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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아내와 대화가 반으로 줄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화하는 게 어색하고 힘들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이제는 힘겹다. 얼마 전부터 서로 존댓말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심하게 뜬금 없었다. "여보, 여기 좀 앉아 보세요." 왜 저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일까. 혹시나 내가 잘못한 게 있나 하고, 머릿속 블랙박스를 48배속으로 빠르게 재생해봤는데 딱히 흠이 없어보여서 기세등등하게 앉아서 "왜?" 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서로 존댓말을 사용할 거예요."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인성 교육에 매우 큰 효과가 있답니다. 아내는 남는 시간에 주로 아이 교육에 관한 영상들과 자료들을 즐겨 찾아보곤 하는데, 그 중 아이 인성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장에 실천에 옮긴 것이다.

머리로는 끄덕끄덕했는데, 막상 존댓말을 사용하려고 하니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살아오면서 얽히고설키며 명징하게 직조해진 존재의 결이 있고, 그 원초적 본능은 언어에 다 녹아져 있는데, 이제 와서 그것을 뒤집자니 이것은 일종의 죽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안 될까 라고 말을 내뱉었는데, 오감은 눈치채지 못한 영역을 육감이 재빠르게 캐치해서 그 말을 끝까지 내뱉으면 뒤집니다 뒤집니다 라고 경고를 보냈다. 뉴런은 혀보다 빨라서, 빠르게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안 될까'에 '요' 를 붙임으로 이제부터 가야 할 천리길에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만들어주었다.

부부 우리는 이제부터 서로 존댓말을 사용할 거예요.
부부우리는 이제부터 서로 존댓말을 사용할 거예요. ⓒ 픽셀스

어색했다. 불편했다. 호칭도 좀 더 부드럽게 "여보오오" 라고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아내를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대화도 반 이상으로 줄어버렸다. 신경이 곤두섰는데, 세음 나음은 엄마 아빠가 존댓말 쓰는 게 신난다고 덩달아 "어머니" "아버지"하고 부르며 난리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쓰다 보니 제법 입에 붙는 맛이 있었다. 아이가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말이 씨가 되어서 그런지 이전보다 존중받는 기분이 싹트는 것 같아서 만족도가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평소 같았으면 사소한 것으로 시작한 다툼이 큰불이 될 때가 있었는데, 존댓말을 쓰면서 싸우다 보니 말이 입에 쫙쫙 붙지를 않아서 더이상 불씨가 번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여보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요. 그런데 나는 좀 더 배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니까요, 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가요. 그랬군요, 조금 더 대화하고 소통을 해나가면 좋겠어요. 이게 연극을 하는 것인지 말다툼을 하는 것인지 현실감각이 없어서 서로 웃음이 터져서, 금세 갈등이 해소되곤 했다.

물론, 아이들이 다 잠들면 다시 반말 모드로 돌아가기는 하는데, 이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부모 모드에서 부부모드로 변환이 되는 것 같아서, 그때 나누는 대화는 좀 더 톡 쏘는 탄산 같은 맛이 있고, 더 진솔하고 애틋하게 느껴지곤 한다.

결혼 10년차, 사랑은 여전히 생물 같아서,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이고, 상처 입기도 하고, 아물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며,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것들보다 선명히 만져지며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듯하다. 언제쯤 사랑을 다 알지는 모르겠지만, 알지 못해도 적어도 여전히 사랑과 함께, 사랑을 하며, 사랑으로 살아 있고 싶다 -

사랑하며 산다는 건 언제쯤 사랑을 다 알지는 모르겠지만, 알지 못해도 적어도 여전히 사랑과 함께, 사랑을 하며, 사랑으로 살아 있고 싶다.
사랑하며 산다는 건언제쯤 사랑을 다 알지는 모르겠지만, 알지 못해도 적어도 여전히 사랑과 함께, 사랑을 하며, 사랑으로 살아 있고 싶다. ⓒ 픽셀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결혼#일상#부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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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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