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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구독료 할인을 둘러싸고 '덤핑경쟁' 논란이 일고 가운데 신문판매시장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위기에 처한 신문시장의 정상화를 모색하기 위해 '언론자유 1위'의 나라 핀란드의 사례를 소개한다.

핀란드는 신문판매 시스템의 선진화를 이룬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한국신문은 그동안 '본사-지국-독자' 단계의 일제식 배달, 판매시스템으로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마이너' 신문사 중심으로 유럽식 공동배달제 도입을 시도했으나 성과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KBS <미디어포커스>는 연초 '언론자유 1위 핀란드' 제하 프로그램에서 한국과 핀란드의 신문시장을 구체적으로 비교했다. 핀란드의 경우 투명한 경영 아래 이뤄지는 공동배달제 시스템 덕분에 발행부수 3000부의 신문사도 자생이 가능하다고 <미디어포커스>는 전했다. 당시 현지취재를 맡았던 김태형 기자의 취재기를 싣는다...편집자 주)


▲ <헬싱키 사노마> 인쇄공장. 새로 들여놓은 첨단윤전기를 자랑하면서도 영업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 신문의 인쇄시설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 KBS 제공
추잡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핀란드 신문시장

핀란드는 '언론자유 1위' '청렴도 1위' '촌지받지 않는 기자 1위'로 꼽히는 나라답게 신문의 정통성도 뛰어나 발행부수가 2만부에 지나지 않는 신문이 100년 역사를 뽐낸다.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사설, 칼럼을 쓰는 신문도 많다.

하지만 그 때문에 편파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신문 색깔을 미리 알려줬기 때문이다. 또 지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이 있다. 지역에서 지역신문의 위상은 중앙신문보다 나은 경우도 많다. 시스템도 투명하다. 작은 신문사이건 큰 신문사이건 발행부수를 정확히 공개한다.

전체 신문의 절반 이상을 우체국 직원들이 돌리고, 그래서 신문 유통과정에서 벌어지는 추잡한 사건이나 사고도 없다. 이 나라 공영방송은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한 신뢰도 조사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탄탄하다.

하루 평균 발행부수 44만부로 핀란드에서 가장 큰 신문사인 <헬싱키 사노마>(Helsingin Sanomat) 편집국에 들어섰을 때 첫 번째로 놀란 것은 아무리 오전중이라고 하지만 너무도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로 사전 약속을 한 내셔널 뉴스팀 부장과 부원들 말고는 우리 취재팀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사무실을 찍든지, 말든지 하는 표정이었다. "이건 완전히 무사태평이군!" 혼자 웃었다.

핀란드는 인구가 500만명을 조금 넘는 나라다. 면적은 한반도의 1.5배. 작지만 작지 않은 나라로 볼 수 있다. 핀란드와 한국은 언론환경 차이 이상으로 나라 전반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잣대로만 핀란드를 바라보고 '이거 참 이상하다'라고 얘기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핀란드를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면만 부각시키는 실수를 저질러서도 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여러 언론이 정보통신 강국 핀란드를 소개하면서도 핀란드 정보통신을 뒷받침하고 있는 저력 가운데 하나인 사실상의 평준화 교육 시스템은 무시하는 경향이 종종 발견된다.

▲ 전면광고가 실린 <헬싱키 사노마> 1면. 배짱일까, 만용일까. 그래도 그들은 솔직히 떳떳하고 당당했다.
ⓒ KBS 제공

최대신문 <헬싱키 사노마> 1면은 전면광고

그렇다. 조용한 편집국을 접하는 순간 "일들 안 하는군" 생각을 했지만, 그런 사고는 옳지 못한 것이다. 핀란드와 한국은 다르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갖은 경쟁 속에 사는 한국과 비교적 넓은 땅에 자원도 많아 넉넉함이 우러나오는 핀란드를 같은 잣대로 재려 하면 엉터리 답안이 나올 수 있다.

우리 눈에는 편집국이 조용해서 신기하지만, 그들 눈에는 그게 당연한 풍경인 것이다. 핀란드 언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핀란드 언론과 한국 언론이 다르기 이전에 핀란드란 나라와 한국이란 나라는 나라 자체가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건 좋다. 시끄럽고 싸움터 같은 것보다는 분명 나은 가치이다. <헬싱키 사노마>에서 진짜 충격을 받은 것은 신문 1면을 전면광고로 도배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1면 기사를 참 독특하게 편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기사가 아니라 광고 같아서 물어보니까 광고라고 한다. 특별한 날인가 보다 했다. 1면 전체를 광고로 밀다니.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날짜의 신문도 다 그렇다. 다시 물어보니까 "특별한 날 아니면 1면 전체에 전면광고를 싣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물어볼 것도 많을 텐데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느냐는 듯, 1면 전면광고가 뭐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래도 또 물어봤다. 이건 너무 상업적인 편집 아니냐고.

