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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반룡교에서 본 섬진강 상류 풍경, 오른편에 진안 성수산 은선암이 있다.
진안 반룡교에서 본 섬진강 상류 풍경, 오른편에 진안 성수산 은선암이 있다. ⓒ 이완우

임실 성수면 성수산은 진안 백운면과 경계가 되는 성수지맥의 마루금에 있다. 이 성수산(聖壽山)에 천년 고찰 상이암(上耳庵)이 자리 잡았다. 이곳 사찰은 고려와 조선을 창업한 두 태조가 잠저(왕이 되기 전 신분) 때 찾아와 한 곳에서 기도한 장소로는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알려졌다.

이곳 상이암은 통일 신라 말기 875년에 도선 국사에 의해 팔공산(八公山, 1,151m) 도선암((道詵庵))으로 창건되었다. 이곳에 왕건이 17세(894년)에 찾아오고 24년 후에 고려를 건국(918년)하였으며, 이성계 장군이 황산 대첩으로 왜구를 물리친 45세(1380년)에 찾아오고 12년 후에 조선을 건국(1392)하였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조선 시대 초기에 팔공산 도선암은 성수산 상이암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성계 장군이 팔공산 도선암에서 기도할 때 하늘에서 서기가 비치고, "성수만세(聖壽萬歲)"의 축원 즉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라."는 하늘의 계시가 땅으로 세 번 울려 퍼졌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임실, 진안, 장수 지역에 '성수산(聖壽山)' 한자까지 같은 이름의 성수산이 세 곳 있다.

임실 성수산(876m)은 임실 성수면과 진안 백운면의 경계인 성수지맥의 마루금 위치한다. 진안 성수산은 진안 성수면(482m)의 감입곡류 휘돌아가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솟아 있다.

장수 성수산(1,059m)은 장수 천천면과 진안 백운면 경계의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에 위치한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모여 있는 세 성수산의 이름은 조선 시대 이후에 생겨났다.

임실과 장수, 진안에 각각 '성수산'이 있다

이들 세 성수산에 유서 깊은 고찰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진안 성수산은 은선암(隱仙庵), 장수 성수산은 신광사(新光寺), 임실 성수산은 상이암(上耳庵)이다. 가을 들녘 벼 수확이 진행되는 시기인 지난 27일에 이 세 곳 성수산에 자리한 사찰을 차례로 찾아가는 역사 문화의 탐방으로 여행하였다.

 진안 성수산 은선암, 세 줄기로 뻗은 500년 수령의 백일홍 나무가 보인다.
진안 성수산 은선암, 세 줄기로 뻗은 500년 수령의 백일홍 나무가 보인다. ⓒ 이완우

진안 반룡사가 있었다는 성수산 중턱의 은선암을 찾았다. 사찰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서산대사가 지리산 아래 남원 땅 산동을 지나다가 낮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깨우쳤다는데, 처음 온 사찰에서 낮닭 소리를 들었다.

진안 성수산은 섬진강이 진안 백운면에서 마령면을 거쳐 임실 관촌면으로 흘러가면서 8번의 물돌이동으로 휘감아 흐른다. 진안 성수산은 이 감입곡류 섬진강에 산자락을 발 담그고 있다.

진안 성수산에는 초중반룡(草中盤龍)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반룡(盤龍)'은 승천할 준비를 하는 용을 의미한다. 이 명당 위치에 반룡사(盤龍寺, 이칭 용천사 龍天寺)가 있었다고 한다. 13세기에 창건되었다는 반룡사는 흔적이 없고, 은선암이 성수산 중턱에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섬진강 강변의 용포리 반룡마을에서 성수산 중턱까지 반룡사 절터였다고 한다.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이 편집한 불교 의식의 책자인 운수단가사(雲水壇歌詞)는 순천 송광사에서 1607년(선조 40)에 간행된 이래 조선 후기까지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진안 반룡사에서 1627년에 운수단가사를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산대사의 운수단가사에 실린 선시 한 구절은 집착, 어리석음과 번뇌를 벗어버리고 본성의 한 마음 깨닫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지금은 한적한 진안 성수산 은선암이 한때는 서산대사의 책자를 간행하던 유서 깊은 사찰 반룡사로 기억하고 싶었다.

我有一卷經 (아유일권경)
不因紙墨成 (불인지묵성)
全開無一字 (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 (상방대광명)

나에게 한 권 경전 있으니
종이 먹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네.
모두 펼쳐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온 누리 밝히고 있네.

진안 성수산 은선암에는 수령 500년 되었다는 백일홍이 큰법당 옆에 우람하게 서 있다. 이 지역이 섬진강 가까운 산 중턱이어서 겨울에는 몹시 추워 백일홍이 자랄 수 없을 환경인데, 이 은선암의 백일홍은 무성하고 여름에는 분홍 꽃이 만개한다.

 진안 마이산 원경
진안 마이산 원경 ⓒ 이완우

진안 성수산 은선암을 떠나서 마이산 은수사를 거쳐 장수 성수산 신광사로 향했다. 진안 성수산 은선암에서 장수 성수산 신광사까지 지도상 직선거리는 15km 정도인데, 사이에 금남호남정맥의 큰 산줄기가 있어서 돌아가야하므로 자동찻길은 40km 가까왔다.

장수 성수산 신광사는 장수 천천면 비룡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금강 수계이다. 가까이에 와룡 휴양림이 있다.

