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큰 '마을'의 수도

<빌뉴스에 가보자 2> 작지만 복잡한 도시

등록 2001.09.21 19:04수정 2001.09.2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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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는 수도라고 믿지 못할 만큼 정말 아담하고 조그마하다. 높은 건물이란 찾아볼 수 없고, 지하철이란 것도 없다. 꼬리가 달린 자그마한 트롤리 버스가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게 전부이고, 리투아니아 정치의 중심지라는 국회의사당에 가봐도 서울 한 구의회 사무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이 도시는 정말 작다. 빌뉴스에 자주 다니는 한 한국인의 말을 빌면 영화 '시네마 천국'에 어린 시절 토토가 살던 마을 같다. 그 작은 마을 같은 동네에 여러 국가의 대사관이 있고, 유네스코 지부가 있고, EU 대표부가 자리잡고 있다. 아직 한국대사관은 없다.

빌뉴스에 한국 명예영사관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것을 대사관과 착각하면 안된다. 호랑이와 사자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처럼, 명예영사관은 대사관이 아니다.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긴급한 일이 생기면 어디 호소할 곳도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빌뉴스가 전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라고 하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펼친다.

"빌뉴스는, 도시라는 관점에서는 정말 작을 수 있지만, 나는 이 리투아니아가 '세계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고 생각해."

내 친구가 해준 말이지만, 단지 그 친구말만은 아니다. 빌뉴스야 워낙 큰 도시라서(!) 좀 무리지만, 제2의 도시 카우나스(Kaunas)나 제3의 도시 샤울례이(Siauliai)에만 가봐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카우나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자유로(Laisves aleja) 건너편 어느 거리에 누가 살고 있는지 그 사람이 누구랑 섬씽을 벌이고 있는지, 어디서 일을 하고 있는지 자기가 일하는 그 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줄줄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TV나 신문에서 보는 유명인에 대해 아는 사람에게 물으면, '어, 그 사람 내 친척인데'라든지 '내가 아는 누구랑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는 게 그리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작고 어쩌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이 곳의 그 이끼 향기나는 구시가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고, 세계대전 시에도 전쟁의 피해 없이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된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게다가 이 빌뉴스는 폴란드, 벨라루시, 리투아니아, 유태인 4민족에게 모두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도시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도시에 대한 민족간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라 보아도 된다.

이미 이야기한 대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역사적인 관계는 정말 돈독하다. 리투아니아 폴란드 연합국 시절 이 빌뉴스는 폴란드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폴란드 문화의 중심지로서 존재한 적이 있었고, 폴란드인들이 추앙하는 여러 작가들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폴란드 사람들에게 물으면, 반수 이상은 빌뉴스는 폴란드의 도시이고, 그 도시를 건설한 사람이 폴란드인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빌뉴스가 폴란드 사람들에 의해 많이 건설되었고, 한때 폴란드에 속해 있었고, 폴란드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댈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옆나라 리투아니아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다수다. 독일로부터 양도받은 폴란드 서부의 도시들을 독일인들이 자신의 영토라고 시비를 걸어온다면 폴란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죽겠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의 빌뉴스 지역 불법점령은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간 관계의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 리투아니아의 공식적인 가장 큰 적은 폴란드였다. 2차대전이 시작되어 빌뉴스가 자신들의 손으로 돌아온 것은 엄밀히 말하면, 폴란드 사람들이 고스란히 돌려준 것이 아니라, 리투아니아가 소련의 영향권 내에 들어오면서 타의반 자의반으로 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폴란드의 역사적 장소가 살아숨쉬고 있는 이 도시를 못내 아쉬워하는 폴란드인들이 아직 많다. 전세계에서 '폴란드 제국주의'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나라가 이 리투아니아라는 말이 있다.

빌뉴스의 구시가 입구에는 '새벽의 문'이라는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에 리투아니아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폴란드도 카톨릭 국가인 이유로 이 장소는 폴란드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새벽의 문'은 리투아니아어로 'Ausros Vartai(한국어 음가, 아우슈로스 바르태이)로 불린다. 그리고 폴란드어로는 'Ostra Brama(한국어 음가 오스트라 브라마)'이다. 폴란드어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매운 문'이다. 왜 이 성스러운 장소에 '매운 맛'이 따라다니는가 하면, 리투아니아어 '아우슈로스'를 폴란드어와 비슷하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오스트라('매운'의 형용사형)'로 굳어버린 것이다. 폴란드에서 이 문은 여전히 '매운 대문'으로 불리고 있다.

벨라루시의 경우, 벨라루시 국경과 근접한 위치적 이유도 있고, 또 리투아니아 폴란드 연합국 당시 벨라루시 영토가 리투아니아 영토에 소속된 적이 있어서 벨라루시의 문화적인 활동이 다수 이곳 빌뉴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중요성이 남다르다. 일단 리투아니아의 사기 중 많은 것이 벨라루시어로 기록된 것은 물론이고, 벨라루시어로 최초로 기록된 책이 빌뉴스에서 나왔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전에 한번 이야기한 바 있지만, 폴란드인들을 비롯한 이곳에 사는 슬라브계인들은 대다수 벨라루시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유태인들에게도 이 빌뉴스는 아주 중요한 도시이다. 빌뉴스는 '북쪽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유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는 많이 남아있지 않고, 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도 단 하나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전쟁 전까지 빌뉴스 전 인구의 13%까지 이른 적이 있었다.

빌뉴스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다수 나치에 의해 처형되거나 다른 곳으로 추방되었다. 유럽에 살던 유태인들이 구사하던 히브리어의 유럽식 방언은 이디시라고 불리는데, 아직도 리투아니아에서는 이디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실례로 빌뉴스 대학에서는 그 이디시 언어 연수가 아직까지 개최되고 있고, 그 이디시를 배우기 위해 전세계로부터 많은 학생들이 빌뉴스를 방문할 정도다.

유대인들이 빌뉴스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12세기부터라고 하는데, 그 오랜 시간동안 유럽에 거주하면서 만들어진 히브리어의 유럽방언 이디시는 독일어와도 상당히 비슷하다. 이디시가 히브리어의 유럽방언이 아니라, 차라리 독일어의 한 부류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글자는 히브리어 문자를 쓰지만, 입말은 독일어와 가까운 것이 많다고 한다. 실례로 인사말 중에는 '샬롬'과 '구텐탁'이 같이 쓰이고 있다고 하니까.

보기보다 복잡다난한 이 도시에는 현재 60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 중 리투아니아인은 공식적으로 52%, 러시아인은 19.2%, 폴란드인도 19.2%, 벨라루시인들은 4.8%, 유태인들은 0.7%이다. 빌뉴스를 거점으로 문화활동을 영위한 민족들은 숫적으로는 많이 변화를 겪었지만, 아직도 남아서 이 도시에서 '사이 좋게' 살고 있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발트3국에 대한 정보방 http://my.netian.com/~perkunas

덧붙이는 글 필자의 발트3국에 대한 정보방 http://my.netian.com/~perku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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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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