"핀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의 일반적인 모습과 달리 거의 대부분의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 읽는다. 신문을 가판대에서 팔려고 하면 우리 신문이 어떤 기사를 싣고 있는지 알려야 하기 때문에 1면에 기사를 실어야 하지만, 다들 집에서 신문을 보기 때문에 굳이 1면에 기사를 싣지 않아도 된다. 한 쪽만 넘기면 기사가 나오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

물론 이같은 편집이 저널리즘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신문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 비굴해지고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 1면 전면광고는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신문사 입장에서는 수지 맞는 장사다. 1면 전면광고의 의의는 거기에 있다. 또 우리 신문 수입의 3분의 2는 광고, 3분의 1은 구독료인데 이 정도 비율이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곳 '얀내 비루꾸낸' 편집국장의 태연한 대답이다.

가정 정기구독자는 70% 할인 혜택

핀란드에서 보름 정도 있으면서 알게 됐지만 <헬싱키 사노마>뿐 아니라 적지 않은 신문들이 1면을 전면광고로 채우고 있었다. 신문들이 '돈벌이'에 충실한 것이다. 실제로 편집국장 말대로 신문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조직은 아니지만, 적자가 쌓이면 망한다는 것은 핀란드에서는 사실이고, 현실이었다.

▲ 우체국 직원 '삐아 루트씨'가 배달하는 신문 목록.
ⓒ KBS 제공
독자가 외면하면 정말로 망하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만 하더라도 <헬싱키 사노마>와 견줄만한 또 다른 메이저 신문이 있었는데 갈수록 더 많은 독자들이 <헬싱키 사노마>를 선택하면서 <헬싱키 사노마>의 경쟁지는 끝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아무튼 <헬싱키 사노마>는 나홀로 장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독점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자국 언론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핀란드 사람들도 <헬싱키 사노마>의 독점 현상만큼은 아쉬워하고 있었지만 <헬싱키 사노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판매부수를 늘리려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먼저 이른바 '공짜신문'도 돌린다. 한달 정도 홍보용으로 구독료를 받지 않고 신문을 돌린다. 또는 석달 정도 구독료의 절반 정도를 깎아준다. 자사 신문이 어떠한 신문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같은 서비스를 펼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공짜신문을 넣지는 않는다. 일단 찍어내고 보자는 주의도 없다.

팔리지도 않을 신문 찍어내는 것은 제작비만 늘어나게 돼 신문사에 손해만 안겨준다는 의식이 배어 있다(물론 핀란드에도 세계적 체인인 <메트로>를 비롯해 무료신문이 성업중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무료신문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달짜리 공짜신문은 있어도 경품은 없다. <헬싱키 사노마> 편집국장은 어떤 선물도 없다고 강조했다.

신문 가격도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다. <헬싱키 사노마> 평일판 신문은 2유로, 우리 돈 약 3000원이다. 참고로 핀란드는 물가가 비싸다. 평일판은 2유로, 읽을거리가 많아 두툼한 주말판 신문은 3유로로 4500원 정도를 받는 등 신문 값도 평일이냐, 주말이냐에 따라 차이를 둔다.

또 대학생에게는 구독료의 25%를 할인해 준다. 또 일주일 내내 신문을 받아볼 수도 있고, 평일판만 구독할 수도 있고, 주말판만 구독할 수도 있다. 그리고 1년 구독자는 200유로만 내면 된다. 매일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서 읽는 사람보다 70% 이상 싼 가격으로 신문을 볼 수 있는 셈이다. 핀란드에 신문 구독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주는 경영에 주력, 편집은 '노터치'

이처럼 사업가 정신이 물씬 풍기는 신문사는 누가 소유하고 있을까. 미디어그룹(media group)이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언론재벌'이라 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한 사람이 한 언론사의 전체 지분 가운데 30% 이상 갖기 힘들다고 하지만, 어쨌든 큰 신문사의 경우 이른바 오너가 있다. 실제로도 오너는 엄청난 갑부라고 한다. 신문 열심히 찍어봐야 오너 배만 불린다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너인 사주가 신문 편집에 관여하는가? 모두들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너는 신문사 경영에만 전념한다고 했다. 신문편집에 대한 전권은 편집국장이 쥐고 있다.

