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민주노총 희망연대본부 LGU+비정규직지부는 2024년 '노무관리 방침 변화에 따른 노동자 건강영향 변화 및 과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를 통해 실적압박을 위시한 사측의 노동통제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를 향상시키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주된 결과를 연속 기고를 통해 알리려 한다.[기자말] |
지표는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이유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모두 협력사 소속이었고, 유플러스에서 나온 QM의 통제 속에 회사가 운영되었다. 당시 지표가 하나라도 깨지면 우리는 급여를 차감당했다. 고객민원(VOC_Voice Of Customer) 하나만 걸려도 노동조합이 없을 당시에는 수십만 원을 차감 당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조 편성을 해서 한 명이라도 걸리면 연대책임으로 다 같이 급여를 차감당하기도 했다.
2014년 노동조합을 만든 뒤 지표에 따라 임금이 차감되는 구조에 맞서 계속 투쟁해왔다. "지표, 고객만족도, HSD(Home service Design, 인터넷이나 IPTV, 사물인터넷 등에 대한 영업을 의미)만을 이유로 징계할 수 없다"라는 문구를 단체협약으로 쟁취하기도 했다.
물론 회사가 고객의 민원이나 만족도를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 지표의 내용이 현실적인지, 부적절한 부분은 없는지 등을 노동조합과 함께 논의하고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설치 기사가 이유 없는, 혹은 자신의 잘못이 없는 사과를 강요하는 지표가 없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10년 전보다 더욱 엄격해지는 지표와 성과압박
현재 회사는 지표나 고객만족도를 명목으로 임금을 차감하거나 징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실적 저조자'에게 같은 교육을 반복시키거나 관리자가 훈계를 반복하는 식의 압박으로 여전히 노동자 통제해 나가고 있다.
지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개인 지표와 센터 전체 지표이다. 개인의 지표는 누구나 아는 고객 만족도와 민원(VOC)이다. 과거에는 A/S가 접수되면 12시간 안에 무조건 처리해야 하는 리드타임이라는 지표가 있었다. 현재는 오후 4시 전에 접수되는 A/S는 당일 처리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용만 바뀌었다. 이 지표는 내가 담당하는 지역에 오늘 할 일이 많아도 당일 접수되는 A/S가 생기면 안전은 모르겠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처리하지 못하는 기사에게는 '차라리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불이익이 돌아온다. 예를 들어 오후 1시와 3시에 일정이 있어서 이동시간, 작업시간 등을 생각해 두고 일하고 있는데 지금 와달라는 A/S가 접수되면 당연히 서두르게 되고, 과속과 신호위반을 하게 된다.
과거 신규 고객 설치 후 3일 이내에 A/S가 접수되면 안 되는 '개통 장애'라는 지표도 있었다. 그런데 이 3일이 점차 늘어나 현재 기준은 한 달이 됐다. 고객이 사용법 설명을 다시 듣고 싶어 해도, 설치가 아닌 기계의 문제라도 책임은 기사가 져야 하는 지표다. 지금은 A/S 이후 한 달 이내에 고객이 같은 A/S를 신청한 경우까지 포함해 '재장애율'이라는 지표로 불리고 있다.
회사가 지표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노동안전보다 생산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이유는 지긋지긋한 원하청 구조 때문이다. 원청인 LG유플러스는 하청 협력사에 평가지표를 보내 매년 이행 여부를 평가하고 수수료를 내린다. 자회사인 우리 ㈜유플러스홈서비스도 비슷하다(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에 소속된 고객센터 노동자들 중 절반은 자회사에, 절반은 다수의 협력사에 소속돼 있다). 협력사와 자회사를 경쟁시키며 1인당 생산성을 압박하는 데는 반반 자회사 구조만 한 것이 없다. 경쟁과 비교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협력사가 1인당 6건이라면 자회사도 6건, 협력사가 고객만족도 85점이라면 자회사도 85점 이상 등을 이야기하며, 경주마처럼 달려간다.
서로 경쟁하면서 초과하는 실적의 목표치는 매년 상향되며,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상황 속 노동자들은 직군과 상관없이 본사에서 정해진 실적 기준을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올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수행한 연구 결과 외근직, 스케줄러, HB 직군 모두 80% 이상이 업무상 성과압박을 느낀다고 응답했다(외근직 90.69%, 스케줄러 89.8%, HB 직군 82.35%).
