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이 재정 목표뿐 아니라 복원 목표에서도 국제 기준에 미달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 한국 정부는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을 각각 30%씩 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고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국내 곳곳에는 이름만 보호지역인 '페이퍼 보호지역'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4일 그린피스와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은 제16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6‧생물다양성 총회)가 지난 2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가운데, '돌아오지 못한 보호지역: 보호지역 관리 실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5차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 복원 목표가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GBF)'와 괴리감이 있을 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보호지역이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 2022년 열린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는 2050년까지 달성할 4개 목표와 2030년까지 달성할 23개 실천목표가 담긴 쿤밍-몬티리올 프레임워크가 채택됐다. 당사국들은 이번 16차 생물다양성 총회에서 이 목표를 반영한 국가 전략을 제출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12월 5차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해 지난 8월 제출했다. 16차 생물다양성 총회는 콜롬비아 칼리에서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열렸다. 세계자연기금(WWF)는 지난달 20일 한국의 전략에 대해 '지속가능한 소비 목표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별도 예산이 없다'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국제 목표는 '훼손된 생태계의 30%' 복원인데…
한국 목표는 '복원 우선지역' 30%만 복원 목표로
이날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한국 정부의 전략에 명시된 훼손 지역 복원 목표가 국제 기준과 괴리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는 '훼손된 육상, 내륙수역, 연안 및 해양 생태계의 최소 30% 지역이 2030년까지 효과적으로 복원되도록 지향'하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략은 '2027년까지 훼손 지역을 식별하고, 2030년까지 복원 우선지역의 30%에 대한 생태계 복원에 착수하며, 복원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훼손된 지역을 조사한 뒤 정말 많이 훼손돼서 먼저 복원해야 한다고 지정한 지역이 '복원 우선지역'이다"라며 "가령 훼손된 지역이 100이라면 복원 우선 지역은 30%만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훼손된 지역의 30%의 30%만 복원하는 것이 한국의 전략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쿤밍-몬트리얼 프레임워크 목표는 2030년까지 훼손된 생태계의 최소 30%가 복원되도록 보장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목표는 복원에 착수하는 것, 즉 복원을 시작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복원을 달성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호지역' 있으면 뭘 하나… "'페이퍼 보호지역' 다수"
그린피스‧우이령 사람들은 국내에 이름만 보호지역일 뿐,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페이퍼 보호지역'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한국 정부의 전략에 제시된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을 각각 30%씩 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는 목표가 무용지물한 것 아니냐는 우려다.
구체적인 '페이퍼 보호지역' 사례로는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있는 대암산을 제시했다. 대암산은 대한민국 제1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천연보호구역이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말 벌채가 시작돼 축구 경기장 약 87.5개 크기인 약 70ha(헥타르) 이상의 훼손 현장이 확인됐다. 훼손된 지역 중 10ha는 천연보호구역이고, 훼손된 나머지 지역 중 다수도 야생동물 서식지로 개발이 금지된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다.
가리왕산도 마찬가지다. 가리왕산은 2008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평창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해 2013년 일부가 보호구역에서 해제됐다. 당시 강원도는 올림픽 경기 후 산의 복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국가정원 추가 건설까지 검토되고 있다.
최 캠페이너는 <소리의숲>과의 통화에서 "국가정원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관광객을 위해 주차장을 비롯한 부대시설을 먼저 건설한다. 또 그곳에 있는 식생으로 정원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색적인 꽃들로 조형을 한다"며 "이는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것이고 의도적인 외래종 침입이 되기 때문에, 건설 방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생태계 보전‧복원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그린피스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추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흑산도 일부 지역에 공항 건설 추진을 비롯해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보호구역을 사례로 들었다. 그린피스는 "훼손되고 개발되는 보호지역을 방관한 채 목표 수치에만 집중한다면,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가 목표한 실질적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보호지역의 개발 행위는 야생동식물 서식처와 탄소흡수원 파괴로 이어지고 산림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만큼, 한국 정부에 보호지역 관련 법안을 개선하고 개발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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