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중국도자기가 발견 된 것이 우리나라 수중발굴의 최초 역사다. 신안선 발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수중발굴이 이루어졌다.
1983년 12월 국내에서 또다시 발견된 완도선엔 보물로 가득했다. 그것은 고려청자를 가득 실은 우리나라 전통 한선이었다.
신안선 수중발굴이 지지부진했다면, 완도선 수중발굴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신안선 수중 발굴 때 도굴 위험의 노출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3만 점이 넘는 청자를 실은 침몰선이 세간에 알려지자 모두가 주목했다. 완도선의 청자는 고미술적 가치보다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초기 고려청자였다.
전형적인 우리 고유의 선박의 발견은 신안선의 발견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물론 고려청자도 관심사였지만, 학계에서는 우리의 전통 한선에도 주목했다. 그래서 최초 발견의 타이틀이 붙여진 것이다.
완도선에서 발굴한 청자는 인근의 해남군 산이면 도요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선박의 재료도 흥미를 끌었다. 배를 만들 때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자라는 비자나무가 사용된 것이 특징이었다. 동백나무, 굴참나무 등 다양한 남부수종이 완도선에 사용된 것이 밝혀졌다.
완도선 수중 발굴 이후 40년 동안 14척의 한선 발굴이 이뤄졌는데, 그것으로 학계는 고대 선박의 항로를 연구했다. 그들의 목적지가 모두 수도인 개경이었다.
그런데, 완도선은 항로가 달랐다. 3만 여점의 고려청자의 소비처도 달랐다.
우리나라 한선의 실체가 약산면 어두리에서 수중발굴로 드러나자 문헌 기록에 의존했던 이전의 한선 연구는 실전으로 뛰어 들었다. 조선 시대 이전의 자료는 이름으로만 전할 뿐 선박의 정확한 구조조차 알 수 없었다. 완도선의 수중발굴이 한선 연구의 원천 자료가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전통의 고려시대의 선박은 문헌상 명칭만 일부 보이고, 정확한 선박의 구조나 형태는 알 수 없었다. 세곡을 실었던 조운선은 초마선, 평저선 등이 고려사에 기록으로 전하며, 용선, 누선 등의 기록도 보인다고.
완도선에서 발견한 청자는 뚜렷한 편년과 소비처, 유통구조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아 추가적인 연구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완도군과 청자를 생산한 지역인 해남군이 문화적 긍지를 가지고 규명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학계에서는 말한다.
해남의 청자는 고려 중기에 각지에서 운영된 조질 청자 요장과 비교할 때 규모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해남 산이면 진산리에서만 150개소 정도의 가마터가 확인됐고, 완도선에서 3만 여점이 넘는 해남 청자가 선적되어, 남해안 일대와 경상도 지역으로 운반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고. 그리고 소량이지만 해남 청자가 일본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어 다양한 지역에서 소비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발굴이었다.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완도선의 운영 주체는 전라도 서남해안 일대의 상인집단이었고, 민간이 사용하는 상품으로 상인들의 이윤추구가 목적이었다.
완도선의 출항지는 화원반도 남쪽 해창만 일대의 포구인 입암포에서 완도군의 고금, 약산 북쪽의 연안 해로를 따라 남해 연안 항로로 이어진다. 기항지로는 남해 연안의 장흥, 사천, 거제, 진해, 기장 등지이고, 경상남도 가운데 내륙으로는 진주목 관내의 산청, 함양 등지로 예상한다.
완도선 발굴지를 위치적 근거로 볼 때 완도선의 기항지를 남해 연안으로만 보지 않고 경주가 위치한 동해안과 일본까지 영역을 확장해 볼 필요성도 제기된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완도선과 신안선, 달리도선, 진도선이 발견됐고, 그로 인해 국내외의 유통 경로와 해사문화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체계적으로 수중고고학을 다루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편이다. 목포나 태안의 박물관을 중심으로 활용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번 완도선 학술대회는 대만과 일본의 학계에서도 참가했다. 수중 고고학 조사와 수중문화자산 보존 유지는 대만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전문 연구인력과 협력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 역시도 수중고고학에는 여태 무관심 정도이다. 그동안 일본은 다카시마해저유적의 활용사업을 추진해 왔다.
일본 학계는 철저한 수중문화유산 관리 방법을 구축하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연구를 진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 전역의 수중고고학 발전의 기여를 기대한다고.
완도선 국제학술대회는 완도군의 자랑이요, 완도군민의 자긍심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완도군은 국가가 지정한 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우리나라 전통 선박을 만드는 한선기능장도 있다. 완도선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 지역에서 그에 대한 예우와 전수자 보존 차원의 노력이 없다면 완도선 학술대회는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