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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 용궐산 하늘길
순창 용궐산 하늘길 ⓒ 이완우

용궐산(龍闕山)은 순창 동계면 어치리 섬진강 옆의 커다란 바위 하나로 이루어진 산이다. 섬진강은 용궐산의 서북쪽, 서쪽과 서남쪽을 휘돌아 흐른다. 국토지질정보에 의하면 용궐산 일대는 순창편상 화강암의 지질구조라고 한다.

용궐산(옛이름 龍骨山, 용골산) 이 산을 이루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본체를 용녀암(龍女巖)이라고 한다. 용궐산 서남쪽은 절벽에 가깝게 가파른 슬래브(Slab) 경사면이 드러나 있다. 이곳에 용궐산 하늘길 잔도가 설치되어 있다. 지난 5일에 섬진강 장군목 유원지에서 요강바위 등 다양한 바위를 살펴보고, 용궐산 하늘길과 등산로 탐방에 나섰다.

 순창 섬진강 장군목 요강바위
순창 섬진강 장군목 요강바위 ⓒ 이완우

용궐산 주차장과 매표소를 지나면 하늘길 입구까지 0.5km의 가파른 돌계단 길이 열렸다. 하늘길 잔도는 매끄러운 용녀암 절벽을 지그재그로 평탄하게 180도 방향으로 네 번 바꾸어서 1.1km의 슬래브 경사면 암벽을 오른다. 용이 승천하는 듯 열린 하늘길이 끝나면서, 비룡정 정자가 가파른 바위 끝에 날아갈 듯 멈추어 있다.

 순창 용궐산 용녀암
순창 용궐산 용녀암 ⓒ 이완우

용궐산 하늘길에는 <순창의 구전 설화>(2002년, 순창 문화원)에 채록된 '두무소와 지네' 전설이 전승된다. 두무소(頭無沼)는 용궐산 아래 섬진강에 깊은 강물이 소용돌이로 머물러 가는 용소이다. 섬진강 두무소의 이무기와 용골산의 지네(蜈蚣 오공) 가 천 년에 한 번 오는 승천의 기회를 잡기 위하여 싸웠다는 설화이다.

용골산의 천 년 묶은 지네가 젊은 여인으로 변하여 한 남자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두무소의 이무기와 천 년 만에 승천의 기회를 놓고 대결을 벌일 때, 남편의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네가 두무소의 이무기와 승천의 기회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날, 남편이 겁을 먹어 끝내 지네를 돕지 못했기에 지네는 죽고 이무기가 승천하였다고 한다.

섬진강과 용궐산의 수려한 풍경과 지세가 인간 세상이 아니고 하늘의 풍경이 되려고 승천하려 했을까? 어쩌면 이 지역에 기반을 둔 두 호족 세력이 대결하여 승자와 패자로 나뉜 오랜 옛날의 이야기가 설화로 바뀌어 전해오는 것일까? 향토에 전해오는 설화에서 용은 신성한 영물이다. 승자는 용이 되고, 패자는 이무기, 구렁이나 지네로 변형되어 전승된다.

 (왼쪽 위) 용궐산 잔도 하늘길, (오른쪽 위) 용궐산 잔도 하늘길, (왼쪽 아래) 용궐산 비룡정, (오른쪽 아래) 용궐산 아래 섬진강 풍경
(왼쪽 위) 용궐산 잔도 하늘길, (오른쪽 위) 용궐산 잔도 하늘길, (왼쪽 아래) 용궐산 비룡정, (오른쪽 아래) 용궐산 아래 섬진강 풍경 ⓒ 이완우

용궐산 용녀암에 잔도로 설치된 1.1km의 하늘길을 오르면 비룡정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용궐산 정상까지 1.3km의 등산로가 시작된다. 느진목까지 0.3km, 된목까지 0.6km를 지나 정상까지 0.4km의 등산로는 날카로운 암릉 구간이 많다.

멀리 바라보이는 첩첩산중의 풍경은 깊고 그윽하다. 섬진강은 멀리 북쪽의 임실 덕치면에서 흘러와 발아래를 적시고, 남쪽의 순창 적성면 쪽으로 흘러간다. 서북쪽의 섬진강에 장군목 유원지의 빨간 현수교가 보인다.

 용궐산 아래 섬진강 상류 방향 장군목 유원지 풍경
용궐산 아래 섬진강 상류 방향 장군목 유원지 풍경 ⓒ 이완우

된목에서 서남쪽 섬진강 방향으로 0.3km를 내려가면 용굴이 있다. 용굴은 용녀가 살았다는 바위 동굴로서 어쩌면 용궐산의 정체성이 신비롭게 머물러 있는 곳이다. 용굴은 수평으로 10m 깊이까지는 들어갈 수 있다. 바위가 채곡채곡 채워져 구성된 2층과 3층의 어둡게 좁아지는 깊은 공간은 접근할 수 없다.

