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늘은 2025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전날 끓여둔 미역국을 데웠다. 시험 보러 가는 아이의 도시락통에 갓 지은 밥과 미역국, 햄, 계란과 호박구이를 넣어줬다. 시험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 버스가 편하다고 웃으며 혼자 집을 나간다.
"문제 잘 읽어. 파이팅!"
잠시후에 같은 고3 아들이 있는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난 오늘 일에 집중하기 힘들 것 같아서 연차 냈어. 기도하러 성당 가려고 해."
나는 친구와 반대로 집에 있으면 불안한 마음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출근하기로 했다. 되도록 아이 생각은 안 하면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잘 보내고 싶었다. 어떤 식으로든 오늘 하루를 잘 보내면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나 자신에게도, 친구에게도 힘내자는 말을 건넸다.
"도시락은 뭐 싸줬어? 난 죽 하고 장조림 싸줬어. 정확히는 사준 거지만."
"난 미역국 싸줬어."
"헉."
"시험 보는 날 미역국을 싸 줬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니?"
아이가 결정한 수능 도시락 메뉴
얼마 전부터 수능날 도시락으로 뭘 싸가면 좋을지를 아이와 이야기했다. 처음 정한 메뉴는 죽이었다. 긴장을 해서 소화가 잘 안 될 수도 있고 식욕이 없을 수도 있으니 부드러운 죽이 좋을 것 같았다. 모의시험을 보러 가는 날에 소고기야채죽과 사골국을 싸줬더니 괜찮았다고 해서 수능날에도 그렇게 싸 줄 생각이었다.
수능 전날, 아들이 속이 조금 불편하다며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시험 보기 전인데 미역국 괜찮겠어?"
"미역국이 안 좋다는 거 근거 없는 말이잖아요. 오히려 위에 부담 안 되고 좋대요."
나는 어릴 때부터 시험 볼 때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고, 그래서 수험생한테 미역국은 금기 식품이라고 믿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이걸 어기면 왠지 아는 문제도 틀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그 말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들의 요청에 따라 미역국을 끓여 수능 전날에 먹게 했다. 그런데 아들이 미역국을 먹고 속이 편안했다며 수능날 도시락에도 흰쌀밥과 미역국을 싸달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미역국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미역국은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음식으로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하고 혈액순환, 스트레스 완화 등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미역국을 좋아하고, 생일 같은 기쁜 날에는 꼭 미역국을 먹었기 때문에 미역국은 아이한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미역국을 먹고 미끄러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만 없애면 시험 보는 날 싸줘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근거 없는 말을 너무 오랫동안 신경 쓰며 살았다. 아마 이 말은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 같다.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로
"3당 2락이래."
얼마 전에 지인을 만나고 온 남편이 내게 말했다. 예전에는 대학의 합격 여부에 대해 '4당 5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었는데, 요즘에는 사교육비로 한 달에 3백만 원을 쓰면 붙고 2백만 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 아들은 떨어지는 거야?"
아이의 학원비로 한 달에 3백만 원을 쓸 수 없는 우리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3당 2락'이니, '4당 5락'이니 하는 말들도 미역국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말처럼 누군가의 불안감이 만든 말인 것 같다. 아니면 누군가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싶거나.
아들이 몇 달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힘이 될 만한 문장 하나씩을 찾아 노트에 썼다. 어느 날 청소하다가 보니 이런 문장이 있었다.
"불안에게 내 삶의 핸들을 내어주지 말자!"
아침에 이 말을 기억하면서 출근했는데... 애쓰고는 있지만, 아들이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불안한 마음이 자꾸 핸들을 뺏어가려고 한다.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