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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서초사옥.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서초사옥. ⓒ 이정민

"아니, 삼성에 있는 사람들이 일을 덜 해서 지금 이 지경이 됐나요?" -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5만 원 대 늪에 빠진 삼성전자 주가가 계속 곤두박질치던 지난 11일, 국회에는 두 개의 새로운 법안이 올라와있었다. 삼성전자가 겪고 있는 반도체 경쟁력 위기를 타개하겠다며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낸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반도체 특별법, 11일 발의)'과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인 초선의원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낸 근로기준법 개정안(4일 발의)이었다.

여당에서 연이어 발의된 이 두 법안의 공통점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노동자의 경우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게 하자는 내용이다. 일명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 사무직 면제)'. 이는 본래 연봉 13만 2964달러(약 1억 8540만 원) 이상의 근로자에게는 주 40시간을 초과해 일할 때 부여되는 1.5배의 '오버타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미국의 제도다. 이를 한국에 도입해, 위기에 빠진 반도체 산업만이라도 현행 '주 최대 52시간' 근로 상한에서 예외를 두자는 것이다.

"2차 산업시대도 아니고… 근로시간 늘린다고 삼성전자 살아나나"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모니터에 삼성전자 주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38% 내린 4만 99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20년 6월 15일 종가 4만 9900원을 기록한 후 4년 5개월 만에 최저가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모니터에 삼성전자 주가가 표시돼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38% 내린 4만 99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지난 2020년 6월 15일 종가 4만 9900원을 기록한 후 4년 5개월 만에 최저가다.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같은 여당의 '삼성 구하기'용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논의가 진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본질도 짚지 못했다고 평가절하했다. 이미 윤석열 정부 초기 여권은 '주 69시간' 개편 논란 문제로 크게 홍역을 치렀는데, 이후 제대로 된 숙의 노력도 하지 않고선 특정 산업과 소득 수준에 따라 근로시간을 늘리는 '우회안'을 슬쩍 내밀었다는 것이다. 또 삼성이 뒤쳐지고 있는 AI(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단순한 발상은 2차 산업 시절에나 어울릴 법한 시대착오적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일종의 차별 문제가 있다. 고소득 근로자라는 이유로, 반도체 산업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시간을 남들보다 늘리자고 하면 과연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미국이나 일본 정도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제도"라고 했다. 정 교수는 또 "주 69시간 개편 논란 때도 봤지만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절대적인 임금이 보장된 이후부터는 임금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생활 균형)'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라며 "실질적인 논의를 염두에 뒀다기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라고 했다.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미국은 우리와 달리 연장근로의 한도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관리직 근로자의 연장근로 할증임금을 과도하게 줄 수 없다는 차원이고, 일본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라고 할 수 있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는 노사위원회 결의를 거쳐야만 가능하도록 한 까다로운 절차가 있어 노사협의회가 형해화돼있는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권 교수는 또 "일본만 하더라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하기까지 10년 이상의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면서 "그런 과정도 없이 어떻게 갑자기 업종별 차등을 두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권 교수는 특히 "현재 삼성 반도체 문제를 풀려면 정상적으로 풀어야지, 단순히 근로시간 늘린다고 문제가 풀리겠나"라고도 꼬집었다. 삼성이 기존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성공에만 안주한 채 AI와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산업에 대비하지 못한 '경영 실패'를 진단하고 처방해야 하는데, 엉뚱한 대응만 나온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근로시간으로 성과가 늘어난다는 발상 자체가 2차 산업 초창기, 1970년대 박정희식 산업화 때의 인식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라며 "정작 삼성 사람들에게조차 '근로시간 늘리면 삼성이 살아나겠냐'고 물어봐도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 "전직 삼성 사장이 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법안, 씁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월 22일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당시 비상대책위원장)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아이폰 이용자인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갤럭시 휴대전화를 꺼내 셀카를 찍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월 22일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당시 비상대책위원장)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아이폰 이용자인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갤럭시 휴대전화를 꺼내 셀카를 찍었다. ⓒ 남소연

"지금도 삼성 직원들은 과로에 시달려요.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주말 특근이 강제로 주어져요. 최근엔 인력 유출로 사람이 부족해 오히려 근무가 더 빡빡해졌어요." - 삼성전자 노동자

실제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여권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논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야근과 특근이 일상인 생활을 해왔는데, 경영 전략 실패의 책임을 마치 노동자의 근로 부족으로 돌리는 느낌마저 든다는 것이다.

한 삼성전자 노동자는 "기술직의 경우 4조 3교대, 혹은 변형 교대 방식으로 돌아가는데 주말에도 근무가 잦다"라며 "야간 근무 시 2인 1조 작업이 필수지만, 근래 타사로 빠져나가는 인원이 많아 그마저도 잘 안 되고 있다.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해도 변화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삼성전자 직원은 "회사 사장이었던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법안을 냈다는 걸 듣고 크게 실망했다"라며 "이미 오랫동안 고대역폭메모리(HBM) 부진 등 회사 경영에 문제가 있다는 건 내부에서 다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미래 비전 설정을 잘못한 책임을 직원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앞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역시 지난 5일 "경영의 실패를 노동 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원인을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에서 찾기보다는 경영진의 전략 부재와 무능을 성찰해야 할 것"이라며 고 의원 법안을 규탄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AI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SK하이닉스의 노동조합이 속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역시 12일 성명을 내고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부진은 경영 실패에 기인한 것"이라며 "SK하이닉스는 현 근로시간제도 하에서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발의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법안이 삼성전자 위기의 타개책이 될 수 있다고 보나'라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고 의원은 여당 AI·반도체 특위 위원장이기도 하다.

여당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법안이 당론에 포함되고 사흘 뒤인 지난 14일, 삼성전자 주가는 4년 5개월 만에 4만 원대로 추락했다. '4만 전자' 충격 이후 삼성전자가 10조 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가는 간신히 5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전자#반도체#삼성#근로시간#화이트칼라이그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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