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상담,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모 포털에서 제공하는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색하면 1960년대 후반쯤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단어가 갑자기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미혼모'다. 이 단어가 등장한 이후 미혼모는 문제적 집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미혼모가 늘고 있다"는 기사가 빈번히 보도되고,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성적 문란이 미혼모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 각계 각층은 미혼모 '보호', '예방' 등의 대책을 활발히 강구하였으며, 미혼모 아기를 구하는 최선의 방책은 입양이라는 언설이 급속히 유포되었다.
이처럼 미혼모가 사회문제로 등장한 시기는 한국기독교양자회(이하 기독교양자회)가 196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혼모 상담을 시작했을 무렵이다. 미혼모 상담은 세계기독교 개혁선교회 소속 사회복지사 E. 엘바이나 스폴스트라씨가 기독교양자회 책임자로 있으면서 "성적 방종의 결과로 태어나는 아기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는 1971년 6년 간의 임기를 마치고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국내 입양 정착을 목표로 한국에 왔는데 이제 그 실험에 성공했으니 제가 없어도 한국인이 잘 운영할 수 있다고 믿고 떠나는 거지요."[조선일보 1971.11.3. "결연사업 (국내입양) 전문화 성공 기뻐, 거쳐나간 입양아 1,500 명"]
새싹회(회장 윤석중)는 "1969년 기독교양자회 안에 미혼모 상담실을 차려 영아들을 위탁 양육 후 양부모를 찾아준 것과, 그 밖에 보사당국, 법조인, 사회복지 지도자들과 접촉, 국내 입양법을 입안하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을 치하하며 스폴스트라 씨에게 16회 소파상을 수여했다.
미혼모 상담이 가져온 결과, 미혼모 아기 입양의 폭발적 증가
그가 떠난 후 기독교양자회는 미혼모 상담과 미혼모 아기의 국내 입양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어쩌다 저지른 실수로 일생을 망치는 미혼모를 선도하고, 따듯한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 아기 구제 조치가 강구되고 있다. 기독교양자회 미혼모 상담부 (서울 마포구 합정동 382-14) 통계에 의하면, 상담 의뢰 미혼모는 67년 15명, 68년 27명, 69년 73명, 70년 235명, 71년 349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금년 7월 현재 236명으로 연말까지 4백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 상담부에서는 … 만약 입양을 원하면 국내외 입양을 알선해준다. 68년 27명, 69년 73명, 70년 178명, 71년 194명, 72년 7월 현재 98명을 입양시켰다." (동아일보 1972년 11월 21일 "기독교 양자회 상담부 통계, 미혼모가 늘어가고 있다")
이같이 기독교양자회가 미혼모 아기 입양 사업을 펼쳐 나가자, 정부 인가 4대 해외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는 1972년 일제히 미혼모 상담을 시작했다. 미혼모와 아기를 보호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결과는 1970년대 미혼모 아기 입양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 미혼모 아기의 국내 입양 수는 1163명에서 1970년대 9075명으로 10배 가까이, 해외입양은 1960년대 1304명에서 1970년대 1만7627명으로 1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러한 가공할 수치를 보면 미혼모 '상담'과 '보호'라는 논리는 미혼모를 입양시스템 안으로 호명하고, 그들로부터 아기를 취해 입양보내는 '떡밥'과 '그물'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러한 입양 수치의 급증은 박정희 정부 때 북한으로부터 "아기를 파는 나라"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전두환 정부에 들어서는 아예 해외입양을 전면 개방하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아기들을 입양보냈다. 그리고 입양 보내진 아기의 90% 이상이 미혼모의 아기였다.
게다가 '미혼모'라는 프레임과 레토릭은 심지어 빈곤 가정의 아동까지 "미혼모가 버린 아기"로 신분 세탁을 하고 고아로 만들어 입양보내는데 활용되었다. 당시 해외로 입양보내진 아동이 성장하여 자신의 출생 정보를 찾기 위해 귀환하기 시작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입양인의 출생 정보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사례는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결국 1970년 전후 미혼모와 그 자녀를 보호한다는 논리에서 만들어진 미혼모 상담은 미혼 임산부는 물론 빈곤 가정의 아동까지 원가족과 분리하고 원가족을 알고 그들의 돌봄을 받을 아동의 기본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미혼모 '보호' 논리와 너무나 닮은 위기 임산부 '보호출산제'
미혼모 상담이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난 최근, 매체를 통해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위기 임산부'다. 반세기 전 '미혼모' 단어의 등장과 함께 '미혼모'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듯, '위기 임산부'에게는 잠정적 영아 유기범과 영아 살해범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고 있다. 이와 함께 위기 임산부와 아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활발하게 유포되더니 2023년 10월 갑자기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로 출산과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산부'가 출산 후 그 아기를 유기해도 법적으로 문제시하지 않는 보호출산제가 통과되었다. 그리고 서둘러 전국에 위기 임산부 상담소 16개소가 설치되었다.
