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자 안개가 자욱한 농성장의 아침이 늘어나고 있다. 봄에 비해 월등히 잦은 안개가 일수를 몸으로 체험한다. 구름 위에 세워진 듯한 아파트와 자연물을 이용해 세운 솟대와 만장이 나름 잘 어우러져 아침마다 기분이 좋다.
새벽안개를 뚫고 활동을 시작한 고라니를 만났다. 낮에 휴식을 취할 곳을 찾아 이동하는 중인 고라니였다. 사람을 천적으로 알기 때문에 빠르게 피하는 고라니가 안개에 취한 탓인지 나를 한참동안 바라본 후에야 자리를 피했다.
날 보고 도망친 고라니
세종보 천막농성장 근처를 찾아온 고라니는 반대로 빼꼼하게 내놓은 나를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는데, 개체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다양한 유전적 특징들이 묻어난다. 고라니 MBTI도 한번 해보면 좋으련만 소통이 되지 않으니 자연에 맞길 수밖에 없겠다.
농성장에는 이제 여름철 번식하는 새들의 소리가 아니라 월동하는 기러기 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다.
오리나 가마우지는 비행할 때 소리를 내지 않지만, 기러기는 전혀 다르다. 비행하면서 끈임 없이 소리를 내면서 이동한다. 소리를 내며 소통하고 대열을 맞춰 이동하는 특성을 가진 탓이다.
농성장에는 약 500마리의 기러기 떼가 작은 자갈섬 주변을 찾는다. 대부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큰기러기이고 일부 쇠기러기가 함께 월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성장을 찾는 기러기는 아침 자갈섬을 찾아왔다가 해질녘에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는 페턴을 일주일째 보이고 있다. 자갈섬을 찾는 시간은 모니터링을 해보니 9시~10시로 매일 조금씩 늦어지는 페턴을 보이고 있다.
자갈밭을 찾은 기러기 무리는 단체로 목욕을 즐긴다. 새들의 경우 매일 목욕하면서 깃털을 관리한다.
세종보 상류에 작은 자갈섬은 기러기들의 대중목욕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큰기러기 무리의 목욕탕이 된 것은 자갈섬 주변에 얕은 물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깊은 물에서는 목욕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흰꼬리수리가 자갈섬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기러기들을 쫓아냈다. 기러기들까지 사냥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대형 맹금류인 흰꼬리수는 존재 만으로도 기러기들에게는 두려운 존재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흰꼬리수리는 농성장을 찾아온지 3주정도 되었다. 지금까지는 성조 1개체와 아성조 1개체를 만났다. 합강리 주변으로 약 7~8개체가 월동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흰꼬리수리를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운이 좋다면 작은 오리나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도 만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세종보가 담수되면 자갈섬에서 사는 기러기떼도 흰꼬리수리에 쫓겨나는 기러기들도 볼 수 없게 된다. 생명을 지키는 길이 담수를 중단하는 것이다.
흰꼬리수리, 기러기떼의 운명은
농성장에 할미새들이 늘어난 듯 보인다. 백할미새, 알락할미새, 노랑할미새, 검은등할미새 4종이 옹기종기 모여 모래톱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할미새들의 경우 소리가 특이하고 비행할 때 물결 무늬로 비행하면서 누구나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종이기도 하다. 꼬리를 계속 움직이면서 이동하는 행동페턴 때문에 꼬리를 움직이는 새라는 뜻으로 할미새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농성장 주변에 작은 소리로 '쫑쫑' 하는 새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갈대밭이자 버드나무 등에 앉아서 떼로 이동하는 쑥새도 이제 농성장의 겨울 동지로 합류 했다.
겨울에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면 좀 더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운 새 동지들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 찾아오는 동지들과 함께 농성장의 겨울을 보낼 예정이다. 이 또한 농성장의 새로운 생태일기이며 기록이 될 것이다. 작지만 이런 기록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지키고 세종보 담수를 막아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