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춤출 수 없으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세상을 떠올리면서 두근두근 나도 몰래 가슴이 뛰고 덩실덩실 절로 어깨가 들썩거려야 한다는 뜻이다. 거대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즐거운 상상력이 혁명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혁명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러나 이 멋진 문구를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적용하기가 조금 어렵다. 1980년대처럼 춤을 '풍기 문란'의 상징으로 보는 인식은 줄었고 '댄스 서바이벌'을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도 히트를 쳤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여전히 부끄럽고 민망한듯 여겨진다. 다른 예술이나 활동에 비해서도 일상적으로 춤을 좋아하고 배우고 직접 추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시작된 춤서클 '
도시의 노마드'가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서클의 회장인 김현주 회원에게도 춤은 섣불리 다가서기 어려운 무언가였다.
그런데 스스로를 '몸치'라고 일컫는 그가 벌써 10년 가까이 춤을 추고 있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때로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그에게 춤은 어떤 의미일까? 춤은 과연 혁명을 만들 수 있을까? 김현주 회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도시의 노마드'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아카데미느티나무가 2014년에 춤 수업을 열었어요. '인간의 몸 안에는 춤이 있고, 몸의 움직임을 통해 나의 감정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수업의 콘셉트였어요. 수업이 반복되면서 참가자들이 춤 서클을 만든 건데, 올해로 10주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도시의 노마드'에는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춤꾼들이 모여있어요. 매월 춤추는 모임도 열고, 종종 엠티도 가고, 비정기적으로 공연도 합니다."
-어떤 공연을 하시나요?
"매해 4.16 세월호참사 추모 공연을 합니다. 1주기였던 201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공연하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추모 공연이나 관동대지진 100주기를 기리는 공연도 했고요.
이런 공연을 준비할 때는 춤 동작을 연습하고 외우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 이 사건이 어떤 의미이고 우리가 왜 공감하고 지지해야 하는지 되새기는 시간이 더 길어요. 관동대지진 추모 공연의 경우에는 2020년부터 이야기가 나왔는데, 현지답사도 하고 교육도 들었어요. 세월호 추모 공연을 할 때도 사전에 4주간 주 1회씩 워크숍을 진행했는데요. 참사를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어쩌다 '도시의 노마드' 활동을 시작하신 건가요?
"제가 2014년 말에 정리해고를 당했는데요. 그때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회사원들이 운동을 많이 하잖아요. 저도 요가를 했어요. 태극권도 배웠고요. 체력을 길러서 직장인의 의무를 다해야 하니까. 그런데 배신을 당해 보니 이제는 회사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몸을 움직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춤 수업을 찾아봤는데 기술을 배우는 수업이 많더라고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춤은 아니었죠. 제가 몸치라서 아무래도 선뜻 들어가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SNS에서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좌를 접했는데, 일단 이건 좀 만만해 보였어요.(웃음) 그래서 2016년 봄에 강좌를 듣고 '도시의 노마드' 활동도 하게 됐죠."
-원래부터 춤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자유로운 움직임에 대한 로망은 어릴 때부터 있었지만 잘 추지는 못했어요.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춤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넌 참 열심히 하는데 안 되는구나' 하고 불쌍히 여기는 학생이었어요.(웃음)"
-한국 사회는 아름다운 몸이나 동작에 대한 기준이 강한 편이고, 그 때문에 남들 앞에서 나의 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런 장벽은 없었나요?
저도 그런 게 조금 있긴 하죠. 지금도 있어요. 그런데 같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여겨지면 춤을 추기가 좀 더 쉬운 것 같아요.
"'도시의 노마드'에서는 여러 사람과 함께 춤을 출 때도 많은데, 그러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도 해요. 2016년 촛불집회 때는 광화문광장에서 춤을 췄는데 그 에너지가 굉장했어요. 지나가는 분들이 대부분 함께 해주셨죠. 그 힘으로 매주 집회 때마다 춤을 췄어요. 그해 겨울에 시작해서 다음 해 봄까지 스무 번의 주말마다 나가서 췄을 정도예요.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춤을 추다 보면 인간의 존재나 움직임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돼요. 사람마다 할 수 있는 동작이 달라요.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어린이, 나이 드신 분들은 기술적으로는 춤을 잘 추지 않는데도 움직임이 너무 아름답거든요. 또 함께 춤을 추면서 서로에게 집중하는 에너지 자체로 아름다운 공연이 되기도 하고요."
