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연애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며 출연자의 직업 소개법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연애프로그램(줄여서 연프)식 직업 소개는 '안경 사업가'는 '아이웨어 최고경영자(CEO)', '법학과 대학생'은 '로스쿨 준비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직업 소개법은 최근 채용 공고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매장 판매직은 리테일 스페셜리스트, 영업 부서 담당자는 브랜드 세일즈 매니저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제품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판매를 진행하기 때문에 스페셜리스트(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다. 브랜드 매니저 역시 제품뿐만 아니라 브랜드 전반을 소개해 포괄적인 의미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회사 차원에서 브랜딩을 중요시해 대내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구성원을 부각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은 타인에게 불리는 것으로 정체성을 확인받기 때문에 호칭으로 직무의 전문성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한 산업이 발달하는 만큼 업무와 일자리가 다양해지면서 이를 부르는 마땅한 직책명이 없어 새롭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특히 직원 한 명이 여러 업무를 겸하는 경우, 매니저 혹은 어드바이저 등으로 총칭하곤 하는데, 해당 산업군에 직접 몸담고 있지 않는 이상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장 큰 범주의 직군과 매니저를 함께 붙이는 듯하다.
직책명만 영어로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문제는 취업준비생들이 이와 같은 채용 공고를 보고 '현타(현실을 자각하고 허무한 감정 등을 느끼는 것)'에 빠질 때가 많다는 점이다. 밖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름만 그럴싸하게 꾸며 놓고 업무 환경이나 복지는 기존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C씨는 "공고를 보다 보면 갸우뚱할 때가 있다. 유통직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물류·생산 담당자를 물류 에디터라고 칭한 경우를 봤다. 에디터라는 의미가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 에디터로 확장된 것은 이해하지만, 물류 에디터는 처음 들어봤다. 혹시 에디터 업무도 포함되는지 살펴봤지만 공장에서 상품 출고를 담당하는 직원을 모집하는 공고였다. 브랜딩의 일환이라면, 에디터라고 부르는 이유 또한 있을 법한데 공고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비단 연애프로그램뿐만 아니라 SNS만 봐도 브랜딩을 명분으로 허상만 만드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새로운 직군에 이름을 붙일 때 영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장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기존의 직업을 영어로 바꾸고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올려 친다고 직업의 전문성이 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분위기가 현실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에겐 눈속임으로 작용할 뿐이다. 채용 공고에서만큼은 직책명을 부풀려 현실과의 괴리를 만들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 지원자를 고려한 업무 설명, 복지 개선 등 실질적인 문제를 먼저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업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