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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고에서 열린 제95회 학생의날 기념식 장면 제95회 학생의날 기념식이 경문고에서 11월 6일에 개최되었다.
경문고에서 열린 제95회 학생의날 기념식 장면제95회 학생의날 기념식이 경문고에서 11월 6일에 개최되었다. ⓒ 엄익환

11월 6일 오후 2시, 서울 사당동에 있는 경문고에서는 독특한 '제95회 학생의날 기념식'이 열렸다.

95년 전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리는 기념일(11월 3일)이 일요일이었던 탓에 3일 늦게 열린 이날의 기념식은 경문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이날의 행사에는 경문고 학생만이 아니라 인근의 서울미술고, 수도여고, 동구여중 학생과 교사는 물론 동작구 주민,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관계자, 동작구의회 의원 등도 참석한 연대행사로 진행되었다.

학생의날 기념식이 의례적인 행사로 준비된 것이 아니라, 경문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사당초, 남성중, 국사봉중, 구암중, 수도여고 등 인근의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 활동보고회 겸 주민서명용지 전달식의 성격을 띤 탓이다.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경문고 학생들이 2022년부터 3년째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학교 인근 흑석동에 있는 학도의용병현충비 옆에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설치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경문고 학생들의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 활동 장면 경문고 학생들이 지역주민 서명운동 도중 학도의용병현충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경문고 학생들의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 활동 장면경문고 학생들이 지역주민 서명운동 도중 학도의용병현충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양승렬

지역주민 서명 장면 경문고 학생들이 지역주민을 상대로 평화의조형물 설치에 동작구청이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지역주민 서명 장면경문고 학생들이 지역주민을 상대로 평화의조형물 설치에 동작구청이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 김학규

이를 위해 경문고 학생들은 2022년에는 인근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꽃을 들고 지역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교육감(당시 교육감 조희연)에게 청원을 하여 지원을 약속받는 데 성공했다.

경문고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학생공모로 선정된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을 제작하여 2023년 11월 3일에 맞춰 조형물 설치를 마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평화의 조형물 제막식까지 진행했음에도 뜻하지 않은 행정적 문제로 설치를 완료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올해 다시 동작구청(구청장 박일하)의 신속한 행정 처리를 요구하기 위해 꽃을 들고 거리로 나가 지역주민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날 학생의날 기념식장에서 1051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용지를 노성철 동작구의회 의원(흑석동, 사당1·2동)에게 전달한 것이다. 담당 학생에 따르면 "서명용지는 박일하 동작구청장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구청장이 일정 관계로 기념식장에 올 수 없게 되어 구의원에 전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명용지 전달 장면 학생들이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로 지역주민 1,051명의 서명을 받아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평화의 조형물 설치에 동작구청이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하는 서명용지를 노성철 동작구의회 의원에게 전달하고 있다.
서명용지 전달 장면학생들이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로 지역주민 1,051명의 서명을 받아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평화의 조형물 설치에 동작구청이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하는 서명용지를 노성철 동작구의회 의원에게 전달하고 있다. ⓒ 김학규

경문고 김창희 학생(1학년, 키비쳐 동아리 차장)은 활동보고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저희 같은 무고한 10대들이 희생되고 있다"면서 "전쟁을 막고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평화의 조형물을 세우는 데 미래를 살아갈 저희 학생들이 기여한 것이 사회에도 영향을 주게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가현 동작·관악 고등 대표(서울미고 학생)는 기념사에서 "1929년 광주 학생들이 보여준 용기와 단결은 단지 학생 권리를 넘어서 민족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현실은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더욱 공감과 연대의 자세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의 평화의 연대를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밝힌 임정희 동작마을넷 마음껏 대표는 "경문고 학생들이 주도하고 지역학생들이 함께 나서면서 지역주민의 호응을 받고 있는 연대의 힘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가 동작구청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으로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고 했고, 홍연표 경문고 교장선생님도 격려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노력에 어른들이 적극 호응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로 동작구청의 적극 행정을 촉구했다.

경문고 학생들을 비롯한 동작·관악 지역 청소년들의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는 2025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평화의 조형물 학도의용병현충비(흑석동 소재) 옆에 세우려고 제작한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평화의 조형물인데,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평화의 조형물학도의용병현충비(흑석동 소재) 옆에 세우려고 제작한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평화의 조형물인데,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 김학규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학도병 이우근(동성중 3학년)은 1950년 6·25 한국전쟁 직후 포항지구 전투에 참전하던 중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가 호주머니에 넣은 채 전투를 벌이던 중 그해 8월 11일 전사한 분입니다. 당시 이우근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이후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고 이우근 학도병의 호주머니에서 미처 어머니께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영화 <포화 속으로>(2010)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편지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壽衣(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동작구#평화의조형물#이우근#평화#부치지못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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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2022) <현충원 역사산책>(2022),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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