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안전속도가 있다

느린 속도로 아이에게 다가가기

등록 2007.09.07 16:57수정 2007.09.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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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유독 혼자서만 공책정리를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하필 반장이라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언젠가는 반장이 되어서 공책정리도 않느냐고 야단을 쳤다가 그 아이와 말다툼(?)을 할 뻔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식이었지요.

"반장이 돼 가지고 공책정리도 안 하면 어떡하니?"
"반장이라고 꼭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반장이면 다른 애들 하는 만큼은 해야지."
"그럼 공부 못하면 반장 못하겠네요?"


"반장이 아니라도 학생이면 마땅히 공책정리를 해야지."
"그럼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그날 아이와 말다툼을 하지 않고, 할 뻔하다가 만 것은 다행히도 그날 우리의 대화가 이렇게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 지금 나한테 반항하는 거야?"
"반항하는 거 아닌데요."


"그럼 그 말버릇이 뭐야?"
"제 말버릇이 어땠는데요?"



"지금도 선생님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있잖아. 제 할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그럼 선생님이 물어보셨는데 아무 말도 안 해요?"


이런 식의 대화에 휩싸이면 십중팔구는 그 뒤끝이 좋지 않습니다. 서로 감정만 상하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게 되지요.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늘 일을 그르치고 난 뒤에야 후회를 하곤 합니다. 다행히도 그날은 컨디션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이에게 감정을 품지 않고 은근슬쩍 작전상 후퇴를 한 것이 잘한 일이었습니다.


며칠 뒤의 일입니다. 그 아이는 여전히 혼자서만 공책정리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냥 내버려두기도 뭐해서 조용히 다가가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도 공책 정리 안 할 거야?"
"네."


"그럼 내일도 안 할 거고?"
"영원히 안 할 건데요."


"그런 말이 어딨어?"
"전 공부 안 해도 되요. 나중에 미용사 될 거거든요."


"너 미용사가 되는 것이 꿈이야?"
"네."


"그런 꿈이 있는 줄 몰랐네? 네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래."
"꼭 이룰 거예요."


그날 저는 미용사가 되어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지식이나 소양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대화를 거기서 끝냈습니다. 그런 말이 아이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하리라는 판단에서였지요. 오히려 그 아이가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하게 여겨져 어깨를 토닥이며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반장인 그 아이가 담임선생님께 볼일이 있었는지 교무실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을 끝내고 나가는 아이를 제가 불렀습니다.

"너에게 소원이 하나 있는데."
"무슨 소원인데요?"


"수업시간에 공책정리 하는 거."
"에이, 난 또 뭐라고?"


"농담 아니야. 너 공책정리 하지 않는 거 자꾸만 마음이 쓰여. 널 포기한 것 같단 말이야. 선생님이 너 포기해도 좋아?"
"…!!"


"너 미용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난 네가 미용사가 되더라도 머리만 만질 줄 아는 미용사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감동시킬 줄 아는 미용사가 되었으면 해. 그래야 미용실을 찾는 손님도 많아지고 돈도 많이 벌 거 아니야. 그런데 네가 뭘 알아야 손님들과 대화도 나누고 감동도 주고 그러지. 네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외국인들이 올 수도 있잖아.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는 못해도 수업시간에 배운 거라도 써먹으면 좋잖아. 얼마나 폼 나겠어? 선생님이 공책정리를 하라는 것은 공부를 포기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지?"

그 후 아이의 수업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공책정리를 하라고 하면 마지못해 하는 시늉이라도 냅니다. 때로는 아이의 더딘 변화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학생과 교사 사이에는 '안전속도'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어기면 탈이 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가끔은 그 아이를 붙잡고 하소연이라고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아이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하여 고쳐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리더십도 있고 예쁜 구석이 많은 아이이기에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곧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제 경험으로 비추어보건대, 그때가 바로 과속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느린 속도로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이 몸에 배어 마음이 참 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 생각이나 행동이 느려진 만큼 아이를 쉽게 포기하는 일도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있다는 신념도 무럭무럭 크고 있습니다.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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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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