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 남해읍 오동마을은 해마다 가을이면 구절초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구절초 천국'이 따로 없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200m 밖에서부터 싱그러운 구절초 향기가 코끝을 자극해 발걸음을 이끌게 만든다. 오동마을의 도로, 농로, 언덕, 논밭 할 것 없이 매년 9월부터 11월까지 가을이면 구절초가 오동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누구의 솜씨일까?
오동마을 주민들은 한 사람을 가리킨다.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하순일(78)씨. 지난 12일 하순일씨는 구절초와 연을 맺게 된 사연을 이렇게 소개한다.
3년 전인 2021년 가을, "구절초 향기가 너무 좋고 하얀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제게 환영하는 인사로 느껴졌어요"라며 "예쁜 오동마을에 구절초가 펼쳐져 있다면 얼마나 더 예쁠까요? 길가에 있던 구절초에 반한 거죠."
"주민 11명이 시작, 저 혼자 남았어요"
하순일씨는 자신의 논밭에 있던 구절초를 20주를 캐서 화분에 옮겨 심고 이른바 뿌리 삽목을 시도했다. 화분은 개인 하우스로 옮겨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구절초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우스에서 자라는 기간은 3주 정도 걸린다. 시간이며 비용이며 모두 하순일씨 모두 본인이 부담했다. 누가 시킨 게 아니었다.
그렇게 자라난 구절초는 새롭게 심을 곳으로 들고가 구덩이를 파고 다시 흙을 덮어 물을 주는, 그야말로 몇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절초용 관수시설이 설치돼 있지도 않고 여간 손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 아니었다고.
"꽃을 가꾸고 키우는 일이 재미가 있었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넓고 많이 키우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구절초를 처음 심을 때는 저 혼자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초반에는 저를 포함해 주민 11명이 참여했는데 저 혼자 남은 거죠."
혼자 하다 보니 비를 맞는 경우는 허다하고 구절초를 옮기기 위한 장소 물색부터 사용하지 않는 논밭까지 허락을 받는 등 여간 품이 들어간 게 아니었다.
"5000주 심으면... 마을 어디를 가도 사진 명소가 안 되겠어요?"
하순일씨는 환경미화원으로 20년 동안 일했고, 조경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보게 되고 꽃과 나무 등을 가꾸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됐다. 또 노인회장으로서 열정을 갖고 봉사하고 싶은 일이 있기를 바라왔다.
처음 구절초를 키울 당시 주민들은 반신반의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저 어른이 왜 저렇게 구절초를 심는가"라는 다소 삐딱한 시선도 있었다고. 그렇지만 구절초의 수가 늘어나고 꽃을 피우기 시작하자 마을주민들도 "무척 예쁘다"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오동마을 구절초는 입소문을 타고 다른 마을과 읍·면 주민들도 마을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꽃놀이를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해 11월 기준 하순일씨가 심은 구절초의 수는 2300주에 이른다. 모두 야생 구절초를 키워낸 결과물이다. 꽃씨를 산 게 아니라 앞서 처음 방법처럼 꾸준히 했을 뿐이라고.
오동마을은 저수지를 끼고 있고,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나 남해읍 봉황산나래숲과도 가까워 많은 주민이 산책하는 경로로 각광받고 있다. 가을에는 구절초까지 더해지니 방문객들에게 더 사랑받고 있다.
하순일씨의 구절초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구절초를 5000주까지 심으면 오동마을은 그야말로 구절초로 가득 차 공기도 더 맑고 향기도 그윽하며 마을 어디를 가도 사진 명소가 안 되겠어요?"라며 "나중에는 구절초 축제를 할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면서 미소를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