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라고 예고한 단체가 파주시장과 국회의원 등에 의해 저지돼 사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들이 "조만간 다시 살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인근 주민 불안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늘 (대북) 전단 10만 장을 가져왔는데 경찰과 경기도가 너무 강하게 (저지)해서... 저는 오늘 행사 끝나는 대로 경찰서에 가서 다시 한번 집회 신고를 하고 (조만간 다시) 살포하겠습니다." -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현장을 찾은 시·도 관계자, 지역구 국회의원, 경찰, 주민 등 900여 명은 대북 전단 살포를 준비하던 납북자가족모임을 막아 세웠고, 납북자가족모임은 "정치인들이 (납북자 사건에 대해) 직무를 유기하니 이러는 것 아니냐"라고 맞서기도 했다.
주민들 호소 "화약고 안고 산다"
평화위기파주비상행동(아래 비상행동)과 지역 주민들은 31일 이른 오전부터 경기 파주시 국립6.25납북자기념관 앞에 모여 "잘못하면 전쟁 난다", "대북 전단 살포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계속해 외쳤다. 경찰 버스 30여 대가 주변에 대기 중이었고, 경찰 병력 800명과 경기도가 투입한 특별사법경찰단 20여 명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재희 비상행동 대표는 대북 전단 살포를 예고한 납북자가족모임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인 오전 9시 40분께 마이크를 잡고 "납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을 날리겠다'며 10월 초부터 이 자리에 집회 신고를 하고 파주 주민들을 자극하고 있다"며 "현재 경색된 남북 관계는 대북 전단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자해지(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뜻)라는 말이 있다"며 "윤석열 정부는 정권이 탄생하자마자 전임 정부가 만든 '대북 전단 금지법'을 부정하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26일 이를 위헌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파주 주민 윤설현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윤씨는 "여러 단체에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는 상황을 전달받고 싶다'고 해서 최근 서울을 몇 번 다녀왔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며 "오늘부터는 실력 행사를 통해 대북 전단 살포를 저지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오전 10시부터는 김경일 파주시장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또 다른 지역 주민들이 발언을 이어갔다. 일부 주민들은 대북 전단 살포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붙인 트랙터를 이끌고 오기도 했다.
최성환 장단면 주민자치회장은 "전단 등의 살포는 북한의 오발 사고 등 피해를 야기하고 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우리는 현재 대북 전단 살포, 확성기 소음피해, 오물 풍선 등으로 일상생활 자체가 마비됐다. 주민들은 하루하루 불안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재난안전법에 따른 위험구역인 파주시에서 대북 전단 살포 관계자는 출입이 금지된다"며 "법이 위임한 권한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의 즉각 중지를 명령한다. 행동을 멈추고 파주에서 퇴거하라. 불복 시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주문했다. 이어 "북한 주민의 인권도 중요하고, 납북자 송환도 소중하지만 그 목적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단 역시 합법적이고 정당해야 한다"며 "그 누구도 파주 시민의 삶을 위협할 권리가 없다"고 주문했다.
더불어민주당 '대북 전단 대응 TF' 소속인 윤후덕(경기 파주갑, TF 단장)·김주영(경기 김포갑)·박정(경기 파주을)·이재강(경기 의정부을) 의원 역시 "대북 전단 살포를 엄정하게 항의하고 강력히 규탄한다"며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바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날리려는 자, 막으려는 자 모두 "대통령 책임" 언급
오전 10시 30분께, 'Come Back Home(컴 백 홈)'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납북자가족모임이 나타나자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갔다. 경찰은 지역 주민과 납북자가족모임 간 물리적 충돌이 없도록 바리케이드를 설치했고 취재진과 국회의원, 시·도 관계자들은 납북자가족모임 주변을 둘러쌌다.
곧이어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기자회견을 시작하려 하자 그의 앞을 김경일 시장과 국회의원들이 막아섰다. 이들은 "주민들이 불안해하니까 그만 하라"라고 했고, 최 대표가 "국회의원들이 직무를 유기해서 이러는 것 아니냐"라고 맞서면서 고성이 오갔다. 그러자 윤후덕 의원은 "직무 유기는 윤석열이죠!"라고 반박했다.
결국 기자회견을 시작한 납북자가족모임은 취재진을 향해 "그 전엔 아무도 납북자 문제에 관심 가져주지 않았는데 오늘은 많이들 와줘서 고맙다. 언론에 납북자 문제가 많이 알려지니까 이 얼마나 좋은가"라며 절을 하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최 대표는 "납북자 문제는 우리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마땅히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경기도지사와 파주시장은 소식지(대북 전단)를 보내는 행위를 비판하기 전에 반인륜적 범죄자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게 먼저 죄를 묻고 납북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예정했던 살포 계획을 취소한다. 오늘 (북한으로 보낼) 전단지 10만 장을 가져왔는데 경찰과 경기도가 너무 강하게 (저지)해서"라며 "조만간 공개 일정으로 풍선을, 비공개 일정으로 드론을 이용해 각각 다시 살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과거 대북 전단을 살포한 바 있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도 함께했다.
기자회견 도중과 직후 납북자가족모임 회원들은 드론에 'Come Back Home', '생사 확인 마저 가로막는 반인륜범죄자 김정은을 규탄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대북 전단을 매달아 근처 하늘에 몇 분 간 띄워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