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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4일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지난 8월 14일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우리나라 의료서비스는 국민건강보험 제도 확립과 함께 지속된 양적·질적 향상을 이루어 왔다. 보편적 의료 보장 확대로 비교적 높은 의료 접근성과 함께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 비용을 장점으로 여겨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의료 체계는 의료 기관의 수도권 집중과 질적 차이, 이에 따른 환자의 쏠림 문제와 함께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간 규모와 질적 격차 확대, 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게다가 이제는 저출생·초고령 사회라는 인구 구조 문제와 연결되며 사회보험 재정 확보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현재의 의료 이용 환경에 대대적인 변화가 없다면, 결국엔 개인의 구매력에 따른 의료가 더욱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필수·중증·공공의료의 결핍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의료체제 문제와 함께 현재 우리 의료체계 문제를 더욱 뾰족하게 드러내며 전 사회적인 문제로 쟁점화되었다.

이에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이전 정부에 이어 지속해온 한국 의료체계 문제와 필요성의 연장선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윤석열 정부는 이전과 다르게 무엇보다 경상 의료비 폭증과 건강보험 재정 지속성 문제와 결부해 사회적 쟁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른 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 의대 증원 확대에 따른 의-정 간 거친 갈등은 마치 의사 인력 확보만이 의료체제 개혁의 가장 핵심적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현 정부가 제기하고 싶었던 초고령 사회에 따른 재정 문제는 가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의사 인력 확보는 의료체제 개혁 중 핵심 의제임이 틀림없다. 의료라는 영역 자체가 결국 인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물론 '초고령 사회에 대비한 의료' 확보라는 점에서도 현재 시점의 의사 인력 부족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 의료체계의 주요 문제를 이용자 시각에서 보면 수도권 쏠림,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집약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크고 복잡한 문제가 빙산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뾰족이 드러난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이용자의 시각이 아닌 의료체제에서 개선해야 할 문제를 나열하면 ▲의료전달체계 기능의 미분화에 따른 과잉 병상과 과소 병상 ▲급성기병원의 장기 재원 일수 ▲일차 의료 부족에 따른 만성질환 관리 저하 ▲지역적 의료 인프라와 시설의 불균형 ▲전문의 과잉과 일반의 부족 ▲보건의료 인력 간 업무 범위와 역할의 혼란 ▲보건의료 인력 간 노동 환경과 보수의 불균형 ▲비급여 항목의 통제와 관리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한 지불 제도 한계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성 등 문제를 세부화하면 끝도 없이 제시되는 상태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의료개혁은 관련 보건의료 노동자만이 아닌 환자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므로 중장기적인 개혁 방향 설정과 이에 따른 ' 근본적인 개혁'으로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2025년 대입 전형이 진행되고 있어 의대 정원 확대가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개혁에 따른 저항과 피해의 두려움에 대한 이해관계의 복잡성으로 향후 언제라도 기존의 질서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 현재 정부 개혁에 부족한 다양한 정책과 이를 받쳐줄 재원 문제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의료개혁은 큰 혼란을 가져온 정치적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

결국, '근본적인 개혁' 추진의 성패는 의료개혁을 통해 도달해야 할 사회 형태의 모습을 사회 공동체와 공유하는 가운데, 현재의 위기와 곧 다가올 미래의 위기에 대비할 의료 체계 지속성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실현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집단의 이익 극대화 전술과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정부 간 극한적인 대립에 토론과 설득에 의한 개혁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의사 인력이 확보된다 치더라도 변화된 의료체제에 적응하며 추가적인 개혁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수도권, 대형병원, 급성기병원 위주의 이용 환경에 대한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지역의료와 1차 의료가 확보되고 이용자들의 이동이 있어야만 한다. 지역의료, 1차 의료 확대에 따른 인프라와 의사만이 아닌 보건의료 인력의 질적 확보는 꽤 시간이 걸리고 새로운 자원이 확보되어야만 가능하다. 게다가 인구 구조에 따른 돌봄 확보와 연계한 의료개혁은 1~2년에 걸친 일이 아니라 10~20년간 지속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길어지고 있는 의-정 대립으로 의료개혁 방향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의료기관에 가기 어렵게 된다면 기존의 의료환경 유지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우리 노동자도 그렇다. 장기화된 의료 공백은 병원의 노동자에게도 타격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 노조는 올바른 의료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해 왔다. 단지 의사 인력 충원만이 아니라 왜곡된 의료 전달 체계를 바로 잡고, 의사 중심만의 의료가 아닌 직종 간 협업과 임금 격차 축소, 혼합진료·비급여 진료 축소와 진료량 중심의 건강보험 지불 구조 개편을 지속해 제시해 왔다.

