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으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뉴스타파> 소속 봉지욱·한상진 기자, 김용진 대표가 자신들이 당한 압수수색(압색)과 출국금지 조치 경험담을 모아 지난 7일 <압수수색>이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압수수색과 출국금지를 동시에 받았기에, 써 내려간 문장이 우울, 비통, 분노가 넘실댈 것 같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압색출금동지회'라 명명한 뒤 "괴물과 싸우려면 지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흥미롭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라고 밝혔다.
실제 책은 현장감이 넘치는 문장으로 구성됐다. 이 때문에 마치 독자가 검사와 수사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고, 서울중앙지검 10층에 자리한, 두 명만 앉아도 꽉 차는 디지털포렌식센터 '비좁은 방'에서 모니터 두 대를 하루 종일 바라보며 비지땀을 흘린 채 포렌식을 당하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러한 각오에도 압색 당사자인 기자들은 일관되게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특히 지난해 9월 14일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이 동시에 뉴스타파 편집국과 봉 기자, 한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한 날을 회상하는 장면을 보면, '어떻게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봉 기자와 한 기자의 소회다.
"그날 이후 습관이 하나 생겼다. 엘리베이터가 우리 집에 다다라 문이 열리면, 아파트 복도 비상계단부터 쳐다보게 된 것이다. 수사관이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압수수색 트라우마다." / 봉지욱
"압수수색은 생각지 못한 후유증을 남겼다. 시간이 갈수록 그날의 기억이 부풀어 올랐다. 이제는 거의 사라졌지만, 한동안 나는 압수수색을 당한 그 시간만 되면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시달려야 했다. 비슷한 시간에 초인종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랐다." / 한상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들 기소한 검찰... 법원에 지적 또 지적
이들 3인이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한 공통된 이유는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과 연관된 의혹을 취재했기 때문.
구체적으로 검찰은 이들 3인이 '윤석열 후보가 대검 중수부 수사 당시 박영수 특검의 청탁을 받고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에 대한 수사를 무마했다'는 취지로 보도해 대통령 윤석열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검찰은 지난 7월 한상진 기자와 김용진 대표를 대장동 개발업자 김만배씨,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과 묶어서 1차로 기소했고, 이어 8월에 봉지욱 기자를 허재현 <리포액트> 기자 등과 묶어 2차로 기소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1차 공소장에는 대통령 윤석열이 보도로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보다 '이재명 공산당 프레임'이라고 이름 붙은 주장이 더 비중있게 담겼다. 한 기자와 김 대표가 기소된 공소장 초안에 명기된 내용이다.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제기와 수사가 예상되는 등의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피고인 김만배는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돼야 자신에 대한 형사처벌을 피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이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①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과 무관하고, 오히려 성남시의 이익을 위해 마치 공산당처럼 민간인업자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빼앗아 간 사람이다'라는 취지의 이재명 후보를 대장동 개발비리와 단절시키는 내용의 허위사실(소위 '공산당 프레임')과..."
그리고 지난 7월 31일 열린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부터 대반전이 일어난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허경무)는 상당 시간을 할애해 70여 페이지에 이르는 검찰 공소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공소사실을 벗어나 불필요한 기재가 너무 많아 여사기재를 금지하는 공소장일본주의 위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허 부장판사는 현재 다른 재판부에서 진행 중인 대장동 관련 재판을 언급하며 "이 사건 공소장에 '이재명 공산당 프레임'이 왜 들어가 있냐. 사건의 핵심인 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허 부장판사는 최근 석명준비명령을 통해 1차와 2차 모두에 대해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을 지적하면서 공소장 변경을 명령했다. 공소장일본주의는 검찰이 법원에 제출하는 공소장에는 법원(판사)에 사건에 관한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물론 검찰은 이에 대해 "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여부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공소장변경을 명령한 사실이 없다"라고 밝혔다.
압수수색 대응 매뉴얼 남긴 봉지욱 "아이폰도 안전하진 않다"
앞서 허 부장판사의 발언에서 살폈듯 이 사건의 핵심은 '보도가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다. 봉지욱·한상진·김용진 기자 3인 역시 <압수수색> 책에서 "이 사건은 검사 윤석열이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을 봐줬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재판이) 본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3인이 법정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압색과 출금, 기소 등 몇 개의 단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고단함이 있다. 이에 대해 봉 기자는 "결국 기자들에게 공포심을 자리잡게 만들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4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뉴스타파는 여러 공직 후보자를 검증했다. 보도로 확인한 부적격 후보자는 공천이 취소되거나 선거에서 떨어졌다. 언론사라면 공직 후보자 검증 보도는 무엇보다 우선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뉴스타파와 내가 악의적으로 비방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를 벌였다. 이런 식으로 공권력이 언론보도에 개입하면 권력자 비판은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윤석열 명예훼손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권을 비판하면 압수수색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기자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난관에도 이들 3인은 자신들이 겪은 과정을 <압수수색>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풀어냈고, 11일 제주, 12일 부산에 이어 16일 서울에서 독자들을 만난다.
12일 봉 기자는 <오마이뉴스>에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압수수색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생겼고, 신변의 위협도 가끔 느낄 때도 있어 가족들과 내 주소지를 분리할 생각까지도 했지만 결국 여러 시민들을 믿고 그냥 가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윤석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압수수색 말미 특별부록 형식으로 담긴 '압수수색 대응 매뉴얼'을 꼭 살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우리가 압수수색을 처음 당했을 때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막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일반인 같은 경우는 압색을 당할 때 수사관이 휴대폰 열려고 하면 그렇게 열어줘야 하는 줄 알고 비밀번호도 알려준다. 거기서 사건과 관계없는 것들 막 나오고 하는 거다. 우리(뉴스타파)도 그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검사들이 왜 핸드폰을 바꾸는지 알겠더라. 나는 그걸 뒤늦게 안 거지만. 아무튼 특별부록은 윤석열 집권 3년차,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우리 권리는 우리 스스로 지키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대응 매뉴얼이다. 봐줬으면 한다."
봉 기자 말대로 매뉴얼은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됐다. 압수수색 집행 전 수사관이 아파트에 방문했을 때 해야할 행동, 검찰 압수수색 전 휴대전화를 바꾸는데 괜찮은지 여부, 안티 포렌식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효과가 있는지, 압색을 당하면 집안이 난장판이 되는지, 수사관이 휴대전화를 압수해서 비밀번호를 알려달라 하면 어찌해야하는지, 무엇보다 갤럭시 휴대전화를 아이폰으로 바꾸면 안전한지 등이 담겼다.
봉 기자는 "아이폰이라고 해서 디지털포렌식을 완벽하게 막을 순 없다"라면서 "아이폰도 자금 비밀번호를 숫자 4자리로 할 경우는 뚫릴 수 있다"라고 답했다.
끝으로 그는 "이 사건은 민주화 이후에 우리 언론 역사에서 가장 정점으로 기록될 언론 탄압의 역사"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놔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쓴 책이다. 언론탄압을 한 윤석열 정권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는 의미가 있다.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책에서는 "특검으로 이 사건의 숨은 배후를 밝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