-회원님에게 춤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러게, 춤은 뭘까요?(웃음) 저에게 춤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회인 것 같아요. 제가 5년쯤 전에 유방암을 앓고 지금은 회복하는 과정인데요. 그러면서 친구랑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춤도 췄거든요. 춤을 추면 '내가 이렇게 느끼는구나. 내 몸과 감정이 이렇구나' 하고 느끼게 돼요. 그렇게 춤을 통해서 저 자신을 관찰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사회 참여적인 사람이 전혀 아니에요. 어떤 비극이 일어나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뉴스가 되는 거지, (그 사안에 얽힌)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잘 실감하지 못하잖아요. 내 존재만으로도 버거우니까요. 그런데 춤을 추면서는 그게 내 일로 다가오게 된 것 같아요. 춤을 통해서 그 사람들이 나처럼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실감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게 때로 어렵진 않나요? 서클의 회장직을 맡는 것도 무거울 수 있고요.
"사실 전엔 조금 힘들었어요. 큰 공연도 더 많았고 그걸 하기 위해 지원 신청서도 써야 했고요. 지금은 모두가 즐거울 정도로만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에너지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요. 그래야 활동이 오래가는 것 같아요."
-'도시의 노마드'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하는 게 있나요?
"12월에 춤 파티를 하려고 해요. 참여자들이 각자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작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서클 안에서도 사람마다 춤이 전혀 다르거든요. 저는 어떤 춤을 출지 아직 안 정했는데, 아마도 '계속 춤추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다짐하는 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회원님은 춤 말고도 연극, 그림, 민주주의, 자아탐색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좌를 들으셨죠. 지난해에는 아카데미느티나무의 종강파티 사회도 맡으셨고요. 아카데미느티나무의 매력은 도대체 뭔가요?
"연극과 그림도 춤도 모두 예술인데 저에겐 각각의 경험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연극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활동이고, 그림은 관찰에 좀 더 집중하는 것 같고, 춤을 추면 나의 마음을 보게 되고요. 각자 다른 즐거움이 있어서, 덕분에 제가 너무 바쁩니다.(웃음)
사실 이런 강좌는 다른 곳에서도 하는데, 아카데미느티나무는 굉장히 안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라서 내가 나 자신으로 있어도 되고 다르게 재단되지 않아요. 그래서 아카데미느티나무는 같은 걸 느끼고 같은 걸 호흡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인생의 친구는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회원들에게 많이 열려있는 곳이니, 원하는 강좌를 요청하면 열어주실 것 같아요."
-참여연대 회원은 언제 되셨어요?
"2016년에 가입했어요. 춤 수업을 듣고 좋아서 연극 수업도 들으려 했는데, 회원 가입을 하면 아카데미느티나무 수강료를 할인해 준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당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의 일이 계속 일어났거든요. 참여연대가 일을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후원이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올해 초부터는 참여연대 운영위원 활동도 시작하셨네요.
"조금 더 많은 참여연대 회원들이 아카데미느티나무를 알고 함께 활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운영위원 자리가 다른 회원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 같았어요. 그리고 제가 워낙 참여연대에 신세 많이 졌으니까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내년에는 (운영위원회 활동을 통해서) 친구들을 더 모집해 보고 싶어요. 의미있는 다큐멘터리도 제작되고 문화제나 추모 활동도 많은데 참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때가 많잖아요. 이런 데를 같이 가는 모임을 만들어봐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회원님께 참여연대란 무엇일까요?
"얼마 전에 <휴먼 카인드>란 책을 읽었어요. 인간이 악하고 폭력적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역사에서 인류는 친절했고 결국 친절한 사람이 살아남게 되어있다는 거죠.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참여와 연대의 희망이 바로 참여연대인 것 같아요. 인간은 전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연대하는 존재라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라고요. 제게 참여연대는 그 희망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 박효원, 사진 박영록 작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10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