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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과 국악이론을 전공한 진회숙 선생의 신간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은 아주 특이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책에 나오는 해당 음악을 유튜브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 제목 위에 있는 큐알 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바로 감미로운 음악이 나온다. 즉 글과 음악이 함께 있는 책이다(책 각 장의 말미에 해당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주소가 큐알코드로 제공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휴대폰으로 해당 영상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책표지
책표지 ⓒ 진회숙

이 책에는 희노애락이 다 있다. 나는 지난 며칠간 이 책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 많이 웃고, 울고, 생각했다. 내가 주로 읽고 쓰는 책들이 고문, 학살, 부패, 국가폭력 등의 어두운 주제라 오랜만에 정서가 풍부하며, 재미있고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담은 저자의 책이 내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정말 감동 깊고 재미있게 읽고, 들으며 이 책을 보았다. 그동안 자주 들었던 음악도 그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더욱더 감동스럽다. 이 책은 '음악으로 본 서양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때로는 10대처럼, 때로는 발랄한 20-30대처럼, 때로는 달관한 도인처럼 인간의 심리를 음악을 통해서 분석한다. 한마디로 너무도 재미있고 즐거우면서 삶의 의미를 음미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도저히 중단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재미있고 훌륭한 책을 써준 저자에게 감사 할 뿐이다.

 진회숙
진회숙 ⓒ 진회숙

다음은 지난 한 달간 저자와 몇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집안 환경 자체가 음악적이었다.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노래를 잘 불러 KBS '누가 누가 잘하나' 연말 결승에서 2등상을 받았으며, 고등학교 때는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음악 활동을 많이 했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전공을 정할 때 음악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음악은 너무나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 이화여대 음대에서 서양음악을, 서울대 대학원에서는 국악이론을 공부했는데, 이렇게 음악의 동서를 넘나든 이유는?

"사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국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가 3학년 때 우연히 운동권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때 인문 사회과학 공부를 많이 하면서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서양음악만 들어서 그런지 귀에 잘 와 닿지 않았다. 한국 사람인데 제 나라 음악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내가 잘 모르는 우리 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국악이론을 공부했다. 하지만 아직도 국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대학원에서 겨우 2년 공부했는데 뭘 알겠는가. 서양음악에 대해서는 '쬐끔' 알지만, 국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진회숙
진회숙 ⓒ 진회숙

- 이 책을 기성세대 보다는 특별히 젊은 세대를 위해 쓴 이유는?

"'젊은 세대를 위한 책'은 출판사의 컨셉이었다. 처음에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클래식 이야기로 하려고 하다가 대상을 넓힌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내용이 젊은 여성층을 겨냥한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런 설정이 조금은 불편하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세상에서 가장 꼴불견인 것이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에게 철 지난 옛날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무언가 '가르치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이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클래식'이라는 책의 컨셉에 맞추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가르치는 것을 싫어한다. 각자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뭐 잘 났다고 남을 가르치냐."

-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사랑, 그가 없는 고통과 기쁨의 원천>에서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 사랑을 주제로 한 곡을, 제2장 <위로와 안식이 필요한 날>에서는 슈베르트의 <보리수>, 바흐의 <사라방드> 등 마음에 안식을 주는 음악을, 제3장 <자유로움이 나에게 주는 것>에서는 자유롭게 살다 간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와 프리드리히 굴다,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삶과 음악을 소개했다. 제4장 <살다 보면 때론 웃음이 필요해>에서는 슈베르트 <송어>와 무소륵스키의 <벼룩의 노래> 등 클래식 음악에 얽힌 인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제5장 <내 삶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서는 본 윌리암스의 <날아오르는 종달새>,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을 비롯한 여러 음악을 필자가 살아온 이야기와 곁들여 소개하고, 제6장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다>에서는 아일랜드 민요 <오! 대니 보이>와 마스카니의 <간주곡> 등 과거를 회상하는 음악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구성했다."

- 서양 음악과 국악 중 각각 가장 좋아하는 음악 하나를 꼽는다면? 또 그 이유는?

