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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수치는 건강검진 기준 정상범위다. 그러나 근육량은 간신히 평균이고 체지방은 평균을 넘기기 직전이니 아주 훌륭하다고는 못한다. 숙제 하나를 못 끝낸 기분이었다.

그러다 책모임 단톡방 멤버들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건강한 식습관을 통해 지방을 잘 태우는 몸으로 바꾸고 근육을 늘려주는 다이어트라고 했다.

첫 3일은 단백질 쉐이크 4회와 허용음식만 먹을 수 있다. 평소 고봉밥을 먹고 식후 디저트를 절대적으로 챙기는 나는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잠이 덜 깬 아침, 약한 불에 웍을 올리고 허용음식인 양배추, 양파, 두부를 대충 썰어넣은 뒤 뚜껑을 닫는다. 10분 후에 보면 야채는 자체 수분으로 데쳐졌고 두부는 포실포실 소보로가 된다.

소금 한꼬집과 올리브유, 식초, 후추를 뿌리면 그 단순하고 단정한 맛에 감탄이 나온다. 옛날 유럽의 후추 전쟁이 단번에 이해된다.

 양배추, 양파, 두부에 후추와 올리브유만 뿌린 건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침식사가 된다
양배추, 양파, 두부에 후추와 올리브유만 뿌린 건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침식사가 된다 ⓒ 최은영

단톡방에 사진이 연달아 올라온다. 서로의 사진에 칭찬이 넘실댄다. 이 맛에 한다. 풍요한 식단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렇게 남루한 식단을 혼자 했다면 금방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정정한다. 남루하지 않다. 단순한 재료의 본질적인 맛을 이토록 기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나 못하는 걸 해낸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진다.

두부는 쨍한 양념 조림을 끼얹어 먹는 게 제일인 줄 알았다. 하다못해 노릇하게 구워 파간장이라도 듬뿍 찍어야 했다. 이름이야 두부구이, 두부조림이지만 두부가 오롯이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부족했다.

그저 수분만 좀 날려서 후추와 올리브유를 뿌린 두부는 그 자체로 너무 훌륭한 주인공이었다. 양파와 양배추 역시 그랬다.

다이어트 3주차다. 허용음식이 훨씬 많다. 그랬어도 내 아침식사는 양배추 중심의 데친 푸성귀다. 여기에 삶은 달걀과 고구마를 추가한다. 전날 저녁에 남은 찌개에 식은 밥을 말아 먹고 후식으로 몽쉘통통과 아메리카노를 먹었던, 혹은 애들이 남기고 간 잔반 처리반이었던 아침이 언제였는지 이제 기억도 안난다.

좋은 식사를 챙겼다는 자체가 기분을 산뜻하게 한다. 그 하루를 좀 엉망으로 산다 해도 새로만든 아침 루틴이 최소한의 하방지지대가 된다. '나를 돌본다'는 추상적인 문장이 주방에서 구체적인 물성으로 다가온다.

다이어트 2주차에 내 생일이 있었다. 케이크를 한조각 먹었더니 입과 머리에서 폭죽이 터졌다. 케이크가 이렇게 화려한 맛이었구나. 매일 몽쉘통통을 먹다가 케이크를 먹었다면 결코 몰랐겠다. 일상을 담백하게 세팅하면 어쩌다 있는 작은 이벤트도 크게 다가올 거 같다. 요새말로 가성비, 가심비 다 챙기는 방법이다.

허용음식 내에서는 맘껏 먹어도 된다기에 진짜 그랬다. 아기 머리만한 양배추 한 통을 혼자 이틀 만에 다 먹기도 했다. 배고픈 날이 한번도 없었는데 2kg가 그냥 빠졌다. 매끼 챙기던 디저트가 2kg였나보다.

처음으로 디저트와 단절된 3주를 보냈다. 뭔가를 더하는 거보다 빼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단절의 매력이었다. 내 의지로 무언가를 단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내가 무너지는 순간에 나를 잡아줄 거란 믿음도 된다.

음식이 슴슴해지니 생활까지 슴슴해진다. 인공적으로 달고 짠 음식들은 실제로 순간적 쾌락을 확 올렸다가 얼마 안 지나 그전보다 뚝 떨어뜨린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올라가기 위해 비슷한 음식을 찾게 된다. 그 널뛰기가 멈췄으니 삶이 고요해졌다는 느낌은 과학적인 실제다.

디저트를 끊으며 느낀 허전함은 잠시뿐이었다. 널뛰기가 끝난 자리에 가볍고 투명한 기운이 자리 잡았다. 단맛 없는 삶이 주는 고요함은 내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다. 비워낸 만큼 채워지는 이 묘한 평화, 조금 더 익숙해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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