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기농 농장에서 농사 체험하며 일손 돕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듣는 새로운 한국 이야기를 싣습니다.[기자말] |
"브라질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 이사벨라라고 합니다. 브라질 남부의 히오그란지두술주에서 왔어요. 이번이 제가 처음으로 하는 해외여행이자 혼자 하는 여행이에요. 평소 궁금했던 한국에 직접 오게 되서 정말 기뻐요."
가을과 함께 이사벨라가 팜스테이를 하러 찾아왔다. 브라질은 정확하게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나라다.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미국에서 하룻밤 경유하고, 총 48시간이 넘는 시간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이자벨라는, 공항에서 또 바로 농장으로 이동한 터라 많이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바로 농사일을 함께 하면서 시차와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브라질에서 인기 많은 한국 문화
남미 친구는 오랜만이다. 유럽 친구들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말할 때 열정적으로 손을 사용하고, 솔직하게 표현도 잘 하는 편이다. 이자벨라는 일머리가 있어서 한번 알려주면 어떤 일이든 척척 잘 해냈다. 같이 고구마도 캐고, 들깨도 베며 가을 걷이를 하고 있다.
같이 지내면서 계속 궁금했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국경을 접하고 있는 수많은 이웃 나라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첫 해외 여행지로 왜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작은 나라 한국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브라질은 어떤 나라인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케이팝으로 시작된 한국 문화 인기가 브라질에서는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매년 새로운 한국식당이 문을 열고, 소주와 한국 과자, 음료 등을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시간이 잠깐 나서 세 달 정도 여행을 왔습니다. 브라질에서 일상이 된 한국 문화를 직접 보고 느껴보고 싶었어요."
이사벨라는 25살의 젊은이다. 브라질은 남미 한류의 거점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 일상이라고 했다. 이자벨라는 BTS, 세븐틴, 스트레이키즈 등을 좋아하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해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다고 한다.
최근에는 영화 <브로커>와 <전,란>을 봤는데, 둘 다 무척 재미있었다고. 특히 <전,란>의 남자 주인공(강동원)이 정말 잘 생겼단다. <브로커>에 나온 배우와 같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주자 전혀 몰랐다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작년에는 HBO Max 브라질에서 제작한 '옷장 너머로(Além Do Guarda-Roupa)'라는 케이팝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10대 한국 교포 소녀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한국을 미워하며 살던 중, 옷장 속에서 순간이동하며 한국 보이그룹과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판타지라고 했다.
순수한 사랑 보여주는 한국 드라마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친절하고, 대중교통 시스템이 매우 편리하고 좋았어요. 서울에서 경주까지 고속기차(KTX)를 타고 왔는데 2시간만에 도착하는 것이 매우 새로웠어요. 거리 어디를 가도 매우 안전하다는 것도 놀라웠구요. 브라질은 치안이 좀 문제거든요. 사실 가족들이 혼자 한국을 여행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한국에 대한 영상들을 보여드리며 얼마나 안전한 나라인지 설명해드리자 다들 안심하고 한국 여행에 동의해 주셨어요."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가 브라질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많이 있겠지만 건전함도 한몫을 한다고 한다. 케이팝은 가사나 안무 등이 대체로 건전한 편이라 부모들도 자녀들이 케이팝을 들으면 안심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남녀가 만나자마자 바로 키스와 성관계로 이어지는 브라질 드라마와 다르게, 한국 드라마는 순수한 사랑을 보여줘서 새롭다고 했다.
물론 다양한 장르의 한국 드라마가 있긴 하지만, 건전함이 인기 요인이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마약 밀매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이고, 치안이 불안정한 브라질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건전해보이는 한국 문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자벨라는 한국 음식 중에서 비빔밥을 제일 좋아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다양한 채소들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도 한국 음식이 꽤 인기가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농산물을 수확해 택배 작업을 하느라 바쁜 날 이사벨라에게 점심 식사 당번을 부탁한 적이 있는데, 된장찌개를 꽤 맛깔나게 끓여내 깜짝 놀랐다.
"한국 음식에는 여러가지 양념이 있어서 독특하고 풍미가 좋습니다. 다양한 채소를 사용하는 점도 좋구요. 농장에서 고구마순과 호박잎을 요리해 먹었는데 이렇게 채소를 잎까지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브라질에 돌아가면 꼭 요리해 보고 싶어요. 유기농산물을 어떻게 키우고 요리할 수 있는지, 환경을 보호하는지 배우게 되어 좋습니다."
브라질에서는 현재 대통령인 룰라가 아마존 정글 훼손을 막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존에서는 동물에게 먹일 콩과 옥수수 등을 키우기 위해 산림을 불태우고 농사를 짓는 일이 흔한데, 지난 보우소나루 대통령 시절에 더 많은 산림이 훼손됐다고 했다.
"아버지가 제가 한국 유기농 농장에서 봉사활동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아버지의 가족들은 농사를 지으시는데, 채소를 심고 가꾸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브라질에서는 최근 아마존 정글에서 이루어지는 화전 농업과 숲 파괴, 환경오염에 맞서 유기농업이 매우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일 하고 싶어
브라질에서 제일 유명한 정치인은 아마존을 지키고 있는 빈민 노동자 출신 룰라 대통령이라고 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룰라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슬로건으로 대통령 선거에 세 번 낙선 끝에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2010년까지 나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빚더미에 있던 국가부채를 해결하고, 빈민들을 구제하며 불평등을 해소하고, 브라질을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켰다.
대통령 임기 이후 2018년 뇌물 수수 혐의로 감옥생활까지 했지만, 2021년 수사가 편향적이었고, 협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브라질 대법원이 모든 뇌물수수를 무혐의 판결하면서 2022년 다시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브라질의 트럼프라 불리는 전직 보우소나루가 완전히 망가뜨린 나라를 재건하고 있다. 아마존 정글의 불도 많이 껐고, 치솟은 물가도 안정되고 있다고 한다.
브라질은 21년의 군부독재 기간 동안 시민들의 엄청난 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극우세력들이 힘이 있고, 진영대립이 심각다는 점 등 역사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팜스테이를 하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새로운 습관과 문화를 수용하는 경험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합니다. 영어로 외국인과 이야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처음엔 긴장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될 때가 많았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니 소통이 편안하게 되어서 좋아요. 유기농 농장에서 일하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충전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 돌아가면 환경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일을 하고 싶어요."
이사벨라는 팜스테이를 마치고 11월부터 서울로 올라가 두 달 더 여행할 계획이다. 한국을 더 탐구하며 현지인처럼 여행하고 싶다고. 이사벨라라면 남은 두 달 동안 한국의 많은 것들을 탐험하며 재미나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짜장면 한 그릇에 '아름다운 인생'을 느낄 수 있는 친구니까 말이다.
멀고 먼 곳에서 한국을 좋아해 찾아와줘 고마웠다. 우리도 이사벨라와 함께 지내면서 브라질에 대해 더 궁금해졌고, 룰라 대통령과 브라질 정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서 좋았다. 브라질과 한국이 더 가깝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벨라가 남은 한국 여행 기간 동안 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즐겁게 여행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