<헬싱키 사노마> 편집국장은 자신은 이사회로부터 전권을 받았기 때문에(사주가 아니라 이사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편집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국장 위로도 간부들이 여럿 있지만 그들 역시 경영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다.

핀란드 신문이라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수도 헬싱키에서는 시민의 절반 이상이 보는 <헬싱키 사노마> 신문 하나가 시장을 평정했다. '왕독점'인 셈이다. <헬싱키 사노마>는 뚜렷한 경쟁자도 없이 신문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1면에 전면광고를 싣는 배짱도 부릴 줄 안다. 그래도 팔리고 또 팔리는데 무슨 고민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많이 팔고, 많이 벌면서도 신규 독자에 대한 할인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또 사주가 있는 <헬싱키 사노마>는 일간지 외에 석간신문도 따로 발행하는 등 미디어 재벌이다.

핀란드에는 이른바 '까발리기'로 유명한 신문도 있다. 연예인이건, 정치인이건 이 신문에 걸리면 망신 톡톡히 당한다. 일단 '쓰고 보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데 폭로 수준이 아무리 심해도 특별히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또 다른 유력 신문의 사실상 소유주는 이웃나라 언론재벌이다. 열심히 신문 팔아서 이웃나라 자본가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꼴이다.

▲ <라삔깐사> 신문의 위쪽에 배달될 주소가 인쇄돼 있다. 또 발행부수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모습(오른쪽).
ⓒ KBS 제공
발행부수 정확하게 기록하고, 배달주소까지 인쇄

그들 역시 부수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었고 이 점을 인정했다. 다만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한다는 게 한국과 달랐다. 앞서 말했듯 핀란드 신문들은 발행부수를 정확하게 공개한다.

취재팀이 방문한 핀란드 북부의 유력 지역신문인 <라삔깐사>의 경우 하루 10만부 정도 찍는데 단단위 자리까지 발행부수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취재팀이 찾아갔을 때는 2판으로 3만6562부를 찍어내고, 그 가운데 200부를 여벌로 찍어냈다는 것까지 정확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여벌 200부는 잘못 인쇄된 신문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 말 그대로 '여벌'로 찍어낸 신문이었다.

핀란드 신문의 당당함은 다름 아닌 투명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즉 발행부수 정확히 공개하고, 낼 세금 다 내고, 또 정해진 규칙 안에서 영업활동 하는 것이다. 투명하면 더 당당할 수 있고, 더 떳떳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우리 언론들은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80%는 조간, 대부분 우체국 직원들이 배달"
[공동배달제로 배달경비 절약하는 핀란드 신문들]

핀란드 신문의 80%는 아침에 배달되는데 80%가 조간신문이라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신문배달 시스템은 크게 다르다. 조간신문의 70%를 우체국 직원들이 배달한다. 우체국 직원들이 이런 신문, 저런 신문, 한 번에 돌리는 것이기에 일종의 '공동배달제'인 셈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신문사는 자체적으로 신문을 배달하기도 하고 체신공사에 배달을 맡기기도 하는데, 체신공사에 배달을 맡길 경우 배달료를 지급한다.

핀란드 최대 신문사인 <헬싱키 사노마>도 본래 자체 배달회사를 갖고 있었지만 지난 여름 이 배달회사를 체신공사에 매각하고, 신문배달을 체신공사에 맡기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편이 돈이 적게 드는 등 경영상 유리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체국 직원 한 명이 A신문, B신문, C신문 등을 한 번에 배달하기에 배달 효율이 높아진다는 게 핀란드 체신공사측 설명이었는데, 공적인 기능을 맡고 있는 신문을 돌린다고 해서 따로 정부보조금을 받는 것은 없다고 한다. 핀란드 체신공사는 자기들 입장에서 신문배달도 하나의 사업이라고 말을 했다.

기본적으로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체국 직원들의 신문배달은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점에서 신문 돌리는 문제를 접근했기에 가장 효율이 높고 생산성이 높은 배달방식으로 귀결된 것이라는데 이 방식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신문사도 핀란드 사례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김태형 기자는 94년 KBS에 입사해 경제부와 국제부, 청주총국과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를 거쳐 지난해 7월 신설된 KBS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에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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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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