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맨 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였지만, 노벨문학상까지 기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세계 최대 도서전에서도 지금 한강 작가의 열풍이 일고 있다. 130여 개국에서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독일 국제 도서전. 전 세계 출판인들의 축제장 한가운데 대한민국 작가의 출판 일정을 알리는 포스터가 자랑스럽게 내걸렸다.
<채식주의자>부터 <소년이 온다>까지 독일어로 번역된 책들은 당당히 부스 한자리를 차지했다. 독일어 판권을 가진 출판사 직원들의 가슴에는 모두 '우리는 노벨상'이라는 배지를 달았다. 평소 한국관에는 주로 아시아 쪽에 약속된 손님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올해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한국 작품을 보려고 일부러 찾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해외 판권문의도 최소 3~4배가 늘었다는 게 출판업계의 설명이었다.
특히 번역된 책이 아닌 원문을 읽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글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고. 한강 작가가 일으킨 한국 작품의 열풍이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문학으로도 관심이 번지는 계기가 됐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이에 앞다퉈 한강 작가의 작품과 관련이 있는 지자체는 홍보의 열기를 보이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겸허한 태도로 일관하며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것은 개인의 경사만이 아닌 국가적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경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한강 작가와 관련성을 짓자면 그가 읽은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강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우리 지역 평일도 출신 임철우 작가의 <아버지의 땅>을 읽고 난 후부터라고 한다. 소안면 당사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역시 임철우 작가의 소설 원작을 토대로 영화 제작했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가 분단의 아픔을 그린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한강 작가의 마음을 울렸던 다섯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그에게 타협 없이 소설을 써낼 수 있는 용기를 줬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작품 <어느 시인의 죽음>은 음악과 작별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한강 작가는 큰 위로를 받았고, 2차 세계 대전의 참상을 담은 보르헤르트 <이별 없는 세대>는 마치 혼자서 성냥불을 켜고 있는 느낌의 기록들이 한강 작가의 마음을 울렸다.
완도 평일도 출신 임철우 작가의 <아버지의 땅>은 한강 작가가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게 만든 책이며, 케테 콜비치의 <판화와 자화상>은 판화가 콜비치의 진지한 삶과 작업의 깊이에 깊이 감동한 그가 콜비치의 변모하는 자화상에 대해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는 것에 감탄했다고.
광주시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열고 기념관을 추진하려고 하자 작가는 세계가 전쟁으로 시름하고 있는데, 축제 분위기가 맞지 않다며 인터뷰까지도 거절했었다.
그러나 장흥군은 발 빠르게 나서서 기념관 유치 작전을 물밑에서 펼쳤다. 그의 부친인 한승원 작가의 영향력도 있었겠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장흥군은 '소설가의 고향'을 선포하면서 관광자원화를 꾀한 노력을 보여 왔었다.
천관산문학관은 장흥 출신 소설가들의 요람이 된 지 오래고, 장흥이 낳은 소설가 중에는 한국 문단을 대표할만한 이청준 작가의 생가 복원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의 원작이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을 만나 천년학으로 영화 제작되면서 장흥 선학동에는 매년 메밀꽃 축제를 준비했으며 장흥군은 오랫동안 소설가의 고향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
이제 한국 문학이 전 세계로 진출할 물꼬를 텄고, K-문화는 대중문화를 넘어서 다양한 장르로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넘쳐나고 있다.
이번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책 읽는 분위기로의 전환이 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터이지만, 전남은 이제 '문학로드'라는 새로운 관광패턴이 한 축을 이룰 전망이다.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과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시작으로 여수와 순천을 이어 벌교의 태백산맥문학관, 장흥의 천관산문학관과 이청준의 생가, 강진의 시문학관과 김영랑 생가, 김현구 시인, 해남의 땅끝순례문학관과 김남주, 고정희 시인의 생가, 이동주 시인과 박성룡 시인, 황지우 시인 등 해남은 어느새 시인의 고장이 됐다. 목포에는 목포가 낳은 작가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등을 기념한 목포문학관이 있고 목포시는 매년 문학축제를 열어왔다.
그 외의 지자체는 문학관을 대신한 미술관의 역할로서 문화 예술의 영역을 넓히면서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예술의 섬은 진도나 신안, 무안이 이미 선점하고 나섰다. 이럴 정도이니 완도문학관이나 그럴싸한 군립미술관 하나도 유치하지 못한 완도군은 이제 무엇을 자존심으로 내세울 것인가.
민간에서 추진했던 여서도의 천재시인 김만옥 시비 하나도 건립 못하고 무산된 분위기이며, 분단의 아픔을 소설로 쓴 임철우 작가 등 지금도 여러 문인과 예술인들을 배출하고 있음에도 완도군은 그들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이것은 완도군 행정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인물, 그리고 지역 사회가 배출한 문화예술인들을 기억하고 불러오는 '오마주 정신'을 이해 못한데서 기인한다. 어디에도 완도정신을 찾아볼 수 없는 얼빠진 관광정책만 펼치고 있으니 될 일이 하나도 없다. 다가오는 시대가 요구하는 관광패턴에 귀를 기울여 준비해야 할 일이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