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주하는 곳에서 제1회 아파트 예술축제가 열렸다. 경기도에서 지원하고 안양예술인총연합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경기도 소재 아파트 단지에 예술축제를 열어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입주한 지 8년 차 되는 이곳에서는, 코로나 시절 잠깐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어린이날 행사가 있어왔다. 주민축제와 주민예술축제는 어떻게 다른 걸까? 종일 축제장을 돌아다니며 비교해 보았다.
주민들 위한 강좌 열리고, 주민 작품 전시되고
주민축제와 주민예술축제의 차이점 첫번째, 축제 전에 아카데미 강좌가 열린다.
지난 9월 21일과 22일에 단지 내에서 문학, 사진, 그림 강좌가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열렸다. 이틀간의 강좌였지만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이 주말을 이용해 강좌에 문을 두드리셨다.
그동안 호기심은 갖고 있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시도를 하지 못하였다가 집 앞에서 하는 것이니 부담 없이 참여하신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글쓰기와 사진, 그림 강좌를 수강하시고 자신만의 작품을 하나 완성하셨다. 그리고 안양시의 지원을 받아 단지 내 작은 도서관에서도 글쓰기 수업이 있었다.
글쓰기 강좌에 나도 참여했었다. 주민들과 어울려 서로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험을 나누게 되었고 금세 공감대가 생겼다.
육아휴직을 하고 돌이 막 지난 아이를 키우는 젊은 아빠도 있었고 수험생 아이를 둔 엄마도 있었다. 성인이 된 딸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는 어머니와 정년 퇴임 후 이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어르신도 계셨다. 모두 글로 추억을 소중히 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셨다.
두번째, 주민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된다.
"내 이야기가 글이 되니 인생이 더 값진 것 같아"
축제 전 주민들에게 아파트를 주제로 한 작품을 모집하여 선정 후 시상하였다. 축제 전후로 그림과 사진, 글을 전시했는데 특히 아이들의 그림이 눈에 띄었다. 이제 막 크레파스를 손에 쥐기 시작한 아이들의 그림은 노란 병아리의 솜털 같은 생각이 그대로 번져있었다.
아이들은 주로 가족과 행복해 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어른인 나의 관점에서 아파트는 일자로 뻗은 획일적인 건물에 금액이 얼마인 물건으로 생각되지만 아이들의 마음속에 이곳은 행복한 가족이 있는 곳이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주민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도 굉장히 잘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어린이날 공연에 참석한 아이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대상을 수상했다. 오래된 추억의 한 페이지인 재개발되기 전의 모습을 전시한 공간도 마련되었다. 오며 가며 어르신들이 옛 추억을 얘기하고 계셨다.
문학부문에 수상하신 분들의 글은 지역의 사진작가들이 사진에 글을 첨부하여 액자를 만들어 주셨다. 다 읽기는 내용이 많으니 몇 줄 발췌하여 참가자의 글에 사진을 첨부하여 올려놓았다.
대상은 김재원(문학), 김은겸(사진), 이형근(그림)이 금상은 이선희(문학), 류근숙(사진), 정기열(그림)이 선정되었다. 문학대상을 받은 김재원 씨는 가족과 함께 작품을 보고 있었어 소감을 여쭤보았다.
"육아휴직 중에 아파트에서 문학 아카데미가 열려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적다 보니 어느새 내 인생이 더 값지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 파이팅입니다."
셋째. 예술인들이 부스에 참여해 창의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예술을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영감은 사랑과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역 예술인들이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며 함께 소통하다 보면 서로 신뢰와 애정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지역의 화합을 위해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예술축제에서는 파라코드 안전팔지 만들기, 탁본체험, 스프링 인형 만들기, 나만의 벙커 만들기, 쿠킹포일조각 만들기, 풍선 만들기, 삼베소품 만들기, 양말목공예 등 다양한 부스가 운영되었다.
소통의 다른 형태... 아름다운 마음이 눈에 보인다
보통 아파트에는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만든다. SNS의 특징상 실시간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기는 좋지만 익명으로 글을 남기고 사실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자칫하다가 서로 예민해지고 이웃 간에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아름다운 곳으로 보이기보다 갈등이 있고 불편한 곳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 축제로 소통하니 서로의 아름다운 마음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정겨운 작품들을 눈에 담으며 이곳은 따뜻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해가 지자 일렬로 늘어선 작은 행성처럼 층층마다 하나둘 불이 켜졌다. 미끄럼틀 타던 아이가 지금쯤 식탁 앞에서 엄마가 해준 맛있는 저녁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지고, 먼저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어떤 어머니의 모습도 그려져 오늘 밤은 모두 편안하길 소원해 보았다.
불빛들이 창밖으로 인도를 향해 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서로를 향한 마음처럼 부드럽게 어둠을 가른다.
사람들은 서로 아웅다웅하며 산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남기고 서로를 불신 하기보다는, 예술 축제를 통해 소통하니 주민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기억하는 울타리가 된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