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여러분, 우리 노인들도 주말에 도저히 집에서 쉬고만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나왔습니다.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에 함께해주세요!"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는 지난 2일 부산 서면 번화가,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들이 거리를 오가는 청년들을 향해 던진 호소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73세. 부산 지역 70대 원로들이 주축인 '민주누리회'라는 단체의 회원들이다.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에 앞장설 것을 결정하고 이곳에 모였다.
시작 시간은 2일 오후 2시였지만, 회원들은 일찌감치 나와 피켓을 챙기고 현수막을 걸며, 직접 투표소를 설치하느라 분주했다. 거리 투표소가 운영되자, 참가자들은 소싯적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던 솜씨를 보였다.
정치 연설에 자신이 있었던 사람은 마이크를 쥐었고, 시민과의 호흡에 자신 있었던 사람은 투표를 독려했다.
잠시 일어서서 투표를 독려하던 한 회원은 다리가 아파 잠시 쉬기도 했지만, 의자에 앉아서도 손에 쥔 피켓은 놓지 않았다.
"퇴진이 효도"... "형이 한마디 할게, 고마해라"
거리투표소 설치에 가장 큰 열의를 보인 차성환 운영위원장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민주화를 지켜온 곳이 이곳 부산인데, '역사의 증인세대가 실천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미래세대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이번 행동을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 된 안철현 전 경성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학을 공부하며 '역사는 진퇴보를 반복하며 전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지금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모습은 국민들에게 자괴감을 줄 수 밖에 없다"라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섰고, 우리 시민들도 정치의 주인이 누구인지 저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때가 왔다"라고 구체적 행동을 주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2022년 5월 9일 녹취 육성 파일이 공개된 첫 주말, 윤석열 퇴진 국민투표에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한 시민은 가던 길을 멈추고 "며칠 전에 우리 집 앞에서 했는데 또 해도 돼요?"라고 묻기도 했고,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이거는 무조건 해야지. 어서 빨리 좀 윤석열 끌어내립시다"라며 주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투표에 임하기도 했다.
처음 투표가 시작됐을 때는 젊은 층의 참여가 생각보다 저조했는데, 차츰 시간이 갈 수록 연인끼리 부부끼리 함께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날 1시간 40분가량 받은 투표인원은 119명. 이전보다 많은 수치였다. '노인들이 나와서 하다보니 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해주지 않았겠나'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종합해서 평가한 내용은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 육성 파일이 공개되고, 레임덕이 심화하고 있는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누리회 회원들은 2시간에 가까운 국민투표 참여 독려 이후 오후 4시부터 인근서 열리는 촛불행동 유권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곧장 자리를 떴다. 한 회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0대엔 부마항쟁, 30대엔 6월항쟁에 앞장섰고, 60대에는 촛불항쟁 광장에 있었습니다. 이제 70대에는 윤석열 퇴진 항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