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제국의 뿌리를 찾아서 - 1

김현종의 <영국 이야기 10>

등록 2001.01.15 13:44수정 2001.01.1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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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그렇듯 여행도 항상 시행 착오와 수정의 연속이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에 도착한 첫날. 우리 가족은 두 가지 중대한 허점을 드러냈다. 첫째는 지도의 가치를 간과했다는 점이다. 낯선 곳에 왔으면 지도를 신처럼 떠받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가 낭패를 당했다.

이번에 준비한 지도는 '필립스 멀티스케일 유럽 2000'. 옥스퍼드에서 가장 큰 책방에 가서 거금 10파운드(1만9000원)를 주고 장만한 지도인데 내용과 편집이 뛰어났다. A3 용지 크기로 제본된 이 지도는 140쪽에 걸쳐 유럽 각 지방을 1대 750,000의 축적으로 싣고 있다. 아주 작은 마을이 아니면 지도를 보고 찾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거기에 각 나라의 교통 법규, 주요 도시간 거리, 지역별 월별 평균 온도 및 강수량과 일조시간, 간단한 각국 역사와 통화, 정치경제 상황, 국가별 시대별 주요 건축 양식 등이 수록돼 있다. 음주 운전 단속 기준, 지역별 최고 및 최저 주행속도 등은 기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지도에 대해 좀더 언급하자면 유럽은 지도 문화가 잘 발달돼 있다. 차량이 고장났을 때 긴급 출동 해주는 회사인 AA,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 지도 전문 회사인 콜린스·필립 등에서 상세한 국가별, 지방별 지도를 수십 가지씩 발행한다. 책방에 가면 지도책만 모아놓은 코너가 교보문고의 여행서적 코너만 하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지도를 보고 찾아갈 수 있게 도로 표지판이 일관성을 갖고 있는 점이다. 한국처럼 도로 표지판보고 김포공항에서 구리를 거쳐 춘천 가려는 사람이 올림픽 대로에서 구리도 잃고 춘천도 잃는 일은 결코 없다. 문제는 이처럼 좋은 지도를 제대로 존경하지 않은데 있었다.

첫날 숙박 예정지인 레옹으로 가려면 꼬바동가에서 나와 오던 길을 약간 되돌아 나갔다가 남하하는 게 정석 루트다. 그런데 꼬바동가 입구에서 목적지 방향인 남쪽으로 근사한 산길이 나 있길래 지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멋진 풍경에 끌려 "구경도 하고 거리도 단축하자"는 만용을 부린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피코스 데 유로파'라는 국립공원지구의, 출구 없는 5시간 짜리 순환도로였다.

산길을 따라 30분쯤 주행해도 이 길이 다시 주도로와 연결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국 식으로 '모든 길은 큰 길과 통한다'고 작정하고 계속 가자 백두산 천지처럼 큰, 호수가 산 꼭대기에 나타났다. 눈이 하얗게 덮인 산꼭대기에서 엄청난 크기의 호수를 만나니 아이들은 쉬었다 가자고 성화다.

여기가 어디냐고? 여기는 아께다

차를 세우자 아이들은 호수가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생각하다가 안전제일주의를 선택하기로 했다. 기세 좋게 "모든 길은 다 통하게 마련이다"며 지도에 어긋나게 주행할 때는 언제고 이제 40여분을 소비한 끝에 철수하기로 했으니 왕복 80분을 길에 뿌린 셈이다.

그래도 피코스 데 유로파는 좋았다. 해발 2300미터 지점에서 만난 맑은 공기, 깨끗한 호수, 지리산 꼭대기에서 볼 법한 첩첩이 쌓인 산들의 능선, 한쪽에는 오락가락 하는 구름바다, 스페인 목동의 얼굴 주름 사이로 보이는 해맑은 웃음 등등.

목동들도 영어 한마디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을 물어보겠다고 10여분을 씨름한 끝에 길은 못 알아내고 겨우 스페인 말 한마디를 배웠다. 영어로 Here, 한국말로 '여기'는 스페인 말로 '아께'다. 여기가 어디냐고 지도를 들이밀고 몇 차례를 실랑이한 끝에 배운 귀중한 스페인 말이다.

차를 돌려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속이 터졌으나 모든 게 스스로의 잘못인지라 화도 낼 수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인 큰 아이에게 여행용 영어-스페인어 사전을 주고 회화 공부 좀 하랬더니 10분도 안 돼서 1에서 10까지를 스페인어로 외어 보인다. 속이 조금 가라앉았다.
두 번째는 숙소 문제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마드리드에 있는 원더풀 여행사 (0034-91-402-4926)와 5 차례에 걸쳐 이메일을 교환하고 스페인 사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으나 주요 숙박지 외에는 미리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다. 며칠씩 묵기로 한 말라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는 예약을 부탁했으나 하루씩 경유하는 도시들은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 부탁을 하지 않았다. 일면 좀더 자유스런 일정을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중간에 누가 아프더라도 오로지 그날 그날의 예약을 지키기 위해 무리해야 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괜찮았다. 그날그날 숙소의 가격과 시설을 직접 구경한 뒤 고르는 방식은 합리적이고 경제적 낭비도 막아 주었다. 다만 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일정한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물론 그 수업료의 절반 이상은 첫날밤의 몫이었다.

