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가보고 싶은 섬이 있었다. 이름하여 국화도(菊花島). 경기 화성과 충남 당진 앞바다 사이에 살포시 내려앉은 작은 섬이다. 꽃이 늦게 피고 늦게 진다고 해서 늦을 '만(晩)' 자를 써 만화도라 불렸으나, 일제강점기 '들국화가 많이 피는 섬'이라 해서 국화도라 바꿔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섬에 가시거든 들국화가 없다고 실망하지 마시라. 발 가는 대로 섬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해변에 앉아 있노라면, 어느새 국화 향 머금은 듯한 바람결을 느낄 수 있다. 섬 이름이 주는 마법일 것이다.
국화도는 행정구역상으로 화성시에 속한 섬이지만 충남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에서 더 가깝다. 화성 궁평항에서는 40분이 걸리는데 장고항에서는 20분이면 갈 수 있다. 수도권에서 가깝고 섬 둘레가 2.7km로 아담해, 가을 당일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섬 여행의 매력은 물때에 따라 변하는 섬 주변의 풍광이다. 밀물 때는 작지만 썰물 때면 날개를 넓게 펴서 두 배가량 크기로 오지랖을 넓힌다. 국화도에 딸린 무인도 매박섬(토끼섬)과 도지섬이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볼거리와 체험 거리가 기대 이상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 트레킹과 낚시, 어촌체험이 가능한 섬
국군의 날인 지난 1일, 서울에서 승용차로 1시간 40분 거리의 당진 장고항으로 향한다. 대한민국 국가어항 중 하나인 장고항은 축구장 서너 개보다 큰 주차공간이 있지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여객선 매표소에 물어보니, 주말이면 캠핑 차량과 낚시객들의 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장고항에서 오전 10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국화도로 향한다. 장고항에서 3km 남짓한 짧은 거리지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일은 늘 설렘을 준다. 티 없이 맑은 창공을 닮은 바다 위에 낚싯배와 꽃게잡이 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국화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소나무숲과 해변 모래사장 위로 펜션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어깨를 맞대고 있다. 선착장에는 전날 섬에 머물다 출항하려는 여행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국화도는 당일치기 코스로도 좋다. 하지만 하루 이틀 섬에 머무르며 고즈넉하고 소박한 어촌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보낼 수도 있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물 맑은 모래사장이 있어 여름이면 안전한 물놀이가 가능하고, 아이와 함께 호미를 들고나가 고둥을 잡거나 바지락을 캐는 해루질이 가능하다. 또한, 어선을 타고 나가 꽃게나 간자미를 잡는 그물 체험이 가능하고, 좌대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섬 동쪽과 서쪽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국화도 사람들은 "일출은 선착장의 왼쪽 끝 바위에서, 석양은 섬 서쪽의 갯바위에서 바라보는 게 최고"라고 일러준다.
"올해는 꽃게가 대박"... 그물체험으로 잡은 꽃게 손질하며 싱글벙'굴'
섬 둘레길은 통상 선착장에서 우측으로 시작하는 데 그 반대로 진행해도 문제없다. 다만 바닷물이 많이 빠진 썰물 때라야 매박섬과 도지섬까지 둘러볼 수 있다.
선착장 좌측으로 트레킹에 나서는데 한 펜션 앞마당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손길이 분주하다. 다가가 보니, 꽃게잡이 그물에서 꽃게를 하나씩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살아있는 꽃게들이 집게발을 연신 들어 꽤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때,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준다. 수도권에 사는 지인들끼리 추렴해 꽃게잡이 체험차 전날 국화도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간밤에 펜션 주인과 배를 나가서 그물을 쳐뒀다가 아침에 거둬왔단다.
그러면서 "다음번에 지인들과 함께 와서 그물체험을 해보면 재밌을 것"이라며 체험을 권한다. 큼직한 고무 그릇에는 살이 꽉 차 보이는 꽃게가 한가득이다. 함께 꽃게 작업을 돕던 주인아주머니 손정명(66)씨는 "올가을 꽃게는 예년과 다르게 크고 살이 차서 먹음직스럽다"며 흐뭇해한다.
