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 08:33최종 업데이트 20.11.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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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될지 관심을 가지는 동안 캘리포니아의 Assembly Bill No.5, 약칭 AB5법이 사망했다. AB5법은 우버 리프트, 도어대시 등 플랫폼을 통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독립계약자로 잘못 분류되어 최저임금, 유급휴가, 상해 및 실업보험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었다.

올해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AB5법을 막기 위해 플랫폼기업들은 캘리포니아의 주민발의제를 이용해 새로운 법안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Proposition 22(법제안22)'다. 11월 3일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계약자로 보는 대신 최저임금의 120%를 보장하고, 손해배상과 건강보험을 일부 지원하는 내용의 주민발의가 58%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미래의 노동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둘러싼 첫 번째 정치적 대결에서 노동법이 패배했다. 플랫폼기업이 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 쏟아 부은 돈은 2300억이었다.

한국에서의 의미
   

지난 9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서 배달 라이더가 오토바이를 세운 뒤 잠시 목을 축이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배달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배달원 수급에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결이 한국에 끼칠 영향에 대한 이야기들은 넘쳐나는데, 노동법과 플랫폼기업의 대결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엽적이다. 처음 AB5법이 통과됐을 때, 애써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미국의 노동법은 한국의 노동법보다 가벼운 규제만 있기 때문에 통과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설명은 틀렸다. 플랫폼기업은 AB5법안을 죽이기 위한 선거 캠페인에 2300억을 투자했다. 게다가 법제안22에는 근로자의 지위만 포기하면, 최저임금의 120%를 보장하고(대기시간을 뺀 운행시간동안만) 상해와 건강보험 등 일부 복리후생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플랫폼기업들은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다하는 것보다 비싼 당근을 던져주는 게 싸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차량과 보험을 노동자에게 제공할 필요도 없고, 앱에 접속해 대기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할 필요도 없고, 사고에 대한 책임도 질 필요 없는 택시회사와 배달회사를 기업이 포기할 이유가 없다.


비록 AB5법은 사라졌지만 이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천민자본주의라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노동법상 근로자에 대한 풍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을 사용자에게 얼마나 지배 받느냐로 이해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 근무 장소는 정해졌는지, 사용자가 직접적인 지시를 하는지 등이다. 노예처럼 일해야 노동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거면 도대체 누가 법적 근로자 신분을 원하겠는가.

AB5법에서는 노동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a, b, c 테스트를 거친다. a에는 일하는 사람이 손님에게 받는 요금을 직접 결정하고, 일하는 시간은 물론 누구에게 서비스를 제공할지 여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얼마나 종속적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B와 C는 완전히 새롭다. B에 따르면 독립계약자는 회사의 주요 사업이 아닌 부분에서 일을 해야 한다. 배달회사에서 배달업무를 하면 노동자라는 당연한 이야기다. C는 회사의 업무와 독립적인 직업 또는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사실상 기업의 영향력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출퇴근이 자유롭고, 배정된 배달 콜을 거절할 수 있고, 고정급이 아니라 건건이 수수료를 받거나 알고리즘을 통해 일을 하면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라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것을 무려 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미국에서 이런 논의가 벌어지는 동안 한국은 아직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일하는 사람이 노동청에 찾아가서 자신이 얼마나 종속적으로 일하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7월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냈는데, 노동청은 아직도 우리 조합원들이 얼마나 회사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두 번째로, 미국의 AB5법은 우리에게 노동법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역설적이게도 AB5법안을 사망시킨 주민투표에 있다. 누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지, 얼마나 많은 보호를 받을지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정치적 문제라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주정부가 공적으로 추진한 법안에서는 노동법상 근로자로, 플랫폼기업이 금권을 동원한 투표에서는 독립계약자로 분류됐다. 이것은 권력의 문제다.

만약 한국에서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 교수들의 근로자 신분을 박탈하고, 강의 건당, 논문 건당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걸로 바꾼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으면 교수가 받는 건당 수당을 내리고,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많으면 올리는 수수료체계를 도입해보자.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강의실과 빔프로젝트 등은 공짜로 대여하지 말고 독립계약자인 교수들에게 렌트비를 받아보자. 이게 현실이 되면, 교수들의 저항으로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다. 어떤 산업에서 정해진 노동자의 처우와 지위는 산업구조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힘의 차이로 결정된다. 교수들은 최저임금의 120%에 자신의 근로자신분을 내팽개치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노동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전태일 평전 낭독하는 배달노동자 8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제13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기자회견에서 라이더유니온 김용훈 조합원이 전태일 평전을 낭독하고 있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위원회'는 열사 50주기인 11월 13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을 릴레이로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에서 플랫폼노동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1953년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낡았으니 노동법 말고 새로운 법으로 보호하자고 주장하거나, '특고노동자'처럼, 특수한 노동자를 만들어서 배달이나 퀵서비스, 학습지 교사 등등 몇몇 직종을 선택해서 산재와 고용보험을 적용하자는 수준의 논의만 반복되고 있다. 근로자성 문제는 어려운 문제니 일단 처우개선부터 하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앱을 통해 일하는 배달노동자가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게 어려운 일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대해 아무 관심 없는 우리 조합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게 무슨 자영업자냐? 앱으로 감시받고 지시받는 노동자지' 이런 걸 어려운 말 써가며 증명씩이나 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 중 어떤 법을 어떻게 적용하는 게 힘들다는 거냐? 라고 물어보면 성실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근무시간과 장소가 자유롭기 때문에 힘들 수도 있다. 흥미로운 건, 노동법에는 구체적인 업무방식과 시간, 장소를 측정하기 어려운 노동자를 재량근로시간제와 간주근로시간제로 포괄한다.

근로기준법은 낡았다. 동의한다. 그래서 폐기해야 할 게 아니라 고쳐 써야 한다. 근로자 개념을 모든 일하는 사람으로 넓히고, 포괄적으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최소한의 소득보장, 일방적으로 불이익한 근무조건을 변경하는 걸 막고, 해고를 하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너무 오랜 시간 일하지 못하게 하고, 사회보험을 적용하자. 법적 보호를 받지 않은 인간을 마음껏 활용해서 산업을 돌리고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야말로 노동법보다 낡은 야만적 자본주의로의 후퇴다.

미국의 플랫폼기업은 노동법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수천억을 썼다. 한국에선 플랫폼노동자들의 노동자성 문제가 논쟁조차 되지 않으니, 플랫폼이 산재만 보장해줘도 좋은 기업이 된다. AB5법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게 있다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너무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지위가 거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법학자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하나의 범주로 통합하는 포괄적 노동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판 AB5 논쟁을 벌여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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