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일에 맞춰 추모제를 여는 일본인들이 있다. 일본 구마모토현 시민단체 회원들이다.
8일 오전 10시, 명성황후 시해 사건 129년을 맞아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재일 대한민국 민단 구마모토현 본부회관 3층에서 '명성황후 기신제(추모식)'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일본인이 주도해 만든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모리모토 이쿠히로, 森本 育博)'과 재일 대한민국 민단 구마모토현 지방본부(단장 정영진)이 공동주최했다. 역사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다나카 노부유키(田中 信幸)씨 등 평화헌법을 살리는 구마모토와 교과서 네트 구마모토 회원들도 참석했다. 마침, 일본을 방문 중인 부산외대 대학생 30여 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역사 직관하고 마음속 우러나오는 진정한 우정 쌓아가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48명의 일본인 중 21명이 구마모토현 출신이다. 당시 한성신보사(일본의 한국 침략을 위한 선전 기관지로 1895년에 창간, 일본 외무성의 기밀보조금으로 창간) 사장 아다치 겐조가 구마모토 출신이었다. 그는 미우라 고로(명성 황후 시해를 지휘한 배후 조종자) 공사의 의뢰에 따라 구마모토 낭인들을 동원했다.
이같은 내용을 접한 역사 교사를 역임한 하나 도시오(지난해 94세로 사망)씨가 주도해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발족했다.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범을 추적하는 일을 자임했다. 시해범들이 제대로 죗값을 치렀는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살폈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는 매년 10여 명의 회원을 이끌고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홍릉을 찾아 참배했다. 2005년에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후손을 찾아 설득해 함께 참배하기도 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카이 도시오씨가 생전에 만든 연이 전시됐다. 그는 매년 추모제 때마다 '명성태황후 기신제'(추모제)라고 새긴 연을 만들어 주변인들과 나눴다. 또 벽면 한쪽 편에는 명성황후 가해자들의 이름을 새긴 벽보를 게시했다.
"일본과 한국의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우정을 쌓아가자"는 글귀도 붙였다. 아래에는 "일본인들을 강하게 깨우치게 하고자 하는 뜻"이라고 의미를 설명해놨다.
추모제는 모리모토(森本) 대표와 사노(佐野) 부대표의 참배와 정영진 민단 대표의 인사말 순으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다나카씨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구마모토현 출신자 21명이 가담한 역사적 배경과 죄과를 설명하고 "진정한 한일 우호를 위해 일본인들이 이런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