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기념일이자 우리 독립군의 '청산리 전투' 승전기념일이었습니다.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서 역사적인 날을 맞아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대한적십자사에서 진행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돕기 캠페인'에 10만 원의 성금을 쾌척했습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연구프로젝트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며 다달이 받는 월급은 고작 160여 만 원. 그외 이렇다 할 고정 수입이 없으니 10만 원이면 제 입장에선 사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12년째 이어온 '독립유공자 후손돕기'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한 기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학교 2학년 때인 2012년부터 흥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돕기 캠페인'에 매달 1만 원씩 정기 후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한때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친일파의 후손은 조상이 일제에 부역한 대가로 받은 더러운 돈으로 대대손손 잘 살고, 늘 도망 다니며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교육조차 받지 못해 어렵게 사는 현실을 빗댄 말이지요. 최근까지도 뉴스를 통해 어렵게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 소식을 접하면, 도대체 언제쯤 저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어쨌든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그 뜨거움을 늘 마주하고 사는 제 입장에서는, 그들의 후손들이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그냥 흘려넘길 수 없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후원이 어느덧 12년이나 됐습니다.
이따금 관공서나 시민단체 등의 의뢰로 독립운동 관련 강연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강의료의 일부 혹은 전액을 역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그런 강연을 할 기회도 주어진 것이니, 마땅히 그들을 위해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부 인증샷을 꼭 개인 SNS에 올리고 있습니다. "좋은 일은 남 몰래 하라"는 말도 있듯이, 저 역시 굳이 기부 사실을(심지어 어디 내놓기도 민망한 소액 기부를) 공개하기가 민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매번 기부 인증샷을 올리는 까닭은 많은 사람들에게 동참을 독려하고자 함입니다.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주세요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글을 쓴 목적 역시 독립운동가 후손 돕기 캠페인에 보다 많은 참여를 부탁하고 싶어서입니다.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지난 9월부터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생계가 어려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관련 링크). 목표액은 990만 원입니다. 그런데 캠페인 종료까지 불과 3일 밖에 남지 않은 지금, 모금액이 목표액의 70%에 머무르고 있어 안타깝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모인 성금은 증조부, 조부, 부친까지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양옥모 할머니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후손 3명의 생계 지원을 위해 쓰인다고 합니다.
"증조부께서는 경기도 양평에서 인쇄소를 운영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현수막을 직접 만들어 면사무소 앞에서 나눠줬고 할아버지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0년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좌측 어깨에 총상을 입게 됩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 건립과 독립군의 군량을 기부하다 총상이 악화되어 중국 하얼빈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아버지 양승만 선생도 불과 16세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1927년 신숙 선생이 설립한 신창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청년들을 위한 민족교육에 헌신했고 한국 독립군 상사로 활동하며 항일 투쟁운동을 펼쳤습니다. 임시정부가 환국하고 나서도 중국에 남은 동포들을 마저 귀환시키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양승만 선생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해방 이후 시간이 흘러 1986년에서야 조국 땅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운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 해피빈 캠페인 소개글 中
사연의 주인공인 양옥모 할머니는 중국 하얼빈에서 살다 한국으로 귀국해 지금은 서울에 작은 단칸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그럼에도 어르신,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돕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정부지원금 50만 원을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하기도 했다는 사연을 읽으면서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렇듯 여전히 어렵게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있기에, 저는 앞으로도 기부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을 때까지 말입니다.
부디 이 글이 '선한 영향력'을 불러일으켜, 보다 많은 이들로 하여금 십시일반 기부에 참여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