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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이 겨우겨우 지나갔다. 날씨가 선선해졌으니 때 이른 노동자들의 죽음 소식이 좀 잦아지려나?

여름이 되니 노동자가 더위로 쓰러지고, 죽는다. 여름이 되면 더위를 못 견디고 노동자가 죽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쿠팡 노동자들이 폭염 아래 '에어컨은 인권이다'라는 구호를 내걸며 '에어컨 로켓배송 도보행진단'을 꾸려 시위와 농성을 하며 쿠팡의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 2021년 즈음부터다. 그러는 사이 물류센터에 하나, 둘 에어컨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어컨 설치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고, 더위는 매년 더 맹렬하게 돌아왔다.

여전히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500리터 물 한병과 이온음료 분말 한 포로 더위를 이겨내며 여름을 나고 있다. 쿠팡 측은 달궈진 물류 현장을 채울 일용직들을 모집하기 위한 '특가 프로모션'을 매일 띄웠다. 열대야 일수가 늘어날수록 쿠팡 측이 내건 하루 일당은 12만 원에서 13만 원으로 뛰었고, 노동자들이 쓰러질 때마다 일당은 더 올랐다. 급기야 프로모션 특가가 15만 원까지 올라갔다.

그런 와중에, 올 5월~8월 7명의 노동자가 쓰러졌다.

- 2024년 5월 쿠팡 남양주 2 캠프 배송노동자 정슬기씨(40대) 야간노동 후 자택에서 사망

- 2024년 7월 쿠팡 경산 퀵플렉스 택배 노동자 G씨 폭우에 휩쓸려 사망

- 2024년 7월 쿠팡 제주 택배소분장 택배 분류노동자 H씨 분류작업 중 쓰러져 사망

- 2024년 7월 쿠팡 화성 동탄 택배 노동자 I씨(50대) 야간노동 후 사망

- 2024년8월 쿠팡 로켓설치 대리점 주 J씨 캠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

- 2024년 8월 쿠팡 시흥택배소분장 택배 분류노동자 김아무개씨(40대) 근무 중 사망

- 2024년 8월 26일, 쿠팡CLS 시흥2캠프에서 분류 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쓰러져 의식 불명 상태

과로사 대책, 쿠팡의 직접 고용?

 10월 16일 쿠팡물류센터지회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쿠팡 양산 물류센터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10월 16일 쿠팡물류센터지회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쿠팡 양산 물류센터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 쿠팡물류센터지회

가늘게 찬바람이 불자, 쿠팡의 특가 프로모션은 사라졌다. 그러나 가을의 시작점에 쿠팡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모였다. 지난 9월 23일 '노동자 죽음 부르는 쿠팡 로켓 배송의 노동실태와 고용구조' 토론회가 열렸다.

아픈 아들의 치료비와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남편에게 쿠팡 야간노동을 함께 '뛰자'고 권유했던 고 김명규님의 부인 우다경씨는 증언을 하기도 전에 눈물을 쏟아냈다. "개처럼 뛰고 있어요"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망한 정슬기님의 아버지 정금석 님은 "고정된 야간노동은 너무도 위험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도 어렵다는데 21세기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칠곡쿠팡물류센터에서 과로로 사망한 장덕준님의 어머니 김미숙님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상을 빼앗겼고, 아들이 죽은 뒤 남은 가족들은 함께 한 상에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며, 4년이 넘도록 사회적 증언을 이어가고 있다.

쿠팡 노동자들 대부분은 이른바 '쪼개기 계약'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거나 매일의 계약 해지가 가능한 일용직이다. 극단적인 불안정 노동은 야간고정 노동을 '선택'하도록 만든 강제적 장치가 된다. 쿠팡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더위'는 이렇게 켜켜이 쌓인 위험 위에서 미세하게 영향을 미친다. 더위는 더위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7명의 노동자를 뒤로 하고 쿠팡이 내놓은 대책은 '1만 명 직접고용'이었다. 사망사고가 집중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택배 분류 인력을 100% '완전 직고용 체제'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쿠팡의 연이은 과로사는 쿠팡식 직접고용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야간노동은 더 취약한 노동자에게

쿠팡은 2022년 기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에 이어 국내 고용 3위 기업으로 6만 명 이상을 직접고용하고 있다. 이 중 19~34세 사이의 청년층 노동자가 2만여 명이고, 총 고용의 50%를 여성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대다수의 청년과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으로 '직접' 고용되어 있다.

직접고용 형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보면, 쿠팡풀필먼트의 경우 정규직은 9000여 명인데 반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2만 8775명이다. 즉 쿠팡식 직접고용의 본질은 일용직, 단기계약직을 직접 통제하는 노무관리인 셈이다.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 노동자 집단으로 이뤄진 쿠팡에서 노동자들은 야간노동을 선호한다. 야간 고정노동으로 3년째 일하고 있던 워킹맘은 자신의 신체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남편 외벌이로는 태어난 아이로 늘어난 생계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물류센터 야간노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 3년차인데, 아침에 퇴근해서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 밥해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고 집안일 하면 한낮인데도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릴 때가 많아요. (중략) 얼마나 더 계속될 수 있을지 3년 차 되니까 자신이 없어져요.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싶기도 하고…"(쿠팡물류센터 계약직)

2021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김형렬, 송지훈, 유형섭)가 쿠팡 노동조건과 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356건 응답)를 보면 쿠팡식 직접고용이 어떻게 야간전담노동을 유인하는지를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쿠팡 계약직의 경우 한달 평균 21일을 일하는 데 반해, 일용직은 한달 평균 12일을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달 노동일수 '12일'만으로는 한달의 생존을 위한 비용을 충족시킬 수 없다. 이로부터 야간노동 유인효과가 발생한다. 야간할증수당을 위해 야간노동을 선택하는 것은 최저시급을 받는 쿠팡 계약직과 일용직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 가운데 계약직(42.76%)에 비해 일용직(56.37%)이 부족한 임금 때문에 야간노동을 더 많이 선택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장시간 야간노동 문제는 오래된 고질병이다. 그러나 오늘의 야간노동은 이전과 다른 문제를 던진다. 물류산업과 같이 서비스 분야의 새로운 산업에서 청년과 여성노동을 중심으로 '불안정한 야간 고정노동'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야간노동이 '2급 발암물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이른바 '워라밸'과 수면의 질이 중요하게 취급되면 될수록 취약한 노동자집단으로 야간노동이 '몰빵'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전주희 님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노동시간센터 회원입니다.


#쿠팡#물류센터#노동조합#야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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