아주머니는 "낚싯배를 활용한 꽃게체험은 이제 거의 끝났고, 간자미 체험이 남아 있다. 체험은 1회에 30만 원인데 펜션 독채를 사용하는 고객들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매박섬 도지섬'
해안을 따라가다가 섬 남쪽에 있는 도지섬으로 향한다. 우측 산기슭 백사장에는 오랜 세월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하얗게 바랜 조개와 소라 껍데기들이 밀려와 하얀 밭을 이루고 있다. 이어 도착한 도지섬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지질구조(단층, 습곡, 암맥)를 볼 수 있다.
국화도 도지섬과 매박섬은 국가지질공원 중 하나인 화성지질공원에 속한다. 화성지질공원은 화성시 서부지역의 간척지, 해안가, 섬 등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선캄브리아시대, 고생대, 중생대 그리고 신생대까지 전 시대에 걸쳐 다양한 암석이 분포해 훌륭한 자연 학습장 역할을 하고 있다.
도지섬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해안데크를 따라 북동쪽 매박섬으로 향한다. 반대편에서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왔다는 중년의 산악회원들이 삼삼오오 걸어오고 있다. 바다 건너편으로는 당진화력발전소가 흰 연기를 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그 또한 가을의 한 풍경이 된다.
어느새 매박섬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들물이 앞길을 막는다. 환경부 특정도서로 관리되고 있는 매박섬엔 작은 백사장도 있어,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섬 주인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도지섬 탐방에 시간을 많이 허비한 탓에 매박섬 탐방이 어렵게 됐다.
20년 이상 국화도에 사는 '서울 할머니'가 부러운 것은...
섬을 한 바퀴를 돌고 난 후 펜션이 밀집해 마을에 들렀다.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할머니 한 분이 "기웃거리지만 말고 잠시 들어와 쉬었다 가라"며 손짓을 한다. 할머니와 말씀을 나누다 보니, 올해 88세다. 서울에서 태어나 쭉 서울에서 살다가,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한 자녀들 따라 국화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섬살이가 적적해 서울을 자주 오가며 친구들을 찾았으나, 이제는 국화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펜션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수건 정리 등 간단한 자투리 일을 돕고 있는데 운동도 되고 무료하지 않아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집도 있고, 자녀의 펜션 사업도 잘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는 할머니에도 한 가지 부러운 게 있다고. 젊었을 적 할아버지와 여행을 많이 다닌 DNA가 아직 남아 있음인지 "이곳저곳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며 해사하게 웃는다.
국화도 이재철(62) 이장에 의하면 국화도에는 30여 가구에 48명(10월 10일 기준)이 살고 있다. 원주민은 10여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지인이다. 토박이는 주민들은 낚싯배를 운영하거나 바지락체취 등에 종사하고, 외지인들은 주로 펜션업을 하고 있다.
국화도는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2020년 어촌뉴딜 300 공모사업'에 선정돼 선착장 인근에 커뮤니케이션센터의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건물은 대합실(매표소), 커피숍, 식당 등을 갖춘 복합공간으로 오는 12월 개장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화도는 더욱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1) 위 치
경기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
2) 가는 방법
화성시 궁평항↔국화도(서해도선)
- 성수기 주말 하루 4회, 비수기 주말 하루 3회 운항(40분)
*여객선비 : 왕복(대인 20,000원 소인 12,000원), 사전 예약 필요.
당진시 장고항↔국화도(국화훼리)
- 하계 하루 7회, 동계 하루 6회 운항(20분)
*여객선비 : 왕복(대인 12,000원. 소인 6000원)
3) 국화도 트레킹(난이도 하)
'해안+무인도·숲' 둘레기 종주 (3시간)
국화선착장→백사장→매박섬→해안테크→도지섬→국화마을→마을 숲길→ 국화마을→국화선착장(매지섬과 도지섬을 둘러보려면 썰물 때가 좋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섬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