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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위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조사를 의뢰해 2일 발간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 보고서.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인터넷에 북한 관련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7조 찬양·고무)로 구속된 지아무개씨. 지씨를 접견한 장경욱 변호사에 따르면 지씨는 변호사 접견 직후 국정원(국가정보원) 수사관이 자백을 강요하며 자신의 무릎을 세워 급소인 성기(낭심)을 때리고 주먹으로 명치, 가슴, 배, 옆구리 등을 때렸다.

가혹 수사는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수사관들은 '일어서서 벽을 보고 서 있으라'는 말에 지씨가 거부하자 그의 머리채와 멱살을 잡고 손으로 뒤통수를 때리고 뺨을 구타했다.

지씨가 법원에 제출한 증거보전청구가 받아들여져 의사가 진료한 결과 그의 성기에서는 멍과 혈흔이 발견됐고, 구치소 입소 신체검사에서는 갈비뼈 9·10번이 골절된 것으로 드러났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국가안전기획부가 쇄신을 선언하며 국가정보원으로 바뀐 후인 2000년 일어난 가혹 수사 내용이다.

2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발간한 보고서인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의 일부다. 인권위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에 조사를 의뢰해 발간한 이 보고서는 '국보법에 의한 인권침해 잔혹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보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고문과 가혹수사가 얼마나 잔인했는지에 대해 보고서는 60여건의 사례를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한총련 수배 학생의 여자친구 집에서 도청장치 발견되기도

경찰의 인권침해는 수사과정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경찰은 그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 등 수배학생을 잡기 위해 감청을 하거나 무리하게 통화내역 조회를 하기도 했다.

지난 99년에는 수배중인 한총련 소속 학생의 여자친구 방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기도 했고, 2000년에는 경찰이 인터넷 방송 '청춘' 관계자를 잡기 위해 과도한 이메일 발신자 추적과 전화 감청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보고서는 이같은 사례를 통해 "국보법 사건에 대한 내사와 수배자 검거를 위해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는 감청 및 통화내역 조회는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는 물론 제3자의 프라이버시권까지 침해한다"고 고발했다.

실태를 조사한 송소연 민가협 총무는 "이 보고서에 드러난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는 극히 일부"라며 "대표적 사례만을 꼽았으므로 그외에도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수사·사법 당국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된 인권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내는 말이다.

수사·사법 당국이 자행한 국보법 위반자에 대한 '인권침해 백서'

그밖에도 이 보고서는 국보법의 적용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양심·사상의 자유를 어떻게 제한하고 있는지(2장. 적용실태를 통해서 본 국가보안법과 인권), 검·경, 기무사, 국정원, 사법부 등의 기관이 국보법의 존치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3장. 국가보안법 적용기관 실태 및 분석) 등을 낱낱이 살폈다.

또한 제정 이후 55년 동안을 '국가보안법 제정 시기에서 제4차 개정 시기(1948~1960)-반공법 제정 시기 및 유신정권(1961~1979)-국가보안법 6차 개정 시기 및 5공화국(1980~1987)-제6공화국 및 국가보안법 7차 개정시기(1988~1992)-김영삼정권 시기(1993~1997)-김대중정권 시기(1998~2002)'로 나눠 각 시기별 국가보안법 적용실태와 그 특징을 분석했다(1장. 국가보안법시기별 적용사).

지난해 8월부터 6개월여간 국보법의 인권침해 실태를 발로 찾아 기록한 송소연 민가협 총무는 "국보법이 제정된 이래 55년간의 기록과 사례를 찾다보니 국보법이 그간 법 이상으로 우리사회에 어떻게 군림해왔는지를 절감했다"며 "국보법이 민주주의의 가치인 다양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해왔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국민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문민정부 이후 사례에 중점... 국보법의 인권침해 생생히 담아

