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751일째 되는 지난 11월 11일 오후 7시, 연세대학교 자치도서관(연희관 B015)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연세대학교 간담회가 열렸다.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와 연세대학교 제20대 사회학과 학생회 바람,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이 공동주최로 참여하고,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가 패널로 참석했다.
이번 간담회는 2년 동안 이태원 참사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그동안의 기억을 나누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에 대해 대학생으로서 사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목표만을 좇으며 바삐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속에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필자는 기획단원으로서 간담회의 기획, 준비 과정을 찬찬히 회고하고 이후의 이야기를 조명하여 기록했다.
연세대학교 간담회 기획단은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학생 소셜투어 4기: 기억을 이어가는 여행'에서 결성되었다. 함께 모여 사회적 참사에 관해 공부하고, 유가족을 만나고, 감정을 나누며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을 나누는 데에 뜻을 모았다. 기획단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고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자 연세대학교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정치적'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것들
"학생들한테 저는 되게 서운했어요. 서명을 받도록 이렇게 하고 있는데, 어떤 대학생이 나는 아르바이트하고 먹고살기도 힘든데 걔들은 놀러 가서 죽었다고 안 해주더라고요."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학생에게는 참사의 슬픔 외에도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각자의 살길을 찾기 바쁘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월호 세대인 현 대학생들은, 참사 뒤의 기억 잊기를 강요 당했다. 막상 책임져야 할 이들마저도 '이태원 참사'라는 말이 금기어라도 되는 양 참사를 직면하지 않았다. 그간 참사를 대면하고 해결하기는커녕 숨기고 회피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들 또한 참사에 대해 온전히 슬퍼하지도, 그날의 이야기를 어디서도 나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간담회 기획단은 단순히 추모의 의미를 넘어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 온전한 기억을 공유하고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우리가 참사에 대해 충분히 시간을 갖고 슬퍼하였냐는 질문에 떳떳하게 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기획단이 택한 것은 소통이다.
사회학과 학생회가 공동주최 단위로 확정되고,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해당 홍보 게시글이 화제가 되는 일이 있었다. 익명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이들은 "축제 가서 (사고를) 당했는데 진상 규명이 뭐 있냐", "정치적인 일을 학교에서 벌이지 말라", "신청하고서 노쇼하겠다" 등의 발언을 댓글로 달았다. 심지어는 해당 행사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해당 학과의 일부 학생들이 규탄문을 작성하는 일이 있었고, 공동주최에 응한 사회학과 학생회가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간담회의 준비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싶을 정도로, 대학이 참사에 대하여 애도하는 입장을 표방하기조차 힘든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과정이었다.
간담회 초입에 나눈 사회학과 회장단 측 인사말 속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치적이라는 말 뒤에 너무나 많은 의제들을 침묵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문장이 우리 사회가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함께 목소리를 내어 준 두 공동주최 단위 덕분에 연대의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
이태원 참사의 사후 대처는 '세월호의 교훈'이었다
"그날 168명의 희생자들을 수도권에 있는 40여 개 병원에 분리하고, 장례식장에 각각 흩트러 놓고선 못 만나게 하고 연락처도 못 주게 하고 왜 그랬을까요? 세월호의 교훈이죠. 국가에서는 이 사람들을 만나면은 (목소리를) 내겠구나 (해서), 목소리를 못 내게끔 하려고 오지도 못하게 하고 연락처도 안 주고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 아무런 소리 못 하게끔 하려고......"
유가족 패널은 당일에 어떤 연락을 받았고 딸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어땠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참사 직후 유가족들이 자식을 찾는 과정에서 "한남동 사무소 와가지고 실종자 신고를 했는데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이후 국가에서 애도 기간을 선포한 뒤 "이름 없는 분향소를 차리고 국화꽃을 갖다 놓고 분향을 했다"라며 국가 차원에서의 대처가 미흡했음을 지적했다.
이후에도 참사 후 돌아오지 못한 159명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날 수차례의 119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국가는 철저히 외면하고 유가족들을 떼어놓았다. 과연 위패도 사진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정부는 '희생자'를 '사고자'라 표현하고 근조 리본도 달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로 유가족을 모욕하고,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유가족들을 침묵시켰다.
간담회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었던 건 희생자 개인의 이야기였다. 참가자들은 희생자가 159명 중 1명이라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였음을 차근히 들을 수 있었다. 고 이상은씨는 회계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다채로운 꿈을 가진 청년이자 딸이었다. 이날 함께한 유가족 이성환씨는 "아버지로서 3년간 매일 아침밥을 해주었다"며, "일단 못 먹는 게 없었다"는 딸과의 추억을 꺼냈다. 이태원 참사는 유가족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사건이다. 바꿔 말하자면 누구나 유가족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참사를 잊을 수 있을까.
'선택의 사회'에서 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안전하게 살려면 놀러 가지 말아야겠죠. 배를 타지 말아야겠죠. 지하철도 타지 말아야겠죠. 비 오는 날 차 끌고 나가지 말아야겠죠. 위험한 물질이 있는 회사는 나가지 말아야겠죠. 그냥 방구석에 있어야...... 그런 건 아니죠."
대학생은 너무나 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밥 하나 먹는 것마저도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를 당연하게 고민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 2023년 7월 15일 오송 참사, 2024년 6월 24일 화성 아리셀 참사까지. 왜 우리 사회에서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가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일까.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중첩되었겠지만, 수많은 참사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단연코 존재한다. 일상을 살아내고, 살아내야만 할 사람들에게 국가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부재했다는 것. 참사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앞으로 또 다른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한 재발방지대책이 수립되려면, 국가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구현되고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국가를 감시할 수 있는 시민 사회는 공통의 연대 감각을 공유하며 단단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기억하고 지켜나가는 일은 다름 아닌 현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어야 한다. '기계적인 중립만이 정답이고 또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조류 속에서, 참사를 호명하거나 슬픔을 공유하지 못하는 대학생 사회가 어떻게 안전 사회를 꿈꿀 수 있겠는가.
이날 참석한 이성환씨에게 가장 힘이 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자,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은 손 잡아주는 거라고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가장 추운 곳에서 분향소를 지키고 있으면 누군가 손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그런 온기이자 연대이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연대할 때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참사를 기억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서울광장을 떠나 자리를 옮긴 별들의 집은 간담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1월 10일 종로로 이전하였고, 지난 5월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되어 특조위를 꾸리고 있다. 현시점에서 안전 사회를 만드는 청년의 움직임이 절실하다.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무고한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와 같은 과정이 부재한다면 끔찍한 사회적 참사는 다시금 반복될 것이며, 그 대상자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 특조위가 출범하고 그날의 진상을 밝히기까지의 길을 함께하여 주기를 바란다. 대학생의 진심 어린 관심과 지성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환히 밝힐 수 있기를, 그로 인해 조금씩 우리 사회가 참사를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