 장수 성수산 신광사
장수 성수산 신광사 ⓒ 이완우

신광사는 신라 흥덕왕 5년(831년) 때 창건되었고, 천 년 후에 장수 현감이 중창(1849년)하였다는 유서 깊은 천 년 고찰이다. 이 신광사는 예로부터 정성껏 기도하면 신비로운 서기(瑞氣)가 내린다고 하여 수행자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이 사찰은 반듯한 돌담과 대웅전의 너새기와(기와로 얹은 얇은 돌판)가 특색이다. 너새기와를 올린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 대웅전 기와를 너새로 올린 곳은 흔치 않을 것이다. 이 대웅전은 맞배지붕 형태이고 주심포 양식인데, 전면 포간에는 호랑이 얼굴로 보이는 귀면 화반으로 장식되어 있다.
 장수 성수산 신광사, 지붕 너새기와
장수 성수산 신광사, 지붕 너새기와 ⓒ 이완우

장수 성수산 신광사를 떠나서 금강의 상류인 장수천을 따라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을 횡단하며 장수 팔공산 중턱의 대성 고원과 비행기재를 넘어 섬진강 수계로 들어섰다.

장수 신광사에서 임실 상이암까지는 지도상 직선거리는 10km 정도인데, 금강 상류인 장수천을 따라 장수 팔공산의 남쪽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을 가로질러 성수산 상이암을 찾아가는 자동찻길은 45km가 되었다.

지금은 임실 성수산 상이암, 진안 선각산 데미샘(섬진강 발원지)과 장수 신무산 뜬봉샘(금강의 발원지)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그냥 팔공산 도선암, 팔공산 데미샘과 팔공산 뜬봉샘으로 팔공산을 중심으로 불렀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여의주(구룡) 바위와 삼청동 비각
임실 성수산 상이암 여의주(구룡) 바위와 삼청동 비각 ⓒ 이완우

임실 성수산(876m)은 구룡쟁주(九龍爭珠) 명당과 기도터에 천년 고찰 상이암(도선암)이 자리 잡고 고려와 조선의 개국 설화를 전승하면서, 이 지역에 가깝게 모여 있는 세 성수산의 으뜸 산으로 역할 한다. 이곳 사찰에는 조선 태조의 '삼청동(삼청동)' 필적의 비석을 보관한 어필각이 있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조선 태조의 친필로 추정하는 삼청동 글씨
임실 성수산 상이암, 조선 태조의 친필로 추정하는 삼청동 글씨 ⓒ 이완우

성수산 정상에서 1km 위치의 태조봉(905m로 이 산의 정상보다 높음)으로 성수지맥의 마루금을 잠시 걸으면 태조 기도터 황룡바위로 내려가는 나무 데크길이 나온다. 태조 기도터 황룡바위는 직육면체 형상의 거대한 바위인데 높이 8m, 길이 8m, 두께 1.5m 크기로 한 칼로 잘라낸 듯한 형상이 대단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임실 성수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보이는데 직선거리로 12km의 거리이다. 진안 성수산과 장수 성수산은 직선으로 15km 거리이다.

마이산과 세 성수산은 마름모꼴의 네 꼭짓점을 이루는 형상인데, 임실 성수산과 진안 마이산을 마름모꼴의 세로축으로 하고 진안 성수산과 장수 성수산을 마름모꼴의 가로축으로 하고 있다.

진안 성수산 반룡사는 용포리 반룡리에 있다. 장수 성수산은 와룡리에 있고 신광사는 비룡리에 있다. 임실 상이암은 구룡쟁주 명당에 황룡바위 기도터가 있다.

고통받던 사람들... 새 왕조로의 교체를 희망하던 시기

이 지역의 지명에는 용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 세 성수산의 주위에는 구불구불 섬진강과 금강이 감입곡류 하천으로 용틀임하며 승천할 능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여의주(구룡) 바위
임실 성수산 상이암 여의주(구룡) 바위 ⓒ 이완우

14세기 후반은 그 당시 세계 질서의 중심에 있었던 원나라를 붕괴시키면서 명나라가 건국(1368)하였고,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가 한동안 대립하였던 남북조를 통일(1392년)하였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백성이 도탄에 신음하는 고려도 새 왕조로의 교체는 그 시대가 당면한 과제였다.

진안고원의 세 성수산은 팔공산 도선암에서 이성계 장군이 기도할 때 하늘에서 '성수 만세' 소리가 세 번 들렸다는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늘에서 '성수 만세' 소리가 들렸다는 설화는 상징과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고려 말 백성들은 나라를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 영웅으로 이성계 장군에게 기대를 걸고 희망을 품었으며, 이러한 '성수만세' 설화에 백성들의 기대와 희망이 반영되어 있다.

전북 동부 진안고원의 세 성수산과 마이산에 전해오는 지명, 산이름과 여러가지 설화에서 백성들은 이 땅에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나라를 염원하였다.

진안 성수산 은선암에서 장수 성수산 신광사까지 40km, 장수 성수산 신광사에서 임실 성수산 상이암까지 45km의 여정이었다. 세 성수산은 밝고 기쁨에 넘친 청산(靑山)으로 다가왔고, 고시조 한 수를 읊으며 다녔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마 자고 가자
(작가 미상의 고시조)

진안고원 세 곳 성수산의 사찰과 몽금척설화 일월오봉도가 전해오는 마이산 은수사를 탐방하면서, '과거는 새로운 현재이며 오래된 미래'라는 명제를 확인하고 싶었다.

 진안고원 성수산 마이산 개념도
진안고원 성수산 마이산 개념도 ⓒ 이완우


#세성수산#진안성수산반룡사#임실성수산상이암#장수성수산신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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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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