의료와 연계된 돌봄으로의 복지 체제 확보를 위해 이미 예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도입을 요구해 오기도 했다. 예컨대 간호법은 단지 의사 인력 부족에 따른 PA 문제만 담긴 것이 아니다. 초고령 사회는 지역사회에서부터 가장 먼저 대응할 수밖에 없어 의사 외에도 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인력의 사회 기능적 역할 부여와 배치가 필요하다.

의료전달 체계 개편도 마찬가지로 상급종합병원, 2차 병원, 1차 의료가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각 지역적 상황에 맞도록 해야 한다. 지역·공공의료 체계는 질환에 따른 유병만을 담당하지 않는다. 질환에 따라 거동이 불편하다면 그에 따른 돌봄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현재는 질 낮은 요양병원에 위탁되고 있는 노인 돌봄이며 많은 의료 재정을 들이고 있다.

건강보험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도 각 기능과 역할에 맞도록 지급되어야 한다. 현재의 행위별 수가가 진료 행위량을 높여 의사가 적극적으로 진료를 확대하도록 해왔다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형 민간자본에 바탕을 둔 인프라 구축과 높은 성과급에 따른 의사 인력 확보에 따른 의료전달 체계의 심각한 왜곡이 발생해 왔다. 수도권 쏠림과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는 이런 문제의 상징이다.

그러나 응급실 문제가 단지 응급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응급실과 연계된 필수의료와의 부족한 배후 역량이 겹쳐 발생하는 것은 잘 얘기되지 않는다.

이처럼 올바른 의료개혁이란 병원의 기능과 역할만이 아니라 각 보건의료 직종, 도시와 농어촌의 지역적 차이, 건강보험 지불의 단순 진료량이 아닌 기능에 따른 성과 보상, 궁극적으로 의료와 돌봄의 통합복지 체계를 추구한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에 따른 재난 의료 확보를 새로운 의제로도 포함한다. 그래서 올바른 의료개혁은 극한의 의-정 갈등과 현 정부의 민간의료와 공공의료라는 이분적 사고가 아닌 모든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추구해야 한다. 늘어난 의대 정원만큼 무너져 가는 공공의료, 지역의료, 필수의료가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 간 의료 불균형과 직종 간, 노동자 간 처우의 불균형을 함께 해소해 가지 못하면 결국 의료개혁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의료의 제공자와 이용자가 균등하게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가치에 따른 체계가 아닌 소득 차이, 지불 능력 차이에 따른 의료 환경이 강화되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의료개혁의 실패일 것이다.

결국, 의료개혁은 현재의 의료체계를 이용하고 그 속에서 노동하고 운영하는 우리 모두이겠지만, 의료개혁의 진정한 주체는 의사도 정부도 아닌 우리 자신과 환자, 국민이어야 한다는 것에 유념했으면 한다. 우리 노조가 지속해서 얘기해 온 올바른 의료개혁은 공공의료, 지역 의료, 필수의료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좁고도 험난한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가장 넓은 광야에 이르는 길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9호에도 실립니다.글쓴이는 최희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9호 11,12월호 '사이를 잇다'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의료개혁#의료서비스#의정갈등#보건의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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