자회사의 지표압박과 성과압박 그리고 고객만족도 압박
유플러스 인터넷 기사를 하려면 지켜야 할 필수 사항들이 있다. 노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노동안전과 유플러스의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s, 표준 작업 절차) 그리고 유플러스의 정신인 정도경영이다. 여기에 자회사의 지표압박, 성과압박, 고객만족도 압박이 더해진다.
하지만 지표의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의 안전과 SOP, 정도경영을 위반해야 한다. 고객을 직접 찾아가서 LG유플러스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자존심도 사실상 버려야만 한다. 회사에서 말하는 일일 목표 6건의 생산성 강요는, 지킬 거 다 지키면서 일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 결과 '개인의 잘못'만이 남는다. 고객 서비스에 소홀해지게 되고, 지표 맞추려고 잔머리 굴려 정도경영을 위반하면서 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재장애(A/S)라는 지표가 있다. 기사가 다녀간 집에서 일정 기일 안에 다시 A/S가 접수되는 정도를 계산한 것이다. 높게 나오면 안 되니, 고객 집에 가서 A/S 처리해주고 접수된 전산을 취소시켜 재장애가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만든다. 갈수록 더욱 엄격해지고 구체화 된 지표를 맞추려 '택하는 방법'인 셈이다. 위 연구 결과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노동자 10명 중 6명이 '실적 조작'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재장애 실적 때문에 고객에게 취소요청을 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 역시 외근직 80%가량, 내근직 50%가량에서 나타났다.
안전을 생각해서 위험한 작업을 안 하고 SOP를 지키며 정도경영을 준수하면 지표를 못 맞추니 정상적으로 일하는 기사는 관리자 눈 밖에 나게 된다. 그런 껄끄러운 관계를 회피하려다 보니 어쩌면 자연스레 그렇게 돼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실장이나 팀장에게 정당한 시간을 요구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 말 안 하는데 왜 너만 그러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안전과 지표, 만날 수 없는 값에 대한 인지부조화와 감정노동
출근 후 진행되는 조회 시간에 가장 강조되는 주제도, 언성이 높아지는 주제도 지표다. 시간과 공을 들여야 겨우 맞춰지는 지표가 있는 한편, 내 실수가 없어도, 맞춰보려 아무리 노력해도 못 맞추는 지표도 있다. 이런 상황에 실장이나 팀장은 업무 지침체 맞게, 지표도 맞춰가며 안전하게 빨리빨리 일하라고 한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축해 버린 작업시간 속에서 일이 밀리기 시작하면 다음 집부터는 늦어서 죄송하단 말을 줄줄이 해야 하고, 고객이 만족도 점수를 낮게 줄까 봐 안 해도 될 고객의 집안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기도 한다.
지금 관리자들은 대부분 기사 출신이고, 현재의 기사들과 당시에는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니, 부조화가 없을 수 없다. 그 상황 속 노동자들은 회사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아 궁지에 몰려있다고 느끼면서 일하고 있다.
위 연구에선 지난 1년 동안 업무 수행 중에 폭언이나 폭행 등 부당한 대우나 괴롭힘을 겪은 적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인격 무시나 모욕, 욕설 등 폭언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73.57%로 매우 높았다. 67.83%가 고객으로부터 폭언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고, 상사로부터 폭언을 당했다는 응답 역시 10%가 넘었다. 고객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14.43%로 적지 않았다.
성별로 봤을 때 남성의 경우 고객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5.71%로, 여성의 경우 성희롱/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11.76%로 두드러졌다. 노동자들이 폭언을 비롯한 부당한 대우를 전체적으로 많이 당하고 있었고, 고객이 두드러진 행위의 주체였으며 상사가 뒤를 잇는다는 내용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고객응대근로자 보호규정'을 사업주의 의무로 정하고 있다. 주요 내용 중 하나가 고객 응대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하고 노동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의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 역시 이러한 법적 근거에 따라 고객의 폭언, 폭행 등이 발생할 때 기사나 스케줄 매니저를 보호하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으나, 조사 결과를 보면 보호조치는 제대로 실행이 되고 있지 않았다. 지속되는 실적 압박 속,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에 혼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