'국가보안법통'으로 알려진 박원순 변호사의 역작 <국가보안법 연구> 시리즈가 90년이전까지의 적용사와 개정사를 분석했다면 이번에 발간된 인권위 보고서는 김영삼 정부 이후의 사례를 더욱 중점적으로 파헤친 '최신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송 총무는 "특히 법이론이나 정치학적인 논의보다 국보법의 적용 과정에서 나타난 피해자들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담으려 노력했다"며 "이 보고서가 현재 국보법 존폐 논의의 구도가 보혁 대결에서 인권 중심의 논의로 전환되는 촉매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해 3월부터 지난 달 20일까지 내·외부 인사 8명이 참여해 운영된 '국가보안법 태스크포스팀'(이하 국보법팀) 활동의 일환으로 발간된 이 보고서는 인권위 자료실을 통해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다(2125-9700).

한편 인권위 국보법팀은 이번 보고서와 그간 논의됐던 팀원들의 발제 내용, 지난 달 20일 개최된 공청회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종합 보고서'를 만들어 이번 달 내로 인권위 최고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후 인권위는 국보법 개폐에 대한 최종 입장을 정리, 오는 7월 공식의견을 내고 17대 국회에 이를 전달할 계획이다.

"국보법 존폐, 보혁 아닌 인권의 문제"
[일문일답] 발로 뛰어 기록한 송소연 민가협 총무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에 침해당한 개인의 인권을 바로 세우자는 얘기다."

송소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총무가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실태> 보고서를 작성하며 느낀 점이다. 송 총무는 국가인권위의 의뢰로 지난 해 8월부터 6개월여 국보법의 인권침해 실태를 발로 찾아 기록했다.

다음은 송 총무와 나눈 일문일답.

- 이번 보고서의 의미와 특징을 말해달라.
"박원순 변호사가 1990년도까지 국가보안법 실태를 조사했다면 이번 보고서는 비교적 최근인 2002년까지의 사례를 정리했다. 특히 김영삼 정권 이후부터 지난 2002년까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법이론이나 정치학적인 논의보다 국보법의 적용과정에서 나타난 피해자들의 사례를 기록해 인권침해 사례를 생생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또한 공안문제연구소나 민주이념연구소, 경찰의 보안분실 등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국보법 수사기관들이 자행한 인권침해 문제와 그 기관의 운용실태를 담았다.

법적 완결성도 없고 구속요건도 추상적이어서 제정 당시부터 폐지 논란을 일으켰던 이 법이 지난 55년동안 막강한 위력을 갖고 존재해왔다면 이데올로기적 상징성 이상으로 적용기관의 역할도 크다고 봤다. 그런 문제 의식에서 이런 기관의 실태를 자세히 분석했다."

- 실태조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그간 국보법이 법 이상으로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군림해왔는지를 느꼈다. 어떤 법이 제정당시부터 56년째 일관된 인권침해와 존폐 논란이 있었던가? 우리 사회는 같은 논란을 56년동안 반복하기만 한 셈이다.

또 하나는 국보법과 국보법에 따른 현상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민주주의의 가치인 다양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해왔음을 절감했다. 무의식 중에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시스템으로 국보법이 고착화했다는 것은 큰 문제다. 결국 국보법은 직접 피해자만이 아닌 국민 전체가 피해자인 셈이다.

그간의 조사를 통해 국보법이 우리 사회의 자유로운 표현과 사고의 발전을 심각히 저해했다는 결론을 짓게 됐다. 결국 국보법 폐지 여부는 보수냐 진보냐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에 침해당한 개인의 인권을 바로 세우자는 문제다."

- 조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정부 통계 기록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1961년 이전의 통계 기록은 거의 없었다. 제정 당시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체포됐다고 하는데 그런 통계는 찾기가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는 10년 전에 알았던 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이 보고서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 현실은 그만큼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입은 피해는 여전히 지속되는데 이를 해결할 국가적 장치는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 이 보고서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되길 바라나.
"국보법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국보법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국보법에 대해 좀더 생생하게 아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또한 현재 보안법 존폐 논의가 보혁 구도가 아닌 인권 중심의 논의로 전환되는 촉매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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