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티비 창립 이념을 설명하는 송은이. 2018년 무한도전에 출연해 '김생민의 영수증' 제작자로서 한 말이다.
MBC
송은이는 2018년,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비보티비 개설 이유에 관해 "우리가 그만두지 않는 한평생 해고 걱정 없는 방송국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예능계가 여성 코미디언에겐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걸 그간 많은 평론가가 지적해왔다. 우리는 긴 시간 남성 예능인의 활약만을 지켜봐 왔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한국사에 길이 남을 대표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은 전부 남성이다. 여성 코미디언은 남성 예능인의 보조 역할을 하거나, 게스트로 나온 배우, 가수, 아이돌 등과 외모를 비교당하는 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내야 했다.
오랜 시간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여성 코미디언이 갑자기 하차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5년, 7년간 해피투게더 MC로 활약했던 박미선은 돌연 하차 통보를 받았다. 함께 출연 중이었던 김신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을 내보내고 남성 예능인 한 명이 합류했다. 박미선은 충격을 받았고, 김신영은 '자신이 못한 탓'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송은이가 왜 해고 걱정 없는 방송국을 만들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렇게 미디어를 설립한 송은이는 간판 예능의 메인 MC로 설 수 없고, 보조 MC로도 하차당하는 동료 개그우먼들을 데리고 판을 짜기 시작했다.
이번 판은 한복판, 판 벌려
송은이가 설립한 콘텐츠랩 비보는 TV 예능, 웹 예능, 팟캐스트, 음원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꾸준히 사랑받는 '비밀보장', 외주 제작사 최초로 저작권을 인정받은 '김생민의 영수증', 신인 아이돌 그룹 셀럽파이브, 먹방 밥블레스유까지 다양하다.
이 모든 콘텐츠에는 여성 예능인이 출연한다. 오랜 시간 비밀보장을 함께 진행해온 김숙, 셀럽파이브 멤버인 안영미, 김신영, 신봉선, 밥블레스유를 이끈 이영자, 박나래, 장도연 등이 비보 콘텐츠에 계속 출연하고 있다.
이들이 몇 해 전부터 방송 3사 연예대상에서 큰 상을 받아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영자와 신봉선은 2018년 KBS 연예대상에서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송은이, 김숙, 장도연, 안영미, 박나래는 2년간 MBC 연예대상을 휩쓸었다.
이들은 상을 받으며 공통적으로 '긴 시간'을 언급했다. 이 상을 받기까지 너무 긴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영자는 "버티길 잘했어"라 말했고, 신봉선은 "10년만에 상 받았다", 장도연은 "다섯 계단 올라오는 데 13년이 걸렸다", 송은이와 김숙은 "이십 몇 년 만에 처음 시상식 왔다"고 이야기했다.
비보가 만든 예능 중에 JTBC2에서 방영된 '판벌려 이번 판은 한복판'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송은이는 해고 걱정 안고 살며, 꾸준히 일했지만 긴 시간 시상식에 설 수 없었던 여성 동료들을 데리고 미디어 시장 한복판에 서서 직접 판을 짰다. 여러 콘텐츠를 만들며 판을 확장했다. 개그우먼에게 무대가 생겼고 방송국 일자리가 생겼고 노래든 말이든 뭐든 할 수 있는 마이크가 쥐어졌다.
여성에게 자리 내주지 않는 방송국에서, 여성 코미디언들은 거의 자력 구제나 다름없이 자신들만의 능력으로 빛을 봤다. 그랬기에 앞서 언급한 저 상들을 휩쓸 수 있었다. 이런 자력 구제의 역사 끝에 둘째이모 김다비가 탄생했다.
다음 판은 엘렌쇼다
다비 이모의 다음 꿈은 엘렌쇼 출연이라고 한다. 아침마당에 출연해서 77년간 간직한 꿈을 이뤘는데, 바로 다음 목표를 설정했다. 엘렌 드제너러스 쇼는 미국 NBC가 17년째 제작하고 있는 세계적인 토크쇼다.
둘째이모 김다비를 보면서 어쩌면 이 캐릭터에는 송은이 사단이 꿈꾸는 미래가 투영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7학년 7반 때도 개그우먼으로서 웃음 주고 노래하며 일하고 싶다는 소망을 김다비로 만들어낸 건 아니었을까. 최초의 여성 연예대상 수상자인 김미화는 묘비명에 "웃기고 자빠졌네"라 쓰고 싶다고 말한 적 있다. 이처럼 죽을 때까지 남 웃기며 살겠다는 꿈을 꾸면서 다비 이모 캐릭터를 만든 건 아니었을까.
이유야 어찌 됐건, 그 미래 너무 아름답다. 꼭 보고 싶다. 해고 걱정 없는 미디어 만들어 놨고 소속사도 있다. 판은 준비됐으니 언니들은 거기서 뛰어놀기만 하시라. 무한한 사랑이라는 연료를 제공할 나 포함 팬들이 언제나 대기 중이다. '엉원법'(응원법)도 달달 외웠다. 판에서 놀다가 좁으면 해외로 가버리자. 다음 판은 엘렌쇼니까. 언니들 판 벌리는 거 볼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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