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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 의료는 전 세계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더욱이 최근 한류 열풍에 힘입어 의료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과거에는 미용, 성형 위주였는데 최근에는 질병 치료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꽤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의료기관들이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매출을 늘릴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국제수가다.

국제수가가 뭐냐고요?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건강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다. 건강보험 대상이 아닌 경우 일반 진료를 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건강보험 적용 수가의 100%를 본인이 모두 부담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다. 내국인들의 경우에도 간혹 건강보험료를 체납하여 자격을 상실했거나 타인에 의한 상해 등 명백히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진료를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대부분 건강보험 적용 수가의 100%를 본인이 부담한다.

그런데 몇몇 의료기관에서 국제수가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외국인들에게 건강보험 적용 수가의 몇 배를 받기 시작했고, 이것이 빠르게 늘어나 지금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국제수가를 책정하여 적용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의료기관에서 얼마나 많이 받는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해당 의료기관에서 자발적으로 공개할 리 만무하고 정부는 이를 강제할 의지가 없다. 아니,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작년 10월 강민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대병원 국정감사에서 서울대병원의 국제수가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서울대병원의 국제수가는 같은 국립대 병원인 부산대 병원보다 4배 정도 높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회적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외국인들이니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거주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도 국제수가 적용?

국제수가가 정말 그래도 될 만한 타당성이나 합리적 근거가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동일한 상병으로 진료하는 데 외국인이라고 해서 더 많은 인력, 시간, 물자가 투여될까? 그럴 리가 없다. 물론 그들 중에서 극히 일부(VIP)는 그럴 수 있겠으나 그건 내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통역 서비스가 아주 잘 갖춰져 있다면 통역에 필요한 인력에 대한 비용이 추가될 수 있겠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 수가의 몇 배의 가치가 있는 통역 서비스를 갖추고 있는 의료기관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혹시 그런 통역 서비스가 있다면 그건 통역에 대한 수가를 추가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외국인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충분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면 내국인보다 질이 떨어지는 진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적용 수가의 몇 배가 되는 국제수가를 받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만약 이게 다른 나라에도 알려진다면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망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한국 의료를 경험하기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줄어들 것이다.

 공감센터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후원으로 수행 중인 이주민 의료비 지원사업
공감센터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후원으로 수행 중인 이주민 의료비 지원사업 ⓒ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이뿐만이 아니다. 탐욕스러운 몇몇 상급의료기관들은 국내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도 국제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에게 국제수가는 말 그대로 죽음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민 ***님은 역시 같은 미등록 이주민인 남편과 함께 살다 작년에 임신했다. 다니던 동네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앞두고 받은 검사에서 태어날 아기의 항문이 막힌 것 같다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출산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병원비였다. 자연분만으로 4일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1500만 원 가까이 나왔다. 비슷한 조건일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내국인의 병원비는 몇십만 원 수준이다. 아무래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 하는 미등록 외국인이므로 병원비가 500~600만 원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했는데 무려 3배 가까이 나온 것이다.

병원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할인을 받지 못 했고 100만 원당 한 달에 10만 원의 높은 이자로 본국 가족들이 대출을 받아서 병원비를 내고 퇴원했다고 한다. 그나마 필자가 근무하는 공감센터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후원을 받아 수행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님은 이후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500만 원의 지원 덕분에 온 가족이 살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근거 없는 국제수가 당장 폐지하라

필자는 미등록 이주민 의료비 지원사업을 통해 미등록 이주민들의 열악한 현실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이런 이들까지 포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이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긴급 의료비 지원제도가 좀 더 확대돼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면 사랑의 열매와 우리 같은 민간단체들이 당분간 좀 더 애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제수가는 다르다. 이 문제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개선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지금 당장 바로 개선해야 할 문제다. 특히나 장기간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국제수가를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국제수가를 적용하는 의료기관에 이에 대해 항의하자 의료 목적으로 단기간 방문하는 외국인과 장기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민을 구분하기 어려워서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말이 안 된다.

이들이 과거 사용하던 여권, 외국인 등록증 등 이들의 장기 체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들은 얼마든지 있다. 보건 행정 당국은 지금 당장 국제수가를 규제할 방안을 마련해서 시행해야 한다. 의료기관들은 지금 당장 국제수가를 장기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의료 선진국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사기행각인 국제수가 제도는 지금 당장 개선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김정수 님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이사장입니다.


#이주노동자#국제수가#병원#진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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