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오후 1시 52분]
경기도 특별사법경찰과 접경지역 주민들의 저지로 납북자가족모임의 대북전단 살포 계획이 무산됐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31일 오전 10시 50분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관광지 내 국립6·25납북자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예정했던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앞서 유럽 출장 중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납북자가족모임의 대북전단 공개 살포와 관련 이날 오전 네덜란드 현지에서 긴급 상황점검 화상회의를 주재해 비상 대응체계 수립 등의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이날 오전 유관기관과 함께 행사 장소인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800여 명의 인력을 배치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파주 민통선 마을 주민 50여 명도 농사용 트랙터 20여 대를 몰고 나와 임진각 진입 도로를 막았다. 파주 접경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은 납북자기념관 앞에서 대북전단 살포 반대 집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로 북한이 대남 확성기의 소음 강도를 높이는 등 피해가 큰 상황"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국립6.25납북자기념관 앞에서 납북자가족모임을 향해 "대북전단 살포는 불법이다. 즉시 퇴거할 것을 명령한다"며 "명령에 불복하면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동연 지사는 "금일 새벽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한반도 긴장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며 "출국 전 대성동 주민이나 접경지역 주민 만나면서 생활 불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왔는데 안전까지도 대북전단 발송으로 위협받는 상황이라 각별한 대응과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연, 화상으로 긴급 상황점검 회의... 특별지시 따라 현장에 800명 투입
당초 납북자가족모임은 지난 22~23일 중 파주 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 생사·소재 확인과 송환을 촉구하는 대북 전단 총 10만 장을 살포하려고 했지만, 비가 오는 등 기후가 좋지 않자 31일로 연기했다.
이들이 살포하려는 대북전단에는 1970년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고교생 등 한국인과 일본인 납북피해자 6명의 사진과 설명 등이 담겨 있다. 납북자 가족들은 2008년부터 납북자 문제를 담은 대북전단을 지속적으로 살포하다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요청으로 중단했지만, 10여 년 만에 살포 행위 재개에 나선 것이다.
올해 들어 파주 접경지역 일대는 반북·우익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북한이 오물풍선을 살포하고, 이어진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로 대응하면서 긴장 수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이에 김동연 지사는 지난 15일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도민 안전 위협을 우려해 파주·연천·김포 등 접경지 3개 시군, 11곳을 재난안전법상 위험구역으로 설정했다. 경기도는 위험구역에 대한 대북전단 살포 관계자의 출입 통제 등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특별사법경찰은 행정명령 위반자 체포, 형사 입건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강민석 경기도 대변인에 따르면, 김동연 지사는 납북자가족모임의 대북전단 공개 살포 계획과 관련 이날 오전 8시(현지 시각 30일 자정) 순방지인 네덜란드의 숙소에서 김성중 행정1부지사 등과 화상으로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주재했다.
김동연 지사는 김성중 부지사로부터 전단 살포 예정지인 파주 임진각 상황을 보고 받은 뒤 '도민 안전 최우선', '도민에게 정확한 정보 제공과 적극적 소통', '비상 대응 체제 수립 및 비상근무', '경찰 등 유관기관과 유기적 협력체계 구축', '파주 외 대북전단 발송 가능 지역 순찰 강화' 등 5가지 사항을 특별지시했다.
이후 김성중 부지사는 경기도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동연 지사의 지시에 따라 경기도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것"이라며 "현장에는 오후석 행정2부지사를 급파해 긴급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김 부지사에 따르면, 경기도는 이날 도 특사경(77명), 파주시(70명) 인력을 중심으로 북부경찰청 기동대 8개 부대, 파주소방서 등 총 800여 명의 인원을 현장에 투입,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했다.
경기북부경찰경 기동대 8개 부대(640명)도 납북자가족모임과의 충돌 등에 대응하기 위해 현장에서 비상근무에 나섰다.
김경일 "표현의 자유 빙자한 테러"... 트랙터 몰고 나온 주민들 "우리도 좀 살자"
김경일 파주시장은 이날 오전 10시 국립6.25납북자기념관 앞에서 발표한 대북전단 살포 관련 입장문을 통해 "파주시 전 지역은 재난안전법에 따른 위험구역이다. 대북전단 살포 관계자는 파주시 출입이 금지되었다"며 "대북전단 살포의 즉각 중지를 명령한다"고 밝혔다.
김경일 시장은 이어 "지금 대성동 주민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끔찍한 북한의 대남 확성기 공격을 받고 있다"며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북한의 오물풍선과 확성기 공격에 빌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시장은 특히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테러 행위이다. 대성동 주민과 파주 시민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라며 "파주시는 지금부터 민주 시민의 자격으로 실정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민권 발동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남북자가족모임 등의 진입을 막기 위해 임진각 진입로 1차로를 막아선 민통선 마을 주민들의 농사용 트랙터에는 '북한의 소음방송 민통선 주민 못 살겠다', '우리도 좀 살자' 등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 회원들은 국립6.26납북자기념관 앞에서 개최한 집회에서 '오지마, 날리지마, 대북전단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고, "경색된 남북관계는 대북전단으로 시작됐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오전 현장에서는 납북자가족모임과 접경지역 마을 주민들의 집회가 양쪽에서 진행되면서 한때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납북자가족모임 측이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취소하면서 양측간 물리적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