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흑백 텔레비전으로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중 '수사반장'과 '형사 콜롬보'가 있었다.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을 포함하여 만화 '모돌이 탐정' 등 수사·추리 관련 컨텐츠에 열광하던 시절이라 영상물인 두 드라마를 입에서 침 떨어지는 줄 모르고 봤다. 어른이 되고, 수사라는 것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지금은 오히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사건 발생 직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과 수사 결과를 알게 된 후 사건을 되짚어 보는 것은 긴장감과 답답함, 입수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미 발생한 사건의 결과를 놓고 그에 이르는 과정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은 몰입이 안 되어 재미가 없다.
흐린 기억을 떠올려보면, '수사반장'은 1970년대 한국에 많았던 침입절도, 소매치기, 강도, 유괴, 살인 등 사건을 다루면서, 범인 잡는 과정과 함께 범인의 불우한 처지나 환경도 보여주고, 범인과 그 가족에 대한 동정심과 검거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사관의 모습도 그려냈다. 지금도 생각나는 장면은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눈이 많이 쌓인 강원도 산골에서 범인을 검거하여 서울까지 돌아오며 겪는 수사관의 고초와 갈등이었다. 범인을 잡을 때까지 며칠 동안 집에도 못 가면서 잠복하고, 가족이 경찰서로 속옷을 가져다주는 장면도 있었던 것 같다.
'형사 콜롬보'에서는 수사관 개인의 고생은 잘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인 콜롬보 형사가 항상 꾀죄죄하고 헐렁한 레인코트를 입고서 고물차를 끌고 다니기는 했으나, 소위 개고생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범인도 범행을 숨기려 알리바이 등 여러 트릭을 사용한 사람이라서 동정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콜롬보의 명석한 추리력, 그리고 추리 결과를 범인의 행동과 말로 직접 증명하게 만드는 설계 능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수사반장'은 범인 검거 과정에, '형사 콜롬보'는 범죄를 밝히는 과정에 더 비중이 있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수사에 대한 여러 문헌에서 수사를 '사실 발견(fact finding)' 활동이라고 한 점을 고려하면 '형사 콜롬보'가 수사 활동의 본질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수사의 역할을 '사실 발견'에만 한정하면 인간미가 떨어지는 것 같지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형편을 처벌에 고려하는 것은 수사관의 역할이 아니다. 수사관은 동정이나 참작의 여지가 있는 사실까지도 성의있게 발견해서 보고서에 나타내주면 된다. 양형에서의 판단은 법원 몫이다.
경찰은 사실을 발견하고, 검사는 발견된 사실에 법률을 적용하고, 법원은 사실 발견과 법률적용이 법에 정해진 대로 되었는지 판단해서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역할이다. 만일 한 사람에게 사실 발견과 법률적용을 모두 맡기면 적용할 법률에 맞는 사실만을 발견하거나 발견한 척하거나, 발견하지 않거나 발견 못한 척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사람(군인 포함)이 죽었다거나, 부정하게 뇌물을 주고받거나, 마약을 해외에서 몰래 들여오거나, 회사 돈을 빵집에서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 범죄로 의심되는 일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과거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수사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 수사관 마음대로 누군가를 봐주거나, 사실관계를 숨기거나, 과장하여 부풀리지 못하도록 팀장, 과장 등 관리체계를 만들어 확인 및 검토하게 하고, 또 검사와 판사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은인이 관련된 사건에도 사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 다른 수사관이 진행하는 사건 수사에 대해 경찰관이 공식 절차를 통하지 않고 어떤 내용인지 '문의'만 해도, 그리고 '사건 관련자를 친절하게 응대해 주세요'라고만 요청해도 바로 경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서 온라인으로 신고하도록 공지하는 이유도 담당수사관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실 발견'이 정치권력에 의해 영향받지 않게 하려고 수사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스템으로 예방하려 해도 작정하고 덤벼들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하물며 '정'과 '인간미'를 중시하고, 시스템마저 불완전한 한국에서는 숭숭 뚫린 구멍으로 죄 지은 사람이 잘도 빠져나가거나, 갑자기 촘촘해진 그물에 억울하게 걸리는 무고한 사람도 있다. 수사관이 자신의 수사 결과가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지지 않고 사실관계만 명확히 확인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정 넘치고 인간미도 있는 수사반장 속 형사를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위법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적 인연을 고려하지 않고 끝까지 사실을 확인하여 책임을 묻는 콜롬보 같은 형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윤은 경찰입니다.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