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3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4.14 10:02 수정 2020.04.14 10:02
  

13일 오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참여 캠페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모두가 말을 얹는 주제일수록 글을 쓰기가 더 어렵다. 너무 당연해서 하나마나 하거나 혹은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거'는 그런 주제 중에 하나지만 불행히도 이 글은 4월 14일, 즉 21대 국회의원 선거 하루 전에 나갈 예정이다. 시의성을 고민한다면 단순히 쓰기 싫다는 이유로 주제를 회피하기는 힘들다. 특히나 '하루 전'이라는 시기는 후보가 아니라(선거운동이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유권자를 향한 글을 써야함을 의미한다. 이건 더 어렵다.

우리는 지금껏 유권자들을 향한 다양한 메시지들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다. 가령 '당신의 소신에 따라 투표하세요'와 같은 말들.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에 따라 투표를 할 것이다. 다만 정치인들이 당선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혐오선동까지 마다하지 않는 요즘을 보면, 저 말이 충분한 걸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때로 어떤 소신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런 말은 어떠한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신념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당신의 투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선거와 관련하여 내가 의아했던 슬로건은 또 있다. 바로 '당신의 투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듭니다'이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정당들과 거기에 속한 후보자들은 공약과 목표를 통해 자신들이 가진 청사진을 보여준다. 유권자들은 이를 통해 후보들이 어떤 국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거기에 동의하면 자신의 표를 그들에게 준다. 만약 운이 좋아 해당 후보가 당선되고 지지한 정당이 다수당이 되면 그 일은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가정이다. 현실은 다르다.

지금까지의 국회를 반추해보자. 선거를 통해 양도된 주권이 유권자들의 희망대로 행사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불리한 정치지형에 때문에 공약했던 일이 좌초되는 경우를 차치한다 해도, 지지율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여론의 변화에 따라 약속했던 청사진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지지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싶지 않으니 그 사례를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원외에서는 아주 소신 있어 보이는 인물들조차도 막상 국회에 보냈더니 기성 정치인들과 똑같은 태도를 보일 때는 분명 있었다. 한마디로 정치인들은 생각보다 유권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선거에 기대하는 것이 별로 없다. 이는 선거에 대한 단순한 냉소가 아니다. 선거를 통해 변화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국회의원 선거에 국회의 구성원들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통해 우리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사람'을 바꿀 뿐이다. 사실 선거는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어떤 면에선 불공평한 거래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가를 미리 치른 다음에야 사람을 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뽑힌 정치인이 태업을 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그 사람은 이미 원하는 것을 얻은 채 일을 시작한다. 하다못해 의원을 중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도 없다.(물론 나는 그럴 수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는 악용의 소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거'는 권리를 행사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21대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10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2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앞에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권우성

 
이렇게 이야기하면 선거는 사람을 바꾸는 것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확실히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결론을 그렇게 내리려면 조건이 하나가 필요한데, 그건 모든 사람들이 선거를 유일한 정치 행위이자 권리행사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즉 투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선거 이후에도 유권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정치인들에게 약속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개별 의원들과 그런 의원들을 가진 정당들이 정말로 약속한 바를 실천하는지 감시하는 것,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압력을 넣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다. 방식은 다양하다. 의원실로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넣는 등의 직접적인 행동부터, 시위나 캠페인에 참여해 집단적인 목소리를 만들고 정치인들이 주목하게 만드는 일까지. 때로는 직접 그런 일을 하긴 너무 바쁘거나 혹은 정치인들이 다루는 분야들이 너무도 방대하고 복잡해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이들의 의정활동을 정리해주고 문제제기를 하는 일에 앞장서는 시민단체들을 후원하는 방법도 있다. 단체들의 지향과 목표가 내가 표를 던졌던 공약과 일치하는지 꼼꼼히 살핀 후에 말이다.

물론 그 단체들의 활동이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에 얄미운 감정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한 사람의 정치인을 국회에 보내기 위해 투표를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들의 약속을 믿었기에 표를 주었고, 만약 그 정치인이 약속을 어긴다면 문제제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는 모든 국민이 동시에 참여하는 대규모 정치행위라는 점에서 떠들썩한 이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투표소에 모여 선거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개표방송을 시청한다. 짧은 시간에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의 경험을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선거는 아주 대단한 일로 여겨지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선거가 유일하게 중요한 일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거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과 거기에만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우리는 보다 침착하게 선거 이외의 무수한 정치행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내일 많은 표정들이 교차할 것이다. 어떤 후보는 당선되겠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누군가 낙선될 것임을 의미한다. 어떤 정당은 기대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기대이하의 결과를 맞이할 정당도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우리가 표를 준 정치인이나 정당일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는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겠지만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감정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내일 어느 쪽에 서게 되건 반드시 기억했으면 한다.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사족. 누군가는 4년의 시간이 지난 후, 의정활동이 태만하거나 신뢰를 어긴 후보를 뽑지 않으면 심판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렇게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4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생각보다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리면서 보내겠는가.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