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고등학교 친구 단톡에 주말에 어디로 나들이 갈 것인지 총무가 의견을 개진했다. 늘 리더가 하자는 대로 따랐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 친구가 요즘은 단풍 구경하기 좋은 계절이라며 몇 군데를 추천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두 달에 한번 정도 왕릉과 궁궐을 주로 탐방했다. 이번에는 친구가 소개한 곳 중 서울현충원을 만장일치 선택했다. 지난 주말에 간 여기, 오랜만에 본 친구들도 현충원 단풍이 신기한 듯 기대하는 눈치였다.
노란 은행잎 무성한 서울현충원
지난 주말 오전 우리는 정문에서 출발해 현충원 외곽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현충원 위쪽에 자리한 대통령 묘소 주변에 들렀다가 현충원 가운데 길로 내려오는 코스다.
현충원을 에워싸는 외곽길은 단풍길 그 자체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갖가지 나무로 둘러친 도로에는 낙엽이 뒹굴고 은행잎들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구르는 단풍잎 소리와 새소리 등 자연의 백색소음은 모두를 위로하고 차분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 온 이후 60년 만에 처음 이곳에 왔다는 친구는 "국립묘지로만 알았지, 여기에 이렇게 나무와 숲이 많이 있을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우리 일행은 나무 그늘 한 탁자에 앉아 쉴 겸 목을 축였다. 힘들어 쉬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정취들이 우리를 자연히 멈추게 한 것이다.
친구들은 만나면 이제는 화제가 대부분 건강이다. 나이를 의식하기 시작한 탓이다. 건강만큼 폭넓은 주제가 또 있을까. 음식, 약, 병원, 운동 등 정말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한 친구는 지난달 아내와 근처 도봉산에 갔다 갑자기 심장이 멎는 위급한 상황을 맞았다고 한다. 산이라면 일가견 있는 친구가 모처럼 아내를 데리고 갔는데,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다. 친구 부인은 전직 간호사인데, 남편이 그런 일을 당하니 더 놀랐다고 한다.
응급실에 갔고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됐지만, 그 후 친구는 산은 물론이고 바깥출입도 자신이 없어졌다고 한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통해 특별한 소견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는 데도 친구는 여전히 한 달 전 그날의 트라우마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이 친구의 동정과 호소가 싱거운 축에 속한다며 친구들이 딴지를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치 자기도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겪을 수도 있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한 친구는 자기도 운동 중에 갑자기 부정맥으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다면서 친구들에게 심한 운동과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화제는 건강에서 죽음으로 넘어갔다. 뜻하지 않은 죽음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 화제는 현충원에 잠든 호국영령들이 마치 우리에게 어디에 묻힐 것인지 묻는 것 같기도 했다. 한 친구는 "자신의 장례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를 마쳤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또 어떤 친구는 "고향 가까운 곳에 묘지를 이미 마련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현충원에서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피하지 않고 서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호국영령과 산 자들이 공존하는 공간
현충원 코스는 산행처럼 바쁘지 않다. 표지대로 경건하고 정숙해야 하는 곳이다. 곳곳에 설치한 벤치와 쉼터에는 사람은 있어도 '무언의 대화'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아이러니하게도 현충원에는 우리 같은 노인세대들 보다 젊은이들과 삼삼오오 가족들이 더 많았다.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 손잡고 걷는 데이트족, 꽃길을 걷는 유치원생들이 지금 가을 현충원의 진객들이다.
현충원의 예전의 딱딱한 이미지는 사라졌다. 이는 내가 지난해 봄에 왔을 때 부분적으로 통제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외국영화에서 봄직한 한적하면서 아름다운 공원이랄까. 현충원은 더 이상 엄숙한 장소가 아니었다. 호국영령과 산 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추모공간으로 바뀌었다.
현충원 외곽길에서 내려오면서 저 멀리 묘지를 찾아 헌화하는 단출한 가족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들과 같이 영령에게 묵념을 올리면서 잠시 내 삶을 떠올렸다.
서울현충원 단풍은 아직 제대로 물들지 않았지만 이른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알게 모르게 현충원이 단풍 명소라는 징표이다.
현충원에 오길 참 잘했다. 덕분에 단풍만큼이나 찬란한 인생의 희로애락을 반추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