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생에 개입해도 되는 것인가?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하면서 가장 자주 하는 고민이다. 속된 말로, "내가 뭐라고" 식의 고민들이 타인의 인생에 개입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어주곤 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목적의식 아래 어떤 때는 문제가 아닌 것들을 문제 삼고 지원의 탈을 쓰고는 간섭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사람의 자기결정.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선택권의 존중을 위해선 당사자의 참여, 당사자가 의사표현 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이 중요하다. 말로는 쉽고 너무 당연한 일인데 때때로 이 간단하고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는 일이 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당사자의 경우에는 자기결정권이 더욱 쉽게 무시되곤 한다.
30대 남성 A씨는 혼자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단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고 받는 약간의 급여와 공적급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 복지단체에서 제공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보통의 혼자 사는 30대 직장인이 그러하듯 주거비용, 휴대전화 사용료, 식사비, 공공요금, 주말마다 이용하는 찜질방 이용료, 예배헌금 등을 사용하고 나면 저축을 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다.
A씨는 지적장애가 있다. A씨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A씨의 상황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A씨에게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A씨의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마법에 걸려버린다. 나아가 장애를 이유로 A씨를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낙인까지 새겨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특히 이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과 관련해서 더욱 큰 편견을 만들어 버린다.
A씨는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통칭하는 개념)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발달장애인 재산관리지원서비스의 제공을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재산을 수탁받는 기관과 발달장애인 당사자 또는 부모가 위탁자로서 현금, 부동산 등에 대한 신탁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신탁재산의 수익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된다. 수탁기관은 신탁계약에 근거하여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위해 본인이나 부모의 재산을 관리하게 된다. 한편, 재산관리지원서비스에서는 개별적 수요에 맞는 지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탁계약 체결 과정에서 개인별 재정지원계획의 수립도 함께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사자들은 신탁된 재산을 문화생활, 요양, 치료, 직업훈련, 심리상담 등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A씨는 갑작스럽게 목돈이 생겼다. 이에, A씨를 돕는 다양한 지원기관과 A씨가 함께 협의하여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A씨가 갖고 있는 목돈을 신탁재산으로 설정하여, 재산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매월 생활비를 지급 받는 식의 지원계획을 수립하였고, 1년 전, A씨가 신탁한 재산이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신탁 계약의 의미는 없어졌다.
몇 달 전, A씨를 지원하는 다양한 복지기관의 직원들과 A씨가 함께 모여 재산관리지원서비스 이용에 대해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A씨는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고, A씨가 없는 자리에서 A씨를 어떻게 지원하는 게 적절할지 논의가 진행되었다. 'A씨는 자신이 받는 급여와 공적급여를 저축도 하지 않고 모두 다 써 버리니 문제가 있다,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가 받는 급여와 공적급여를 다 합쳐도 200만 원이 되지 않는데, 저축을 하는 일이 쉬울까요, 주거비, 식사비, 공공요금 등 다양하게 쓰다 보면 결코 풍족하게 쓰는 것도 아닐 텐데,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A씨가 장애가 없었다면, 문제를 삼았을까요? 이렇게 개입하는 게 맞는 건가요?"
결국, A씨 없이 논의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고민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A씨가 결정하는 방향을 존중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실제 발생했을 때 당사자와 함께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회의는 일단락 되었다. 며칠 뒤, A씨에게 연락이 왔고, 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종료되었다.
"00에 취직했어요. 11월부터 다녀요. 11월 20일에 만나요. 신탁(재산관리지원서비스) 필요 없어요. 저 혼자서 잘 해요."
존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라고 말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자유.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을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한별 사회복지사입니다. 이 글은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