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직장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달, 제일 기다리는 달이 10월일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공휴일이 주중에 있으면 마치 선물받은 것처럼 뭔가를 꼭 해야 할 것처럼 마음이 들뜨곤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여행계획도 세우고 또는 아이들과 나들이를 강행하기도 했었다. 더구나 10월엔 결혼기념일이 있다보니 내게는 10월이 각별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직장인이 아니다. 한 달에 공휴일이 3일씩이나 들어있는 10월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매일 새벽시장을 보고 도시락을 만들어 팔아야 수익이 생기는 자영업자이다.
구멍이 슝슝 뚫리게 일해도 한 달 월급을 그대로 받는다던가 월차, 연차를 써서 징검다리를 고속도로로 만드는 마법은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
뉴스를 보니 국군의날(1일)도 나라에서 임시공휴일로 만들어 부진한 내수를 끓어 올리려는 계획이고 그러면 자영업자도 좋을거라고 짐작하는듯 하다.
그런데 나는 그것 보다도 이번 달 일을 며칠을 할 수 있나를 먼저 생각한다. 매달 지출해야하는 고정비와 치솟는 물가로 재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보니 하루 매출이 없으면 큰 차이가 난다. 그러다보니 나만 왠지 딴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점심 도시락을 파는 일이다보니 직장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매출이 없어지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어쩌랴!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않았던가?
남편과 상의후 우리는 1일만 지인들과 소풍으로 쉬고 3일과 9일은 그대로 가게문을 열기로 했다. 공휴일에도 근무를 해야하는 주유소 충전소 그리고 핸드폰가게 소규모 공장등이 대상이어서 매출은 반토막이 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 분들 행복한 만찬이 쉰다고 생각했다가 가게 문을 연다는 소식이 보물 찾은 것마냥 반갑게 느껴지면 좋겠다.
지난 1일(화요일)은 가게 문을 닫았다. 모처럼 강화도 마니산 자락 야영장에서 고기도 굽고 푸르른 나무 사이에서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보물찾기를 한다며 어린 아이처럼 산길을 헤집고 다니며 노란 종이 조각 하나에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살짝 차가운 산바람과 함께 날려가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새벽시장에 나가려는데 우리 가게에 화요일마다 반찬을 가지러 오시는 동네 어르신을 만났다. 아침 일찍부터 폐지를 주으러 나오시나보다.
"어르신 어제 우리 가게가 일을 하지 않았어요. 오늘 오후에 들르세요. 반찬 준비해 놓을께요."
어르신께서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둘이 사시는데 폐지를 모아 생활을 하신다. 우리가게에서 화요일 금요일 일주일에 두번 반찬을 가져가시는데 지난화요일 우리 가게에 오셨다가 닫힌 문을 보고 돌아가셨을 생각을 하니 죄송스러웠다.
폐지를 모아 생활하시니 우리 가게 앞에는 일부러 폐지를 모아 놓는다. 채소박스며 생선박스등 돈이 될만한 것은 모두 모아두면 지나가시다 가져가신다.
오늘 오후 어르신께서 오신 김에 박스 챙기는 동안 반찬을 챙겨 드렸다. 어르신은 우리가게에 오실 때 보물찾기하는 마음으로 오신다. 오늘은 못쓰게된 솥이며 그릇도 챙겨드렸다. 작은 일이지만 어르신은 활짝 미소를 보이신다.
그리고 오늘은 내게도 선물도 건네셨다.
"과일가게에서 덤을 많이 줬어" 하며 건넨 건 살짝 흠집있는 배 한알과 사과 두알이다.
"잘 먹을게요!" 어르신이 기분 좋으라고 일부러 크게 대답했다.
어르신에게는 10월에 공휴일 몇개는 중요치 않다. 그저 매일 매일 동네를 돌며 하루종일 폐지를 수레 가득 모아야 하루를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가끔씩은 집에만 있던 아들과도 나오시기도 하시는데 요즘처럼 선선한 날이 소풍날이다.
우리 가게가 주중에 문을 닫으면 때론 힘든 분들이 생길 수 있다 생각하니 남은 공휴일에 문 열기를 결정한 건 잘한 것 같다. 오늘은 고등어구이와 김치콩나국 그리고 두부조림이다. 채소가격이 요즘 너무 비싸서 시장보기가 쉽지 않다. 가격이 그나마 평준화된것 위주로 장보기를 마치고 기분좋게 도시락을 준비한다.
큼직한 고등어를 반으로 잘라서 튀겨내고 알싸한 양념으로 두부조림을 만들었다. 생선의 비릿함을 잡아줄 김치콩나물국을 칼칼하게 끓여내고 까만색 건파래볶음과 노란 계란콘범벅 그리고 초록색깔 열무나물을 조물조물 무쳤다.
가을 냄새가 나는 도시락이면 좋겠다. 도시락을 열었을 때 알록달록 말을 걸어오는
행복한 도시락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