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금요일, 경북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주최한 24년 제11회 '올해의 여성노동자상 김경숙상 시상식, 사라진 공장, 꺼지지 않는 저항의 불꽃'이 열렸다.
올해의 수상자는 불이 난 이후 방치된 공장 옥상에서 니토덴코의 평택공장으로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다.
우리의 투쟁은 도화선이 되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79년,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은 사측의 일방적인 폐업과 해고에 반발하며 생존권 투쟁에 돌입했다. YH무역은 1970년 정부의 수출 지원책 덕분에 가파르게 성장했다. 한때 재계 15위를 기록할 만큼의 큰 규모였다. 그러나 사업주는 회사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은행 빚을 얻어 무리한 사업 확장을 진행했다. 경영책임자는 경영 손실의 문제를 그간 형편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착취당한 노동자에게로 돌렸다. 사측의 무책임함에 항의하며 신민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이 시작된다. 하지만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당시 노동조합의 상무집행위원이었던 김경숙은 목숨을 잃었다.
YH노동조합 투쟁과 여성노동자 '김경숙'의 죽음은 박정희 유신체제 종말을 앞당기는 도화선이 되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자살한 것"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던 유신정권과 이와 결탁해 노동자를 착취한 자본가의 전횡에 온 사회가 분노로 들끓었다. 여성노동자들의 결의와 투쟁, 그리고 김경숙의 사회적 죽음은 18년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의 봄을 불러왔고 오랜 세월 노동자 착취를 당연시하고 자본에만 힘을 실어준 사회적•정치적 행태에 균열을 낸 역사로 기억된다.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연대와 투쟁이라는 역동적인 생의 감각을 일깨운 김경숙 열사를 기려 2014년 '김경숙상'을 제정했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했다. 1에서 11회라는 시간적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탄압과 차별에 저항하며 살았던 수상자들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떠오른 얼굴들을 겹겹이 덧대어 보면 하나의 풍경을 포착하게 된다. 그것은 성평등 노동 가치를 땅 깊이 뿌리내리기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뜨거운 투쟁의 장면이다.
불에 탄 후 남겨진 공장은 오랫동안 방치됐음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공장 주차장에는 무너져내려 제 역할을 잃은 방지턱과 듬성듬성 색이 바랜 듯한 잡초가 무성했다. 공장 입구로 시선을 돌리니 우산꽂이에 우산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형형색색의 우산을 보며 방치되기 이전 공장 노동자들의 온기와 수다로 가득했을 장면을 잠시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불빛을 밝히는 이들이 남아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 두 수상자는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겨울을 지나 작열하는 태양 아래 푹푹 찌는 여름을 옥상에서 보냈다. 또다시 한파가 예고되는 겨울을 앞두고 어느덧 300일(11월 2일 기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투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연대
김경숙 열사의 넋과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 최순영 공동대표는 YH무역 투쟁 당시를 회고하며 후배 노동자들만큼은 우리처럼 살지 않게 하자던 그리고 민주노조를 깨는 자본가와 국가에 큰 타격을 주자던 그때의 투쟁 목적을 상기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여전히 이렇게 먹튀 하고 노동자들을 내팽겨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본가들의 태도에 분노와 함께 응원과 격려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농성장을 시상식 장소로 선정했음을 전했다.
이어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김경숙상 수상자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상 이후 항상 승리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는 것입니다"라며 김경숙상이 가져올 빛나는 미래를 전했다. 그리고 "부디 빠른 시간 내에 다시 땅을 딛기를, 그 땅은 꺼지지 않는 안전한 대지이기를 소망합니다"라고 말했다. 수상자 두 분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 위해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마음을 전하며 시상식의 시작을 열었다.
공장에 남아 투쟁을 이어가는 7명이 그곳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돌보고 투쟁의 의의를 다진다. 서로가 있는 한, 투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옥상과 지상의 끈끈한 돌봄은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사회에 의문과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각자도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감각하게 만든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최현환 지회장은 "한국에 진출한 수많은 외투기업(외국인투자기업)들이 다시는 저희들 같은 상황을 만들지 못하도록 저희가 먼저 앞장서서 이 투쟁 고용승계로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며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치밀한 자본과 자본의 편인 공권력에 맞서는 투쟁
한국 옵티컬 하이테크는 일본 화학기업인 '닛토덴코'의 자회사다.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로 닛토덴코는 평택 LG디스플레이에 납품을 하는 공장이 있다. 또한, 평택에는 삼성 디스플레이를 납품하는 또 다른 자회사가 있고 영업을 총괄하는 서울의 영업사업소가 있다. 요약하자면, 닛토덴코는 3개의 자회사가 한국에 진출해 있다. 2022년 10월 4일 구미에 위치한 공장의 생산 설비에서 스파크가 발생하며 화재로 이어졌다.
