판단을 내렸고 그걸 의원들이 동의를 해 주셔서 오늘과 같은 보이콧 방침을 정하고 행동에 옮긴 것"이라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