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아침 8시 반, 임실 오수면 인화초중고등학교에 첫 수업 시작 종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은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1박2일 졸업여행(현장체험학습) 출발 예정 시간이기도 했다.
졸업여행 첫날은 여수 백야도, 능도와 고흥 팔영산 능가사를 거쳐서 나로도 우주과학관을, 둘째 날은 순천만 국가정원, 낙안읍성을 거쳐 송광사를 방문한다.
졸업여행을 떠나는 인화중학교 3학년의 평균 나이는 71세 정도. 인화초중고등학교는 평생교육법에 근거한 평생교육시설 학력인정 학교이다. 1년에 3학기를 이수하여 초등학교는 4년(12학기), 중고등학교는 2년(6학기)에 졸업하여 정식으로 학력을 인정받는다.
100km 거리 달려서 졸업여행 출발지에 모인 학생들
K 학생(63세)은 졸업여행을 위해, 새벽에 남원에서 여수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넘게 100km 거리를 이동하였다. 여수에서 급한 일을 해결하고 다시 임실 오수의 학교로 110km 거리를 한 시간 반 넘게 걸려서 달려왔다.
C 학생(67세)은 진안 정천면에서 통학한다. 이날은 아들이 50km의 험한 산길을 운전하여 어머니의 졸업 여행을 위한 등굣길을 도왔다. C 학생이 이따금 힘들 때 아들이 승용차를 운전해 등하굣길 돕기를 해왔다. 어떤 날은 어머니의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을 학교 운동장 한편에서 기다리다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모자가 함께 하교하기도 했다.
김태수 교장선생님이 졸업여행을 출발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는 보람된 여행이 되고, 안전에 특별히 유의해라"고 당부했다. 두 선생님(담임 국어, 부담임 수학)이 인솔하는 졸업여행단 앞에는 여수 백야도까지 첫 여정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백야도에 도착했다. 백야도 해변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 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백야도에서 '섬섬 백리길'이 시작된다. 섬섬백리길의 팔영대교와 팔영산 방향을 바라보았다.
졸업여행단의 막내인 G 학생(62세)이 K 학생에게 '미루지 말라'며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내밀었다. 중학교 졸업여행 여정 중에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는 진풍경이 바닷가에서 벌어졌다.
백야도 등대에서 우리나라 여러 곳의 등대 모형을 살펴보았다. 백야도 앞 바다에서 숭어가 뛰었다. 늦가을인데 이곳에는 후박나무와 돈나무가 아열대 지역처럼 푸르다. 학생들이 서로 문제를 내고 답을 맞히며 웃음꽃을 피웠다. 숭어의 새끼는 동어, 꿩의 새끼는 꺼병이란다. 70세가 넘은 학생들이 즐거운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중학생이라더니... 식당 사장님도 놀랐다
백야도 해변의 한 맛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메뉴는 능성어(다금바리) 매운탕이었다. 식당 주인은 예약을 받을 때 중학교 학생들이 졸업여행을 온다는데, 점심 식사 메뉴로 매운탕을 주문해 참으로 의아했다고 한다. 평균 연령이 71세인 중학생들일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백야도를 출발하여 20km(25분) 거리의 낭도 선착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섬섬 백리길'의 구간인 화양조발대교, 둔병대교와 낭도대교를 거쳐 낭도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낭도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구명조끼를 입었다.
바다 위에서 낭도 둘레길을 바라보았다. 유람선 선장이 섬 둘레를 항해하다가, 풍경이 좋은 곳에 머물러서 한참씩 유쾌하게 설명했다. 낭도, 사도와 추도에는 중생대에 초식공룡이 살았다고 한다.
사도(모래섬)에서 유람선을 내려 한 시간 반 여정으로 공룡 발자국 화석지를 탐방하였다. 사도의 길옆에 털머위가 푸르렀고, 후박나무 잎이 싱싱했다. 사도와 연결되는 추도까지의 바다에는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비취색 바닷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여수댁인 G학생(66세)은 바닷가에서 청춘의 활력이 되살아나는 듯 물이 빠진 바위 위 고동과 해초를 찾아다녔다.
