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숭례문과 서울시청 사이 세종대로 구간에서 열린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및 1차 탄핵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는 당시 경찰의 대응을 두고 "과잉 진압이 명백했다"고 지적했다.
야당 대표이자 국회의원으로서 당시 현장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여기에 전혀 응하지 않고 "물리적 진압"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경찰에 목덜미를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상의도 찢겼다. 결국 4번 갈비뼈가 골절되고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했다.
한 의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날 상황이 "예견된 사고"라고 했다. 애초 경찰에서 허가한 집회 공간이 참가 인원 대비 턱없이 좁았기 때문이다. 또 실제 집회 참가 인원이 예상보다 많을 경우, 추후 법적인 문제를 따지더라도 현장에서는 우선 참가자를 보호하기 위해 더 넓은 집회 공간을 열어주는 등 협의에 나서는 게 보통이지만 이날 경찰은 '불법 도로 점거'라는 입장만 고수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의원은 이날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의 역할도 평소와는 달랐다고 지적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 '폴리스라인'에 서는 교통경찰뿐만 아니라 집회 진압을 목적으로 한 기동대가 투입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평소보다 강력했던 경찰 통제를 "정권 퇴진 운동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포석"으로 의심했다. 박근혜 정권의 탄핵 당시처럼 "국민들의 분노가 광장으로 모이는 일을 사전 봉쇄하기 위한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다.
그는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권과 시민사회, 언론이 사안을 좀 더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며 경찰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반면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과잉 진압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관련법상 절차를 모두 준수했다"라며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는 입장을 지난 11일 밝힌 바 있다.
다음은 한 의원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보통 때와 다른 경찰...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지난 9일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는데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가슴에 흉통이 느껴져 병원에 갔더니 단순한 타박상이 아니라 4번 갈비뼈가 골절됐다고 하더라. 또 5번 갈비뼈에도 멍이 들었다. 심장 근처에 있는 갈비뼈들이라, 좀 더 강한 압박이 있었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손가락도 붓기가 아직 다 빠지지 않았다. 골절은 아니지만 인대가 늘어나 관리를 받아야 한다."
-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시민과 경찰들이 물리적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제가 정당 대표로서 그 자리에 참석해 연단 앞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계속 경고 방송이 들려왔고 경찰이 해산 명령을 했다. 이 때문에 대회사도 진행되지 않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국회의원이 나서서 막는다면 조금은 진정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와 제가 뛰어 들어갔다.
먼저 현장 지휘관인 총경을 찾았다. 너무 많은 노동자와 시민이 있는 만큼, 물리적으로 차로를 확보하려 하지 말고 협의를 해 안전하게 집회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지방경찰청장과 얘기되지 않으면 우리는 명령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다시 '국회의원이 와서 협의 요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달라'고 요구했다. 무전기로 실시간 상황이 보고될 텐데도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하더라. 그래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전화해 중재를 요청했다.
그런 와중에 현장에 충돌이 있어서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경찰들이 오히려 나를 막고, 국회의원이라고 하고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오히려 나를 밀치고 넘어뜨리고 뒤로 당겼다. '기동대장과 소통하고 왔으니 멈추라'고 이야기를 계속해도 막무가내로 진압했다."
- 경찰이 진압복을 입고 참가자들에게 삼단봉을 휘둘렀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쳤나?
"민주노총 조합원 중 다친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10여 명은 심하게 다쳤다고 들었다. 다수가 타박상을 입고도 병원을 찾지 않고 분노한 채 집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11명의 참가자들이 현장에서 연행됐고 4명에게 구속영장도 청구된 상태다."
- 집회 이후 '과잉 진압' 논란이 일고 있다.
"과잉 진압이 명백하다. 그날 오후 2시에 한국노총 집회가 먼저 열렸다. 이 집회만 하더라도 경찰이 평범한 폴리스라인을 치고 안전망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오후 4시민주노총 집회에 참석할 때도 비슷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달랐다. 진압복을 입은 기동대가 마치 '전투경찰'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쫙 깔려서 진입로부터 통제했다. 2015년 11월 박근혜 정권 당시 열린 민중총궐기에서 경찰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뒤 그런 장면은 처음 봤다. '오늘 집회,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긴장한 상태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실제로 물리적 충돌이 생겼다."
- 민주노총 측에서는 경찰이 애당초 충돌을 부추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불법 도로 점거'라고 하면서 기동대를 앞세워 몸으로 계속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너무 위험해 보여 내가 현장에서 경찰들에 '이러지 말고 차라리 민주노총 지도부를 법규 위반으로 사법처리 하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렇게 하면 사고 난다면서 말이다. 한 개 차로라도 (추가 확보할 수 있게) 협의하자는 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모든 제안이 무시됐고 경찰은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 경찰 측은 민주노총이 "세종대로 전 차로를 불법 점거해 최소한의 통로를 확보하려는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산명령도 세 차례나 했다고 한다.
"경찰들이 볼 땐 집회신고 범위를 넘어섰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됐다. 처음부터 다수의 인원이 오기로 예정돼 있는데도 협소한 공간만 허가를 해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2개 차로를 남기고 나머지를 집회 공간으로 쓰도록 했는데 그곳만 쓰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집회 참석 예상 인원 수보다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면 인원 추산이 잘못된 사실을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우선 사고가 나지 않도록 공간을 더 확보해 줘야 한다. 그동안은 그런 조치들을 경찰이 했다. 그런데 이번엔 경찰이 끝까지 두 차선을 확보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심지어 차로를 확보한다고 하면서 집회 공간을 갈라버리기도 했다. 집회를 방해하려는 목적도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 경찰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인데, 이유가 뭐라고 보나.
"매주 벌어질 '정권 퇴진 운동'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포석이 아닐지 의심하고 있다. 정권 퇴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광장으로 모이는 일을 사전 봉쇄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앞서 얘기했듯 실제로 이날은 투입된 경찰들부터가 달랐다. 안전을 책임지는, 폴리스라인 중심의 통제를 하는 교통경찰이 아니라 집회 진압을 목적으로 하는 기동대가 투입됐다.
심지어 경찰은 이번 집회에 '폭력 집회'라는 색깔까지 덧씌웠다. 이런 경찰의 시선이, 과거 촛불 집회에 가족들과 함께 나왔던 참가자들의 마음을 위축시킬 수 있다. 또 평화로운 집회를 (민주노총이) 폭력 집회로 만들었다면서 전선을 흩트리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본다. 경찰이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했다'며 사람들을 연행해 가고, 이후 '경찰이 몇 명 다쳤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는 건 과거 공안 정국에서 경찰들이 했던 행태다.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권과 시민사회, 언론이 사안을 좀 더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찰에 이번 폭력 진압에 대해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