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으로 만든 수탉이 우는 곳, 리가

등록 2001.09.25 15:14수정 2001.09.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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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엔 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 중에서 여성이 대통령직을 담당하는 곳은 많지 않다. 요즘 들어 아일랜드,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여성대통령이 등장하고 있어, 여성대통령을 보는 것이 예전처럼 그리 어려운 경우는 아니다.

라트비아 역시 캐나다 출신의 라트비아인 바이라 비체-프라이베르가 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여자 대통령을 배출한 얼마 안되는 나라 중 하나로 등장하였는데. 라트비아 여성대통령 당선 소식이 우리나라 신문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궁금해한 것은 '어떻게 여성대통령의 당선이 가능했을까'가 아니라, '라트비아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냐' 하는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트비아는 알다시피 발트3국 중 가장 가운데 위치한 국가이다.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사이에 은행잎 모양을 하고 자리잡은 이 나라는 거꾸로 얹은 ㄴ자 모양 같이 생기기도 했다.

수도 리가(Riga)에서 리투아니아 제3의 도시 샤울례이(Siauliai)로 이르는 길이 폭이 가장 좁은 곳에 속하는데, 리투아니아 국경을 통과해서 리가에 도달하는 데 불과 한시간 반여밖에 안 걸린다.

라트비아의 상징 ⓒ 서진석
리투아니아나 에스토니아 어디에서건 부담없이 도달할 수 있는 그런 나라이지만, 발트3국 중 유일하게 한국인에게 비자가 필요한 곳이라서, 비자문제가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구 소련 국가들과는 달리 비자신청하는 데 초청장이나 바우처 같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치 않고, 신청서와 사진만 제출하면 바로 받을 수 있다.

라트비아의 이런 비자요구 때문에 여행자들로 하여금 '유럽에서 비자 없이 다닐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하면서 다른 곳으로 행선지를 돌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와 무비자협정체결을 하기 위해 라트비아 정부도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고 들었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일단 국경에서는 비자를 주는 일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라트비아 공관이 없는 관계로 서울에서 비자를 받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비자가 필요해서 좀 애를 먹을지라도, 라트비아는 정말 빼놓지 말고 가봐야 할 곳이다.

차를 임대해서 리투아니아에서 라트비아로 올라가는 사람이라면, 가는 길에 만나는 룬달레(Rundale)와 바우스카(Bauska)를 꼭 들러보는 것이 좋다. 리투아니아의 샤울례이를 지나는 국도를 따라가다가 국경을 통과해서 30분 정도만 달리면 어김없이 통과하는 도시인 룬달레(Rundale)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의 겨울궁전을 건축한 이태리 바로크의 거장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i)가 설계한 궁전으로 아주 유명하다.

파괴상태가 심하고 현재 복원 중에 있어 서유럽의 유명궁전들과 비교해볼 때 어쩌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태리의 거장 프란체스코 마르티니(Francesco martini) 등이 참여해 만든 '황금의 방'이나 '백실(白室)'들의 장식과 그 화려함은 전 유럽수준이라고 한다. 룬달레에서 약 16Km 떨어진 바우스카(Bauska)에는 한때 룬달레의 궁전보다 더 큰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진 성곽이 성터만 남은 채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룬달레와 바우스카를 통과하면 독일기사단의 거점이었던 체시스(Cesis)와 '라트비아의 스위스' 시굴다 (Sigulda)등을 지나게 된다.

물론 절경이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리투아니아와 비교해 라트비아의 생활수준이 비교적 얼마나 높았는지 잘 이야기해주는 지역이다. 리투아니아에서 리가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이 도시들은 전부 '젬갈레(Zemgale)'라는 지역에 속해 있는 곳으로. 전체 라트비아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호화로운 지역으로 손꼽힌다. 땅도 가장 비옥하고 그곳에 정착하여 살았던 귀족들이 남긴 흔적이 그 당시의 영화를 잘 일깨워주고 있다.

라트비아의 대통령 바이라 비체-프라이베르가 여사 ⓒ 서진석
젬갈레를 완전히 벗어나 리가에 들어가면 리투아니아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일단 바닷가에 접해 있기 때문에, 끼룩거리며 나는 갈매기들이 리가 하늘을 누비고 있고, 바로크 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빌뉴스와 달리, 뾰족한 첨탑들로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청록색 고딕양식의 건물들이, 승용차로 불과 다섯 시간 여 밖에 안 걸리는 옆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만들어준다.

다른 것은 단지 그런 건물들만이 아니다. 리가는 한때 동유럽의 빠리, 구소련의 라스베가스 등 유흥과 환락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중세시대 무역 동맹인 한자동맹의 거점 도시로서 상인들과 뱃사람들이 오가며 뿌린 돈으로 이 도시는 계속 발전을 이루어갔고, 현재도 발트3국에서는 가장 놀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종교적이고 전반적으로 차분한 인상이 강한 빌뉴스와는 아주 다른 인상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그 잘 사는 리가를 주위 나라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말해주는 증거가 리투아니아의 문학작품이나 민속음악에 좀 남아 있다. 요나스 빌류나스(Jonas Biliunas)라는, 심리주의 소설로 유명한 리투아니아 작가는, 리투아니아의 가난과 빈곤을 피하여 일거리를 찾아 리가로 떠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와 그곳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무직의 고통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잘 묘사하기도 했다.

리투아니아에 남아 있는 여러 민요들 중에도 러시아와 폴란드의 학정을 피해 부유한 리가로 떠난 농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여러 민요들이 남아내려오고 있다.

- 여보게, 자네 우리 할아비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가?
- 리가에 갔다네. 보드카 공장에 돈 벌러 말야.
- 여보게, 자네 우리 할망구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가?
- 리가에 갔다네. 담배공장에 돈 벌러 말야.

나, 리투아니아의 사내
엄청난 글을 쓰겠소,
리가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전부에게 얘기해줄 것이요.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는데
그 강은 다우가바(Daugava)강이라네.
거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전부 리투아니아에서 온 사람들이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서 부귀영화의 도시로 알려진 리가. 그 리가 구시가지입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하늘로 높게 쳐든 손에 별 세 개를 들고 있다. 그 세 개의 별은 라트비아의 쿠제메(Kurzeme), 라트갈레(Latgale), 비제메(Vidzeme) 세 지역을 상징하고 있는데, 사실 현재 라트비아의 지역은 공식적으로 네 개이다. 그 젬갈레가 네번째의 지방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아직 젬갈레를 위한 별은 등장하지 못했다. 그 화려했던 리가나 젬갈레 지역에 거주하지 못했던 라트비아 농노들이 불렀던 한 섞인 노래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부르던 그것들과 거의 차이가 없어보인다.

형제들이여, 리가에 가세.
리가에 가면 살기가 좋다네.
그곳에 가면 개들도 금으로 되어 있고,
수탉도 전부 은으로 되어 있다네.


라트비아는 라트비아 사람들이 사는 곳일텐데, 그 부와 영화를 라트비아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다면, 그 땅의 주인은 과연 누구였단 말인가!

덧붙이는 글 | 관광이나 숙박정보는 필자의 발트3국에 관한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를 참조하세요.

덧붙이는 글 관광이나 숙박정보는 필자의 발트3국에 관한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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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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