다시 사도 선착장에서 유람선에 올라 추도, 부도와 증도 등 차례로 '섬섬 투어'를 진행하였다. 이 지역의 섬들은 풍광이 참으로 이색적이었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응회암의 기암괴석과 절벽이 여행의 즐거움을 충분히 선물하였다. 부도에서 해식 동굴 안으로 유람선이 들어갔는데, 동굴 속은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낭도 선착장을 출발하여 고흥 능가사까지는 가까운 16km(20분) 거리였다. 분홍색 적금대교를 지나고 팔영대교를 건너서 팔영산 능가사에 도착하였다. 능가사 가람에 완도호랑가시의 붉은 열매가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팔영산 능가사 가람에서 나로도 우주과학관까지는 40km(45분) 거리였는데, 어느덧 산그늘에 살짝 어둠의 기운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나로도 우주과학관에 오후 5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는데, 수학여행단은 오후 5시 정각에, 이곳에 도착하였다. 우주로 향한 힘찬 발걸음인 인공위성 로켓 및 우주 발사체 시설과 설비 등을 살펴보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나로도 우주과학관을 떠나서 8km(10분) 거리의 나로도 선착장 옆 맛집 식당에서 자연산 모둠회로 저녁을 먹었다. 숙소는 식당과 가까운 나로도 연안여객선터미널 옆 호텔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객실은 호텔 5층의 옆방에 나란히 그러나 멀리 자리 잡았다.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은 친교의 시간을 가지고, 하루의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졸업여행의 둘째 날, 아침 6시에 기상하였다. 첫날 저녁을 먹었던 맛집 식당의 사장님이 아침 7시에 맞추어 혼자 식사 준비를 해 놓았다. 식당의 직원들은 9시에 출근한단다. 장어탕을 주메뉴로 하여 아침을 먹었다.
나로도를 떠나서 75km(1시간 10분) 거리의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출발하였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식물원을 돌아보고, 관람차 매표소에서 관광열차 투어를 선택하여 드넓은 국가정원을 25분 정도 둘러보았다.
순천 낙안읍성은 조계산 송광사를 향하는 도중에 있다. 20km(25분)의 거리는 이제 가까운 이동 여정이었다. 낙안읍성에서 돌담 위에 볏짚을 엮어 이엉(지붕)을 얹은 추억의 풍경을 보았다. 매듭 같은 초가지붕의 용마름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돌로 쌓은 성벽과 전통 기와집을 둘러보았다. 낙안읍성의 식당 거리에서 짱뚱어탕과 꼬막 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제 졸업여행의 마지막 목표 여행지가 다가왔다. 24km(30분) 거리의 조계산 송광사로 출발하였다. 승보종찰 송광사의 우람한 가람을 둘러보고 학생들은 수학 선생님의 제안으로 '무소유 길'을 찾아 불일암(佛日庵)으로 올라갔다. 왕복 1.2km의 길지 않은 산길에서 법정 스님의 얽매이지 않고 사는 인생철학을 학생들은 마음에 길게 새겼다.
송광사 탐방을 마치고 75km(1시간 10분) 거리의 학교로 돌아오는 도중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행복한 졸업여행이었다. 1박 2일 총 이동 거리 약 400km의 졸업여행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하며 학교에 도착했다. 오후 4시였다.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학교 운동장에서 인화초중고등학교 이은숙 행정실장이 수학여행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C학생의 아들도 졸업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의 진안까지 안전한 하굣길을 위해 운동장 한편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염원하던 배움을 향한 꽃봉오리가 이제 머릿결에 서리가 내린 시절에 활짝 꽃 피우고 있었다. 인화초중고등학교 만학도들은 모두가 '세상에 이런 일이'의 주인공으로 충분했다.
몸의 기력도 젊은 시절 같지 않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학교 다니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다. 인생에 한 번인 중학교 3학년 졸업여행은 아마 꿈속에서도 1박 2일의 잊지 못할 여정으로 다시 그려볼 듯하다.
중학교 3학년 졸업여행을 마친 학생들이 모두 귀가한 인화초중고등학교의 교정은 가을 풍경 속에 평온하였다. 이 교정 숲속 건물에 자리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은 내년 3월 새봄이면 만학도 고등학생 신입생들을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