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은 유학자 류성룡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이다. 문화·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건축으로도 손꼽힌다.
2010년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 2015년 '징비록'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유네스코 2관왕의 자리에 올랐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곳에 위치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의 병산서원은 낙동강을 앞에 두고 화산의 지형적 특징과 자연경관을 적극 활용하여 지어졌다. 유교문화와 건물배치, 그리고 역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
류성룡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천거했을 뿐 아니라, 이순신이 백의종군하게 되자 그의 복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이순신이 전장에서 거둔 성과를 조정에 보고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도록 했다. 이순신의 후견인이자 멘토였다.
하회마을 탈춤굿 관람과 고택 답사에 이어서, 10일 병산서원을 찾았다. 정문인 복례문을 들어서면 광영지와 만대루를 만난다. 만대루는 유생들이 병산의 산수를 보며 여가를 즐기던 장소다. 복례문, 광영지와 함께 사색의 공간이다.
만대루의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다. 누마루를 받치는 1층 공간에는 휘어진 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했다.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우리나라 서원의 문루 중 가장 긴 건축물로 기둥 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은 7폭의 자연 병풍이다.
만대루 다음 건물이 입교당이다. 마루에 앉았다. 답사객인 듯 누워 있는 사람, 해설하는 사람,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류성룡과 이순신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병산서원의 입교당은 강학과 토론이 이루어졌던 중심 공간이다. 유생들이 모여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학문적 토론을 벌였던 장소다. 만대루와 병산이 어울려 한 눈에 들어온다. 해설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병산서원은 전통적인 서원·향교의 건물배치 방법인 전학 후묘 방식을 따랐다.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뒤쪽에 묘당을 배치했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쓰던 기숙공관이다. 상급생 기숙사인 '동직재'와 하급생 기숙사인 '정허재'로 이름 지었다.
입교당과 동재인 '동직재'를 돌아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존덕사가 있다. 존덕사는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 수암 류신을 배향하는 제향공간이다. 장판각은 류성룡이 저술한 문서의 목판을 보관한 곳이다.
류성룡(1542.10.1~1607.5.31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그리고 정치가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유보, 호는 서애이며, 영의정을 역임했다. 이순신을 발탁하고 지원해 조선이 해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전쟁 후에는 전란의 기록인 징비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