낯선 곳에서 잠잘 곳 찾기란

꼬바동가에서 레옹까지 3시간을 달려 도착하자 저녁 9시. 모두들 배가 등에 들러붙어 민생고 해결의 염원이 남북 통일의 염원보다 강했다. 텔레피자라는 피자 체인점에 가서 피자를 두 판 시키자 금새 동났다. 먹고 나니 힘이 조금 솟았다. 사실 이날은 한끼도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 아침겸 점심은 알타미라 동굴 앞에서 생라면 2개를 씹어먹는 것으로 때웠고 점심은 꼬바동가 입구의 스페인 음식점에서 돈 아낀다고 스프 요리와 빵으로 때웠기 때문이다.

피자먹고 힘을 내도 생면부지의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밤 10시에 숙소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을 아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도 암초로 작용했다. 별 세 개 이상 짜리 호텔은 쳐다보지 않고 구하려니. 호스텔이라는, 우리로 치면 장급 여관 같은 델 가니 당장이라도 귀신 나오게 생겼다. 아이디어를 낸 것이 "여기는 도시니까 방 값이 비쌀 것이고, 레옹 외곽의 조그만 동네에 가면 싼값에 편하게 잘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했다.

오던 길을 20km쯤 되돌아가 만실라스라는 조그만 동네에 차를 세웠다. 레옹의 인구가 13만명쯤 되니까 우리로 치면 예컨대 경상북도 김천시 인근의 면소재지 같은 곳에 차를 세운 셈이다. 바와 여관을 겸해 운영하는 허름한 호스텔의 주인은 밤늦게 동양인 가족이 나타나자 속으로 흐뭇해하는 눈치다. 결국 방 2개를 각각 5천 페세타 (한화 4만원)에 쓰기로 했으니 돈을 절약한 것도 아닌 결과가 돼버렸다. 주인은 4인 가족이니 반드시 방을 2개 써야 한다고 우겼다. 다른 곳을 택하고 싶었지만 그 때쯤엔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영하의 날씨에 손바닥만한 라디에이터는 켜놓은 둥 마는 둥하고 외풍은 쌩쌩 들이닥쳤다. 큰 딸아이와 둘이 누우니 따뜻한 아랫목 생각이 절로 났다. 얼마나 추웠던지 딸아이가 아빠를 꼭 안고 자겠다고 한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집에서는 아빠가 배만 만져도 정색을 하고 안 된다고 덤비는 놈인데.

다음 날부터 우리 가족은 작전을 바꿔 조금 좋은 숙소를 선택하되 대신 한 방에서 몰아 자기로 했다. 여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길 찾기와 잠자리 문제에서 애로가 생겼으니 어찌 보면 실패작인 셈이지만 다음 날부터는 실수를 크게 줄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먹는 문제만큼은 첫날부터 문제가 없었다. 식구들이 모두 먹성이 좋은데다 옥스퍼드에서 서양 음식이나 서양 음식재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츄로스로 아침을 먹자 안심하는 가족들

스페인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정 관계로 레옹 구경은 제대로 못하고 다음 기착지인 살라망카로 출발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어떻게 길을 찾나 구경하다가 이제는 지도에 나온 대로 레옹 시내를 거쳐 미리 예고한 대로 N-630 도로 표지판을 따라 주행하자 안심하는 눈치다.

이날부터는 가족의 정신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그날 갈 길의 이름(번호)과 경유하는 지점, 방문하는 도시 또는 장소의 특징 등을 미리 10여분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위해 전날 밤 1시간쯤에 걸친 도상연습을 하는 게 필수적이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식구들은 게다가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 밥을 간단히 먹는 편인데 커피 한 대접과 츄로스라는 설탕 바른 도너츠가 전부란다, 우리도 그걸 먹자"며 턱하니 길가의 레스또랑뜨에 가서 스페인 사람과 똑같은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까 마음이 더 놓이는 눈치였다.

레옹에서 살라망카로 가는 길부터 올리바(올리브) 나무가 즐비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파리가 많고 키는 3미터쯤 되는 나무다. 어찌 보면 수양버들 같은 느낌을 주고 어찌 보면 포도나무와 비슷하다. 식물성 기름 중에서도 올리브 기름이 가장 몸에 좋고, 따라서 가장 비싸고, 그래서 스페인과 이태리, 그리스가 이걸로 먹고산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살라망카는 유럽의 여행 전문가들이 세빌르, 톨레도, 꼬르도바, 그라나다와 함께 스페인의 5대 명승지로 꼽는 곳이다. 기원전 2세기 페니키아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를 기습공격하기 위해 코끼리 200 마리를 끌고 스페인과 알프스를 거쳐 로마를 북쪽에서부터 공격할 때 한때 주둔하던 곳이다.

이 도시에는 특히 옥스퍼드 대학이 1167년 개교한 데 이어 1217년 까스틸랴 왕의 후원아래 대학이 들어섰다. 플레이보이의 원조 격인 돈 후안이 바로 이 대학 출신이다.
살라망카의 명소는 플라자 메이요(시청 앞 광장)이다. 사방이 빙 돌아가며 건물로 막혀 있는 광장으로 들어가려면 건물의 1층에 놓여진 통로를 통해야 한다. 500평 쯤의 광장은 스페인의 여러 '시청 앞 광장'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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