"서양음악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 제1악장이다. 특히 도입부의 꿈틀거리는 동기가 점점 부풀어 오르며 상승하다가 폭발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협주곡이 아니라 교향곡 같은 느낌이다. 베토벤은 이 곡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1악장의 카덴차를 직접 쓰기도 했다. 고전주의 협주곡이지만 낭만주의의 열정과 에너지를 담고 있는 곡이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나는 천재는 시대마저도 초극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국악 중 남도 민요 <육자백이>를 좋아한다. 민요 중에서 <육자백이> 만큼 처절함의 극한에까지 가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소리라기보다 오히려 통곡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육자백이>의 사설은 대개 그 끝이 '도는구나' '염려로구나'처럼 '...구나'로 되었거나 아니면 '놀아 볼거나' '무심할거나'처럼 '...거나'로 되어 있다. 여기서 '구나'와 '거나'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육자백이>에서는 사설 끝부분에 해당되는 "구나. 헤 ----"로 노래를 시작한다. 이 앞에는 어떤 말도 들어올 수 있다. 사랑,눈물,이별, 한숨... 이렇게 가사의 앞부분을 개방해 한을 가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노래로 끌어들여 개별 경험을 공통의 경험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 좋다."

- 왜, 어떻게 클래식이 세대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음악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인지?

"그냥 내가 잘 아는 음악이 클래식인데, 그 클래식을 세대를 초월해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런 믿음이 생겼다. "

 책 중에서, 출판사 책 소개 중
책 중에서, 출판사 책 소개 중 ⓒ 진회숙

- 책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꿈이다. 모든 화려한 사랑은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하다."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좀 더 풀어 밝히면?

"굳이 책에 나온 리스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이 영원하지 않듯이 사랑도 그렇다. 한때 죽고 못 살 것 같이 사랑하던 사람들이 원수가 되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 인생에 가장 큰 감동을 준 음악은? 그리고 그 이유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이다. 개인적으로 견디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듯 했다. 클래식 전문가라는 허울 좋은 이름 뒤에 숨겨진 비루한 일상들이 큰 입을 벌리고 내가 평소에 품어왔던 자부심과 자존심을 여지없이 집어 삼키곤 했다. 사는 것이 서러웠고, 살고 싶지 않았다.

바로 그때 <운명>이 숙명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날 강의의 주제는 베토벤의 교향곡이었고,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운명>을 틀었다. 평소에 수없이 많이 들어온 <운명>, 하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를 외치는 베토벤의 목소리를 들었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며 음악이 폭발하는 순간, 내 가슴도 폭발하는 것 같았다. 가슴 속 깊은 곳 통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강렬한 전율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극렬한 고통 끝에 오는 카타르시스같은 것이었다.

베토벤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야할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닐까? 음악을 생업으로 삼으며, 희망을 잃은 어느 누군가에게 <운명>으로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 속으로 펑펑 울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 책에서 "인간의 삶이 간주곡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긴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삶이 너무 짧으니까."

- 클래식 음악이 저자의 삶에 주는 의미는?

"젊었을 때는 클래식 음악이 정서적으로 내 삶에 기쁨과 위안을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클래식 음악은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이것은 정말로 솔직한 대답이다. 그 동안 클래식 관련 책을 여러 권 내고, 방송 프로그램 구성과 진행, 클래식 강의 등 여러 일을 했다. 지금 그런 일을 한 동기를 돌아보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그것보다 고상한 동기로 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지금 클래식은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생업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책 중에서, 출판사 책 소개 중
책 중에서, 출판사 책 소개 중 ⓒ 진회숙


덧붙이는 글 | 저자 진회숙은 이화여대 음대에서 서양음악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했다. 1988년 월간 ⟨객석⟩이 공모하는 예술평론상에 〈한국 음악극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평론으로 수상, 음악평론가로 등단했고, ⟨객석⟩, ⟨조선일보⟩, ⟨한국일보⟩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예술평론과 칼럼을 기고했다. 이후 KBS와 MBC에서 음악프로그램 전문 구성작가로 활동하며 MBC FM의 ⟨나의 음악실⟩, KBS FM의 ⟨KBS 음악실⟩, ⟨출발 FM과 함께⟩, KBS의 클래식 프로그램인 ⟨클래식 오디세이⟩ 평화방송 ⟨FM 음악공감─진회숙의 일요스페셜⟩ 등의 구성과 진행을 맡기도 했다.



방송 바깥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서울시립교향악단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 프레시안 인문학습원 ‘오페라 학교’, ‘클래식 학교’, 고양 아람누리 문화예술 아카데미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한 바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오디세이》 《나비야 청산가자》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 《보면서 즐기는 클래식 감상실》 《나를 위로하는 클래식 이야기》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진회숙의 스토리 클래식》 《영화는 클래식을 타고》 《영화와 클래식》 《음악사를 움직인 100인》 《클래식 노트》 《365 클래식》 《우리 기쁜 젊은 날》 《무대 위의 문학 오페라》 《클래식, 스크린에 흐르다》 《영화 속 영국을 가다》 등이 있다.


너에게 보내는 클래식 - 삶에 지친 당신을 위한

진회숙 (지은이), 포르체(2024)


#진회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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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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