경제적/심리적/신체적 문제로 출산과 양육에 어려움이 있다면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지원을 강화하면 될 일인데 아기를 합법적으로 유기하게 하다니 모두를 어리둥절하게했다. 게다가 보호출산으로 태어났다고 유기된 아동이 유기되지 않은 것은 아닐터인데, 보호출산제가 아동 유기를 줄일 것이라는 말로 정부는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단지 보호출산제 이전은 개인이, 이후는 국가가 유기에 개입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호출산제로 합법적으로 유기된 아기가 갈 곳은 여전히 입양 또는 아동보호시설인 것은 마찬가지다.
보호출산 시행 한 달이 된 지난 8월 19일 전국 위기 임산부 상담소에 419건의 상담이 있었고, 그중 16명이 보호출산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 남짓 지난 8월 말 상담은 697건으로 늘었고, 보호출산도 21명으로 늘었다. 앞으로 상담수와 보호출산 건수는 계속 늘어날 것임은 쉽게 예견된다. 반 세 기 전 미혼모 상담을 하고, 미혼모를 보호 시설에 입소시키고, 미혼모가 출산한 아기 수십 만 명을 입양보냈다. 그 어두웠던 대한민국의 입양의 역사가 윤석열 정부의 보호출산제를 통해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상담이라는 '떡밥'과 보호라는 '그물'
보호출산제는 언뜻 보기에도 윤리적 문제와 법적 다툼의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다.
첫째, 위기 임산부는 일주일의 숙려기간이 지나고 입양이 확정되면 보호출산 결정을 영구히 번복할 수 없다. 안정적인 결혼을 통해 계획된 경우라도 임신은 여성을 위축시킨다. 서구의 경우 임신 중이거나 출산 직후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 산모에게 입양동의 사인을 받는 것은 금지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출산 후 6주가 지나기 전 서명한 입양 동의는 효력이 없다.
둘째, 자신의 출생 정보와 친부모에 대한 알권리는 인간의 기본 권리이다. 이 기본권을 빼앗긴 사람들은 평생 정체성의 문제로 고통받는다. 자기 정체성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생명보다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는 딱 그 만큼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보호출산으로 생명을 살렸다"는 그 생명은 정체성이 지워지고 뿌리가 잘렸으니 온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셋째, 친부나 위기 임산부 가족이 아기를 키우기를 원할 경우 이들의 양육권 보장에 대한 조항은 어디에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밖에도 윤리적/법적 문제는 많다. 게다가 위기 임산부를 위한 심리상담, 주거/의료/생계 지원 등 지원정책은 거의 제자리 걸음인데 '보호출산 신생아 긴급 보호지 지원'을 위해 5억 4천만 원의 예산을 새롭게 편성했다. 내년부터 보호출산 아동 1인당 100만 원의 돌봄 지원금이 지자체에 주어진다. 위기 임산부의 '위기'를 완화하는 정책 없이 상담만 한다면 결국 위기 임산부의 아기는 보호출산제로 계속 유입될 것이다.
보호출산은 위기 임산부의 마지막 선택지라며 정부는 보호출산에 대한 우려를 진화하려 한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설득하여 위기 임산부가 보호출산 결정을 취소하고 양육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한다. 그러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임신-출산-양육 과정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지원정책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위기 임산부는 양육을 설득 당하고 모성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빈곤에 빠질 위험을 감수하며 양육을 선택하거나, 보호출산을 선택하고 아기를 버린 엄마라는 죄책감을 감수하는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정부, 국회의원, 아동권리보장원, 사회복지 전문가는 위기 임산부와 그 아기 사이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임산부가 처한 위기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 자신들의 본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와 그 아기에게 영원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제라도 위기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지원 강화를 고민하고, 위기 임산부의 재생산권과 아동의 알권리를 어떻게 지켜 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보호출산제를 수정하고 예산은 기관이나 시설이 아닌 사람을 위해 배분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 칼럼방 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