이후 화재를 수습하지 않은 채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다. 화재보험을 들어둔 회사는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을 받았다. 공장을 재건하고도 충분히 남는 돈이었지만 회사는 다른 선택지를 택했다.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하고 193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구미공장의 생산물량은 또 다른 자회사인 평택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겨졌고 공장은 폐업 처리되고 고용 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끝끝내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노동자 17명은 해고됐다.
회사는 그간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에 근거하여 50년 토지 무상임대와 세제지원 등의 각종 혜택을 누렸다. 지자체는 철저히 자본의 편에 섰다.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묵살했다. 그리고 2023년 12월 29일, 구미시청은 옵티칼 공장 철거 승인을 예고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2022년 이와 같은 말을 했었다. "다양한 노동정책 추진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끌어 노동자가 행복한 도시, 노사가 상생하는 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 구미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 결국 '노동자가 행복한 도시'는 빠지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만 남았다. 기업도 지자체도 책임에서는 손쉽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공장 폐쇄에 맞서기 위해 불에 탄 공장 옥상 위로 올라갔다. 지자체에 이어 사법부도 공장 해체 계획에 승인을 내줌으로써 책임회피를 선택했다. 투쟁 중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가처분 결정까지 내려졌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최현환 지회장은 가처분 결정이 내려진 이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희가 공장에 있는 동안에 하루에 인당 50만 원씩, 총 5500만 원의 가처분 간접 강제금을 부여받게 됨으로써 거주 중인 아파트에 강제 경매가 들어오고, 사용하는 통장이 압류되고 10년 넘게 아파트 구매 구입을 꿈꾸며 넣었던 주택 청약까지 압류가 들어올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저희 모든 연대 동지들이 한 뜻을 모아서 우선 법원에 공탁금을 걸고 정지 신청을 해 놓은 상황입니다."
온기로 가득한 연대 속에서 더욱 피어나는 투쟁 의지
최순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YH무역 투쟁과 수미다 투쟁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고여있는 역사의 한 축에 먹튀자본이 수용되었던 정치•경제적 토대가 있음을 말했다. "그동안 외국 자본가들은 온갖 특혜 누리며 사업하다가 주머니 두둑이 챙기고 계산이 좀 불리하면 이 땅의 노동자들을 내동댕이치고 도망갔습니다." 그는 반복되는 역사를 끊어내야 함을 강조하며 "고용승계 없이 공장 철거 없다. 고용승계 보장하라"고 외쳤다.
이어서 봄(배현주) 대구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1979년 김경숙 열사가 그랬듯이 1931년 강주룡이 을밀대에 올라서 외쳤듯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굴하지 않고 어둠 속을 밝히는 별빛처럼 나를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한 투쟁의 길을 나섰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기억하겠습니다"라며 곁에서 끝까지 연대할 것을 약속하며 힘을 합쳐 함께 나아가자며 온기를 나누었다.
여윤명희 경주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사회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겨주신 두 수상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보니 벌써 반 이상은 승리했다고 봅니다. 이 상 자체에 투쟁의 역사 속에 우리 여성노동운동사에 엄청난 역사의 내용이 있고, 당당히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동지들입니다. 이들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꽃다발과 상패가 도르래를 타고 옥상으로 향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물량을 자회사인 평택으로 옮기고 신규채용을 30명까지 했습니다. 법인이 달라서 받아줄 수 없다는 일본 닛토덴코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한 지 2년이란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투쟁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의 단전 단수를 자행하고 굴삭기를 동원해 저희를 위협했습니다.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공장을 지키고 우리가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고공생활이 힘들어도 저희는 저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 꼭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이어서 소현숙 조직2부장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그 새벽에 저희는 고공에 올라가는 그 계단에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살아보니까 노동자가 부당함에 저항하는 방법은 많지 않더라고요. 아직도 옛날에 자본과 싸우던 방식과 지금의 방식은, 저희는 다르지 않습니다. 진짜 온몸을 다해서 저희를 내던져서 부당함을 호소하는 그것밖에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하지만 저희가 지금 저항하지 않고 포기하고 물러난다면 기업과 자본은 앞으로도 저희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이용해 버릴 겁니다. 저희 투쟁에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해 저항하고 싸워서 반드시 일터로 돌아갈 겁니다"라며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오랜 역사에서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에 따라 여성노동사 또한 평가 절하되기 일쑤였다. 우리는 성평등 노동 가치를 그리고 노동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임을 마음에 새겨본다. 이 땅의 모든 김경숙의 삶을 응원하고 뜨겁게 지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