용굴 안에서 바깥을 보면 어두운 동궐과 밝은 바깥 풍경이 선명하게 대조된다. 동굴 입구는 반듯한 직선으로 사각형 석문을 이뤄서 용녀의 단정한 풍모처럼 느껴진다. 용굴 속에는 창문 역할을 하는 바위 틈새가 여러 곳 있다. 제일 큰 바위 틈새는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의 형상으로 비쳐 들어오는 빛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용궐산 용굴에서 본 바깥 풍경
용궐산 용굴에서 본 바깥 풍경 ⓒ 이완우
 용궐산 용굴의 창문 역할 바위 틈새 신비로운 빛의 기운
용궐산 용굴의 창문 역할 바위 틈새 신비로운 빛의 기운 ⓒ 이완우

용굴 앞에는 이곳 용굴의 설화가 기록된 안내판이 있다. 용굴 설화는 섬진강 장군목 유원지의 요강바위와 직접 관련이 된다. 섬진강에는 거북이가 요강바위를 집 삼아 살았고, 용궐산에는 용녀가 용굴에서 살았다. 용녀와 거북은 천 년 동안 선행으로 덕을 쌓으면 함께 승천할 수 있었다.

천 년 동안, 이 풍광 좋은 곳에서 섬진강과 용궐산은 좋은 이웃 터전이었다. 드디어 거북은 신선이 되고, 용녀는 선녀가 되어 함께 승천했다고 한다. 섬진강 장구목의 요강바위를 거북이가 살던 집이라고 구와(龜窩)라고 부른다.

 (왼쪽 위) 섬진강 장군목 거북 바위, (오른쪽 위) 섬진강 두무소 풍경, (왼쪽 아래) 용궐산 용굴, (오른쪽 아래) 용궐산 용굴 안쪽 바위 틈새 형상
(왼쪽 위) 섬진강 장군목 거북 바위, (오른쪽 위) 섬진강 두무소 풍경, (왼쪽 아래) 용궐산 용굴, (오른쪽 아래) 용궐산 용굴 안쪽 바위 틈새 형상 ⓒ 이완우

용굴 가까이에 용유암지(龍遊庵址)가 있다. 용유암은 용녀가 살았다는 용굴 옆에 있으니, 용녀암(龍女庵)이 더 어울렸겠다. 커다란 암벽을 병풍 삼아서 아늑한 가람 터전이 남아 있다. 암자 터, 석축과 너른 마당 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임문수(林文洙, 1802~1883)는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으로 호는 오암(鰲庵)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오수장에서 포목 장사하면서 아들의 공부를 기대하였다. 아버지는 이곳 용유암에서 글 공부하는 아들에게 사흘마다 들렀다. 암자 마루에 쌀자루를 살며시 놓아두고, 아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밤길을 돌아갔다.

어느 비 내리는 날, 아버지는 암자에 들렀으나 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암자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맞으며 아들이 책 읽는 소리를 기다렸다. 아들은 초저녁에 잠시 잠 들어 있었다. 얼마 후 아들이 방문을 열었을 때 한켠에서 비를 맞고 쪼그리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들은 이날 이후로 굳게 결심하여, 게으름을 물리치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훗날 아들은 대과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길에 올랐다. 용유암지에는 용알이 깨어진 듯한 바위가 있었다. 용알이 깨어져야 용이 나올 것이다. '용유암에서 공부하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소문이 났고, 과거 공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 암자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고, 고요하다 절터에 단풍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용굴에서 다시 된목으로 올라와 용궐산 정상으로 향했다. 용궐산 정상에 서니 동쪽으로 멀리 하늘 아래 지리산 주능선이 아스라히 보였다.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한 흐름은 언제나 그 품에 안기고 싶은 그리움으로 자리잡았다. 섬진강이 용궐산을 휘돌아 흐르는 첩첩산중의 풍경은 그림 같았다.

 용궐산 정상에서 동쪽 원경, 멀리 하늘 아래에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
용궐산 정상에서 동쪽 원경, 멀리 하늘 아래에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 ⓒ 이완우

섬진강 상류 장군목 유원지와 용궐산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이었다. 이런 곳에 오랜 세월 두 가지 설화와 전설이 전승되었다. 이 지역은 산과 강이 함께 어우러진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의 선경이었다. 이러한 절경이 강의 이무기와 산의 지네가 천 년을 기다려 승천하려는 이야기로 남았나 보다. 강의 거북과 산에 사는 용녀가 함께 천 년을 기다려 하늘로 승천하는 사랑의 이야기로 남아 전승되나 보다.

용궐산 하늘길 잔도를 오르고, 용궐산을 등산하면서 용궐산은 하나의 용녀암이고 용녀산이라 할 만했다. 용궐산은 아예 용녀산이어도 좋았다. 용유암은 용녀암이어도 좋았겠다. 용궐산 정상 가까이에 섬진강을 바라보며 용굴(용녀굴)은 감동이었다. 천 년의 용녀가 머물렀다는 이 용녀굴에 들어가 머물면서, 바위 틈새로 비쳐드는 빛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잊을 수 없었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 풍경에 담겨 있는 과거의 역사와 구비 설화도 알아보자. 공정 여행은 여행지에서 현지인들과 교류하며 현지에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현지 문화를 체험하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에 여행지의 역사와 설화를 찾아보려는 태도와 실천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창 용궐산 정상
순창 용궐산 정상 ⓒ 이완우

#용궐산하늘길#용궐산용굴#용궐산용녀암#용녀천년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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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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