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이 창립 50주년 기념 미사를 열었다. 사제단은 "교회마저 세상의 슬픔을 외면하면 사람들이 어디서 눈물을 닦겠냐"며 다음 50년을 앞두고 50년 전의 초심을 기억하는 것이 이번 기념 미사의 취지라고 밝혔다.
1부 미사에서 함세웅 신부는 민청학련 사건,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 등으로 군사정권 아래서 희생된 이들을 마음에 모시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또한 1차 인혁당 사건을 언급하며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과장했다는 이유로 기소를 거부하고 사표를 쓴 검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검사가 안 보이는 게 가슴 아프다"며 "의로운 검사들이 나서주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9.19선언 6주년 행사에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해서는 "6.15 공동선언은 간직해야 하는 것"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또한 "북에서 어떻게 주장하든 우리는 남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끝까지 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2부 축하식에서 정강자 전 참여연대 대표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있어 ▲80년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정치개혁, 언론개혁, 노동개혁, 기후위기 등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며 사제단의 지속적인 역할을 기대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제단이 "50년 동안 정의의 중심에 서 있으며, 약자의 편을 들어왔다"는 축사를 전했다. 그 과정에서 사제단이 받은 핍박이 오히려 그들의 존재 가치를 올려줬다고 밝혔다. 사제단에게 '공감적 연대(고통의 상통성)'를 배웠다며,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울었던 시간을 통해 한국사회가 한 걸음씩 나아갔다"고 평했다.
사제단은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알린 전병용, 안유씨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안유씨는 당시 영등포 교도소 보안계장으로, 박종철 사건의 은폐 및 조작의 전모를 알린 인물이다. 전병용씨는 당시 김지하 등 투옥된 민주화운동가들을 도운 교도관이다.
행사 말미엔 박노해 시인의 축시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난다'를 임소희 나눔문화 이사장이 낭독했다.
이날 미사에는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자동차 노동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을 비롯해 유시춘 EBS 이사장, 임은정 대전지검 검사 등이 내빈으로 참석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유신 시대인 1974년 9월에 창립됐다. 지학순 주교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에 자금을 댔다는 혐의로 연행되자, 사제 30여 명이 강원도 원동성당에 모여 "민중의 삶 속으로 나아가자"고 결의한 것이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